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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페이 NO"… 영화 '피의 연대기'가 지킨 3가지 원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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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정페이 NO"… 영화 '피의 연대기'가 지킨 3가지 원칙

    [노컷 인터뷰] '피의 연대기' 김보람 감독-오희정 프로듀서 ②

    영화 '피의 연대기'의 오희정 프로듀서(왼쪽)와 김보람 감독이 12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KT&G 상상마당 시네마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여성의 몸'과 '생리'에 관한 범시대적·범세계적 탐구 다큐멘터리를 지향하는 '피의 연대기'(감독 김보람)는 제작기간에만 2년이 걸렸다. 소재 잡기부터 시간이 걸리는 일반 다큐가 아니라 '할 이야기'가 또렷하게 정해져 있는 기획 다큐치고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린 셈이었다.

    물론, 문제는 '돈'이었다. 돈이 어느 정도 모일 때까지 각자의 생업을 하다가 다시 영화 작업을 하는 식이었다. 하지만 자생력으로 영화를 이끌고 왔고, 후반 작업에 이르러서야 크라우드 펀딩을 시도해 '투자'를 받아 '피의 연대기'를 세상에 내놓을 수 있었다.

    여성의 몸에서 일어나는 '피 흘림'을 정면으로 다루는 만큼, '피의 연대기'는 그 어느 작품보다 '여성 친화적'이었다. 극중 인터뷰이 95% 이상이 여성이었고, 제작진 가운데서는 김해원 음악감독을 제외한 전원이 여성이었다.

    이는 '피의 연대기'를 만들면서 김보람 감독과 오희정 프로듀서가 지키고자 했던 원칙 중 하나였다. 지난 12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KT&G 상상마당 시네마 카페에서 두 사람을 만나 그들이 약속했고, 끝내 지켜냈던 3가지 원칙이 무엇인지 들어 보았다.

    (노컷 인터뷰 ① 본격 생리 탐구 다큐 '피의 연대기', 모두가 봐야 할 이유)

    ▶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여성들의 경험담뿐 아니라 생리에 대한 잘못된 고정관념부터 생리용품 발달사까지 두루 다뤘다. 이렇게 구성한 이유는.

    보람 : 원래 제가 작가를 하던 사람이라서… 보통은 감독이 다 찍고 마지막에 가서야 편집을 어떻게 할지 정하는데 저는 기획 단계에서 단편 시나리오를 하나 썼다. (지금 나온) 영화와는 완전 다르지만. (웃음)

    희정 : 그걸로(그 시나리오로) 한 편 더 만들 수 있다. (웃음)

    보람 : 시나리오 한 10개 정도 나왔다. 쓴 걸 다른 팀원들에게 보여주고 피드백을 받았다. 다큐이기 때문에 시나리오 그대로 나올 순 없지만, 워낙 정보가 많아서 이런 준비가 필요했다. 또, 애니메이션 부분은 시나리오가 어느 정도 나와야 구현이 가능했기 때문에…

    희정 : (김 감독이) 다큐 작가 출신이어서 글도 워낙 잘 쓰고 연구를 열심히 하는 스타일이라 이 많은 정보를 어떻게 담을까 하는 고민을 많이 했다. 책도 무척 많이 읽는데, 공부하면서 얻은 텍스트로 챕터 구성을 한다든가, (많은 정보를) 소화하기 위한 장치를 많이 고민했다.

    ▶ 자료조사와 인터뷰 때문에 제작기간이 길었을 것 같다.

    보람 : 딱 2년 걸렸다.

    희정 : 영화로 치면 3년, 5년 찍는 경우도 있는데 저희는 순전히 제작비 때문에… 기획 다큐인데 (돈이 모이기를) 기다렸다가 생업을 하다가 또 찍고 그랬다. (최근) 2년 안에 생리 관련한 여러 일이 많이 일어나지 않았나. 그걸 하나하나 소화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피의 연대기'는 정보를 소화할 때 모션그래픽이나 애니메이션을 주로 활용했다. (사진=KT&G 상상마당 시네마 제공)

     

    ▶ 중간에 애니메이션 효과가 들어간 게 눈에 띈다.

    보람 : 영화이기 때문에 비주얼적인 고민을 많이 했다. 영화 이미지에서 오는 정서가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무엇보다 여성의 몸을 실사로 촬영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애니메이션 감독님을 초기부터 섭외했다. '감독'님을 섭외한 이유는 그분의 스타일, 해석, 표현방식이 그대로 살기를 바라서다. 디렉션(지시)을 따로 드리지 않았다. 구성과 내레이션을 드리면 감독님은 자기 스타일로 결과물을 주셨다. 영화 톤을 해치지 않는다면 고유의 스타일을 살리는 방향으로 담겼다.

    희정 : (애니메이션 효과가) 설명의 도구라기보다는 크리에이티브적인 역할을 했다. 모션그래픽을 통해 저희는 컬러풀한 색감과 발랄한 분위기를 살리려고 했다. 인물 소개 디자인, 사진 삽입 등 비주얼적으로 지루하지 않게, 신나게 리듬감을 살리고 싶었다. 그래서 모션그래픽 팀과 굉장히 고민을 많이 했다. 애니메이션 감독도 촬영도 다 20~30대 여성들이었다. 젊은 층이 공감할 수 있는 우리 세대의 스타일이 잘 살았다고 생각한다.

    ▶ 여성 위주로 제작진을 꾸린 특별한 이유가 있나.

    보람 : 희정 PD님께 지키고 싶은 원칙으로 제시한 게 스태프는 20~30대 여성으로 하자, 인건비를 열정페이로 하지 말자, 영화 끝날 때까지 존댓말 쓰자 3가지였다. 셋 다 잘 지킨 것 같다.

    ▶ 김해원 음악감독이 제작진 중 유일한 남자였다.

    희정 : 공감대를 확장해 보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보람 : 김사월 씨랑 같이 하셨으니, 그냥 남성 뮤지션이 아니라 여성의 감성과 정서를 잘 이해하시지 않을까 했는데 역시나 섬세한 정서를 너무 잘 살려주셨다. 재밌었던 건, 저희는 더 발랄한 음악을 바랐는데 감독님은 (영화를 보고) 되게 슬프셨나 보더라. (웃음) 새벽에 일하고 있으면 음악 보내주시는데 엄청 슬픈 것들이었다. 그러면 저희는 '아, 감독님. 좀 더 발랄하게 해 주세요' 했다.

    희정 : 맞다. "좀 더 발랄하게 해 주세요!"

    보람 : 저희 OST도 개봉날인 18일에 맞춰서 같이 나온다.

    ▶ 국내에서 생리대 무상공급을 공약으로 내건 국회의원 후보가 등장한 것이나, 모든 화장실에서 여성 위생용품을 무료로 쓸 수 있게 한 뉴욕시의 사례 등을 살펴봤을 때, 결국 영화는 내밀하게 숨겨져 왔던 문제를 공공정책으로 해소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다.

    보람 : 사실 생리는 똥이나 오줌보다 제어가 안 되는 거다. 똥오줌은 어느 정도 참을 수 있지 않나. 생리는 그게 안 된다. 시나 정부 지원을 받는 건물에서 생리대를 무료로 쓸 수 있게 하는 것은, 시민의 위생과 건강을 위한 정책이다. 그냥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선거의 장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그런 얘기가 나오는 게 너무 재밌었고, 단지 그 순간을 담고자 했다.

    희정 : 뉴욕에서 그런 논의가 있다는 걸 알았고 운 좋게 그 현장에 가게 됐다. 콜롬비아대학은 남자 화장실에도 다 생리대를 비치했다고 하더라. 우리나라에서도 깔창 생리대 사건 터지면서 (무상 공급) 얘기가 나왔고. 그래서 이 부분을 꼭 다뤄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는 18일 개봉하는 영화 '피의 연대기' 특별 포스터 (사진=KT&G 상상마당 시네마 제공)

     

    ▶ 언론 시사회 때 재미, 의미, 정보 세 마리 토끼를 잡고 싶다고 한 것을 봤다. 영화 별점을 스스로 매겨 본다면.

    희정 : 너무 어려운 질문이다. (웃음)

    보람 : 저는 촬영부터 아쉬운 게 엄청 많다. 애니메이션도 더 넣고 싶었는데 돈 때문에 못 넣은 게 있다. 어느 순간 되니까 이 영화의 장점도 알게 됐고 한계와 부족함도 스스로 인정하게 되는 시점이 왔던 것 같다. 다음에 하면 더 잘해야지! 하는 생각? 저는 세 개 주겠다.

    희정 : 전 네 개 반. 왜냐하면 저희 기준이 진짜 높았다. 저희는 돈 많이 쓴 다큐 보면서 자랐고, 그걸 참고하는 넷플릭스 키드였다. 그런 (수준의) 다큐를 만들어 보자고 만든 거다. 물론 제작비가 부족했고 처음이라 아쉬운 점도 너무 많지만, 이 영화만의 힘은 분명히 있다. 여성 제작진이 건강한 환경에서 일한다는 것, 피=생리=우울 이런 느낌을 타개하는, 봤을 때 즐거운 다큐라는 것이다. 비주얼적으로 새로운, 잘 보지 못한 젊은 다큐를 만들고 싶었다. 세 번째로는 영화 외적으로 생리에 대한 담론이 시작되는 지점이 되길 바랐다. 세 가지 다 이룬 것 같다. 그리고 원래 저는 점수를 후하게 주는 편이어서. (웃음)

    보람 : 건강한 환경을 만들려고 했지만 PD님 건강은 악화됐다. (웃음) 제가 괴롭혀서 그런가 보다.

    ▶ 크라우드 펀딩이 시도된 영화이기도 하다. 제작진으로서 더 기분이 남달랐을 것 같은데.

    희정 : 깔창 생리대 사건도 있었고 페미니즘 이슈가 떠오르다 보니, 다들 크라우드 펀딩을 하라고 하더라.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경계하고 있었다. 돈이 되기도 하지만 손이 정말 많이 간다는 문제가 있었다. 저희처럼 둘이 일하는 독립제작사에서는 품이 너무 많이 들었다. 영화가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많은 것을 약속하고 돈을 당겨쓰는 느낌이 들어서 최대한 미루다가, 영화 촬영이 다 끝나고 후반 작업 비용을 모으기 위해 크라우드 펀딩을 했다. 다른 영화와 다른 점이 있다면, 영화 수익이 나면 작게나마 나눌 수 있는 '투자' 개념이라는 거다. 단순히 티켓 등 리워드를 받고 끝나는 게 아니라. 우리 영화 취지에 공감해 주시는 분들이고, 발로 뛰며 응원, 지지, 홍보를 해 주시는 든든한 지원군인 건 확실한 것 같다. 정말 잘돼서 수익을 나눌 수 있다면 기쁘겠다. 즐거운 부담감을 안고 있다.

    ▶ 투자 수익을 나누려면 관객이 어느 정도 들어야 하나.

    보람 : 저희가 참여해 주신 모든 창작자 분들께 인건비를 완납했는데 (희정) PD님과 제 인건비가 안 나왔다. (투자자들이) 투자금 5천만 원 중 원금이라도 가져가셔야 기쁜 마음으로 다른 다큐에 주시지 않을까. 이런 거 저런 거 다 합치면 5만 명 정도로 예상하고 있다. 요즘에 다큐가 워낙 안 돼서 사실 꿈의 숫자이긴 하다.

    '피의 연대기'의 오희정 프로듀서 (사진=황진환 기자)

     

    ▶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로 '여성'을 말하는 시도가 꾸준히 이어져 왔다. 작년에는 '까칠남녀', '뜨거운 사이다', '바디 액츄얼리' 등의 프로가 생겨났고, '차이나는 클래스'와 '말하는대로'에서도 페미니즘 강의가 있었다. 이런 분위기를 목격한 소감은.

    보람 : 불행한 사건 때문에 (이런 분위기가) 촉발됐다는 건 사실 아쉽다. 시장 면에서도 애저녁에 충분히 바뀔 수 있었던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미국도 여성 제작자나 감독이 적긴 하지만 2014년 즈음부터 스트리밍 서비스 통해서 굉장히 많은 콘텐츠가 쏟아져 나왔다. 니즈의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우리나라도) 여성들이 좋아할 만한 작품이 (더 일찍) 나올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근데 어떤 문제가 터지고 나서야 움직인달까. 그렇게 예능에서 새로운 흐름의 프로가 나오긴 하지만, 제일 시청자에게 영향을 미치는 드라마는 아직도 안 그런 이야기가 많은 것 같다. 가난하거나 엄청 고난당하는 캐릭터가 엄청 코디가 잘 된 옷에 풀 메이크업을 하고 나온다거나. (웃음) 한 지붕 안에 사는 여성들의 체구 차이가 거의 없다거나. 아직도 드라마는 엄청나게 많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희정 : 저는 2년 전을 생각해서 비교해 보면 많이 변한 것 같다. 더디지만 변하고 있다는 건 확실히 긍정적인 일 아닐까. 의외로 해외에서 놀라기도 한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는 생리대에 세금을 안 낸다. 근데 (외국은) 10년 동안 (어떤 역사를) 쌓아왔는데도 아직도 생리대나 탐폰 세금을 철폐하기 위해서 싸운다. 저희는 고질적인 문제가 나름 빨리 바뀌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물론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왜 아이들에게 생리대를 무료로 줘야 하는가. 피 흘리는 불쌍한 아이들을 도와줘야 한다는 겉핥기 식 담론에서 그치지 않고 여성의 권리와 선택에 대해 깊은 논의가 병행됐으면 좋겠다. (생리대 무상 공급이) 2년 전에는 포퓰리즘 정책으로 취급받았는데 이제는 가능해졌다. 그럼 지금으로부터 2년 후도 되게 많이 변해있지 않을까. 저희 세대는 뭔가 다른 걸 꿈꿀 수 있을 것 같다.

    ▶ 요즘은 여성혐오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내거나, 자신을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한 사람들이 공격 대상이 되기도 한다. 영화를 만들면서 그런 두려움은 없었나.

    희정
    : 원래 여성주의에 관심 있지도 않았고 '열려 있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냥 상식에 의존하는, '당연히 평등한 게 맞지' 이런 정도였다. 그런데 자기 생리혈을 보여주고 그러니 제가 왜 걱정을 안 했겠나. 전 생리컵 쓰는 것도 되게 오래 걸렸다. 보수적이고 수줍은 사람이다. 그런데 옆에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제가 혼자 하는 게 아니고 다 같이 하고 있으니까. 일상에서 연대가 있었기 때문에 그런 걱정을 덜했던 것 같다.

    보람 : 걱정된다, 저는. 그래서 제가 (영화에) 출연한 것도 있다. 다른 여성분을 출연시키고 싶었는데 (영화 때문에) 반격이 심하게 들어오거나 몇 년 후까지 후회할 수도 있겠다 싶어서.

    ▶ 앞으로 어떤 작품을 만들고 싶나.

    보람 : 기획하고 있는 건 있다. 이번엔 돈 없으면 안 하려고 한다. (웃음) 재밌는 작품 하고 싶은데 일단은 한 작품 마치고 숨이 차 있는 상태라 둘 다 숨을 고르고 있다.

    희정 : 보람 씨가 사회문제를 보고 이면에 있는 중요한 질문을 포착해서 유머러스하면서 알차게 풀어가는 것에 되게 능하다. 다음 작품도 기대할 만하다고 본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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