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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스킷 같던 무령왕비 베개, 보존처리 덕분에 전시 나왔죠"



문화재/정책

    "비스킷 같던 무령왕비 베개, 보존처리 덕분에 전시 나왔죠"

    • 2017-12-30 11:12

    보존과학 33년 인생 마감하는 이용희 국립중앙박물관 부장

    무령왕비 베개를 보존처리 하는 이용희 부장. [사진=연합뉴스/이용희 부장 제공]

     


    1971년 이뤄진 발굴조사를 통해 충남 공주 무령왕릉에서 나온 유물 중 국보로 지정된 문화재는 모두 12건이다. 대부분은 금속제인데, 국보 제164호인 무령왕비 베개와 국보 제165호인 무령왕 발받침은 목제다.

    무령왕비 베개와 무령왕 발받침은 벽돌로 쌓은 축축한 왕릉 안에 오랫동안 있어서 많이 부패했는데, 발굴 이후 공기에 노출되면서 강도가 더 약해졌다. 이따금 잠깐씩 전시에 등장하기는 했지만, 평상시에는 항온·항습 기능이 갖춰진 이중 밀폐장에 보관됐다. 그런데 지난 4월 국립공주박물관이 새롭게 웅진백제실을 열면서 비교적 온전한 모습의 두 유물을 선보였다.

    채색 안료에 안정화 처리를 하고 금박의 위치를 복원한 인물은 국내에서 목제 유물 보존처리의 최고 전문가로 꼽히는 이용희 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부장이다. 정년을 앞두고 내년 1월 1일자로 공로연수를 떠나는 그는 최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무령왕비 베개와 무령왕 발받침을 봤을 때 퍼석퍼석한 비스킷 같았다고 회고했다.

    "나무의 중심 부분인 목심 자체의 부패가 워낙 심했어요. 무령왕 발받침은 아래쪽이 많이 훼손돼서 뒤집어 보관했죠. 전통 재료를 사용하면서도 현대적인 기술로 보존처리를 해 전시에 내놨다는 점에서 보람을 느낍니다."

    사람이 아프면 병원에서 수술이나 치료를 받듯, 문화재는 문제가 생기면 보존처리를 받는다. 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부는 돌·금속·나무·종이로 만들어진 각종 유물을 보존처리 하는 문화재 종합병동이다.

    화학공학을 전공한 이 부장은 1984년 일자리를 찾다가 우연히 문화재 보존과학의 길에 들어섰다. 친구인 김수기 용인대 교수가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함께 연구원으로 일해 보자고 제안하자 이를 덜컥 받아들였다.

    처음에 이 부장이 배치된 곳은 연구소 보존과학연구실 내 화학목재실이었다. 당시는 전남 신안 앞바다에서 나온 중국 원나라 무역선 '신안선'의 수중발굴이 막 끝나가던 때였다. 이 부장은 신안선에서 뭍으로 꺼내진 목기와 목간, 완도에서 발견된 고려시대 목선에 있던 목제 도구, 하남 이성산성에서 출토된 통일신라시대 목기의 보존처리를 진행했다.

    10여 년간 나무 유물에 매달린 이 부장은 1995년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박물관에서 목제 유물의 보존처리를 담당하던 직원이 퇴사한 상황이라 업무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국립문화재연구소는 보존처리의 기초 연구를 중시하는 기관이었기 때문에 유물을 만질 기회는 국립중앙박물관이 더 많았다.

    마침 창원 다호리 고분군과 광주 신창동 유적에서 대규모 발굴 성과가 잇따라 들려오던 참이었다. 그 덕분에 일감은 넘쳤다. 신창동 유적은 농경 유적이라 유물 중에 농기구가 특히 많았고 현악기나 베틀에 쓰는 기구인 바디도 나왔다.

    "발굴 유물 중에는 다호리에서 발견된 칠초동검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칠초동검은 금속제 칼과 나무로 만든 손잡이, 옻칠한 칼집이 결합해 있어서 보존처리 방법을 많이 고민했습니다. 그래도 저농도 설탕 용액과 동결건조 기법을 써서 나름 성공적으로 보존처리를 마쳤어요."

    이 부장은 발굴 유물뿐만 아니라 목칠공예품의 보존처리도 자연스럽게 맡게 됐다. 하지만 공예품 보존처리는 발굴 유물과는 접근 방식이 완전히 달랐다. 그는 한국과 일본의 장인들이 만든 자료를 참고하면서 차근차근 기술을 익혔다.

    그는 "발굴 유물은 보존처리 전과 후에 상태 변화가 없는 것이 가장 좋지만, 공예품은 보존처리를 통해 어느 정도는 아름다웠던 원래의 모습으로 복원할 필요가 있었다"며 "보존처리의 적정한 수준을 어떻게 정해야 할지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이 부장은 공예품 가운데 애착이 가는 유물로 포류수금문 나전묘금향상을 꼽았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전신인 이왕가박물관이 1910년 구매한 이 유물은 부들·버드나무·물·새 무늬가 장식된 향을 담는 상자다. 개성 근처 무덤에서 발굴된 것으로 전하는데, 심하게 파손돼 파편 700여 개로 나뉜 상태다.

    그는 "완벽한 형태의 고려 나전칠기는 현존하는 수량이 워낙 적어서 연구를 위해 손댈 수가 없다"며 "그나마 나전묘금향상 덕분에 고려 나전칠기에 관한 기본적인 자료를 많이 확보했다"고 설명했다.

    이 부장은 주로 목제 유물을 다뤘지만, 석조 유물의 보존처리를 하기도 했다.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실 복도에 있는 국보 제86호 경천사지 십층석탑의 해체와 복원도 그의 손을 거쳤다.

    "1994년 말에 경복궁에 서 있던 경천사지 십층석탑의 손상 문제가 쟁점화됐어요. 그때 문화재관리국(현 문화재청)이 해체를 결정해서 연구소 직원으로서 해체 과정에 참여해 기록을 남겼습니다. 이듬해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적을 옮겨서 다시는 볼 일이 없으리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결국 석탑 복원의 마무리도 제가 했어요. 시작한 사람이 끝을 내는구나 싶었죠"

    이 부장은 박물관을 떠나면서도 보존과학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부는 최근 장비가 많이 보완됐지만, 인력 부족 현상은 여전하다며 안타까워했다.

    "박물관에서 지난 22년간 큰 혜택을 봤다고 생각합니다. 이과 전공자로서 고고학, 미술사, 역사학을 배운 인문학자들과 교류하며 지식을 주고받았으니까요. 보존과학 하는 사람으로서 행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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