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이후 '여성혐오'와 '페미니즘' 이슈에 대한 관심이 급격히 높아지면서, 문화 콘텐츠들을 여성주의적 시각으로 읽으려는 시도들이 활발해졌다. 성균관대 문과대학 CORE 사업단이 주최하고 성균관대 문과대학 국어국문학과와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이 주관하는 '페미니스트 시각으로 읽는 한국 현대문화사'도 한 예다. 영화·미술·공연·대중음악·웹툰·팟캐스트·SNS·게임 등 여러 장르에서 전개되는 페미니즘 문화비평을 두루 다루는 이 강의는 16일부터 27일까지 이어진다. 1강부터 10강까지 전 강의를 지상 중계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약 100년 전, 여학생들은 학교에서 '애정발표'를 했다② 영화 '아가씨' 히데코-숙희 옷으로 보는 크로스드레싱③ "이게 작품이냐?"… 여성이기에 폄하 당했던 예술가들<계속>
놀랍게도, 불과 100년 전에는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아름다움을 판단하지 못한다는 믿음이 존재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여성이 이렇게 그림을 잘 그릴 리 없어' 라고 예단하는 역사가 있다.
서구 미술에서 신체를 얼마나 잘 표현하는지가 핵심이었을 당시, 영국 미술왕립아카데미에는 분명히 여성 학생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감히' 남성 누드모델은 그릴 수 없는 위치였기에 교실에서 배제됐다.
밀레니엄을 코앞에 둔 1990년대 말, 영국에서는 한 여성 예술가의 작품이 공공연히 비난당했다. 갓 섹스하고 난 자신의 침대를 작품으로 내자, 대중들은 '이게 작품이냐'며 그 침대를 더럽히며 '그렇다면 이것도 작품'이라 주장했다.
18일 오후, 서울 동작구 대방동 서울시여성가족재단 성평등 도서관에서 '페미니스트 시각으로 읽는 한국 문화사' 3강이 열렸다. 미술작가인 정은영 씨는 '현대미술에서 젠더를 문제화한다는 것-여성 국극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발제에서 젠더 관점을 통한 미술(사) 독해를 시도했다. 기사에는 현대미술 부분만을 정리했다.
◇ 트레이시 에민이 선보인 '문제적 작품들'
영국의 예술가 트레이시 에민의 '나의 침대' (사진=테이트 미술관 공식 유튜브 캡처)
정은영 씨는 페미니즘만큼이나 많은 오해를 받고 있는 현대미술에 대한 언급으로 강의를 시작했다. 그는 "현대미술은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대로 가장 세련되거나 최근의 것만을 말하는 게 아니"라며 "우리가 사는 시간과 공간의 동시성과 통시성을 어떻게 교차시키는가의 문제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정은영 씨는 "현대미술은 어떤 때는 이게 너무 기이하거나 정치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너무 예뻐도 현대적이지 않다는 평가를 받고, 난해하면 난해한 대로 쉬우면 얄팍하다며 예술의 의미가 담겨져 있지 않다고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예술은 결핍되거나 넘치지 않은 중간 상태에서 바르고 아름답게 향유되기를 원한다. 예술이 편합하거나 정치적이면 굉장히 불편해 한다. 미술은 늘 향유(누려 가짐)되어야 하는가. 늘 안전해야 하고 우리를 화나게 하면 안 된다는, 이런 게 과연 맞을까"라고 반문했다.
정은영 씨는 이 같은 의문을 설명하는 데 적절할 것 같다며 영국의 예술가 트레이시 에민을 예로 들었다. 영 브리티시 아티스츠(영국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1990년 당시 젋은 콘셉트의 아티스트들) 출신인 에민은 항상 논쟁적인 작품을 내놔 문제를 일으키는 작가였다.
2000년 영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현대미술상에 출품됐던 '나의 침대'(My Bed, 1999)가 대표적이다. 정은영 씨는 "보시는 바와 같이 갓 섹스를 하고 난 자기의 아주 더러운 침대를 그대로 미술관에 갖다 놨다"고 말했다.
그의 침대에는 스타킹, 옷가지, 콘돔, 정액, 머리카락, 음료수병, 술병, 각종 잡동사니와 쓰레기들이 난잡하게 펼쳐져 있다. 테이트 미술관에 전시되자, 어떻게 이런 걸 미술관에 놓을 수 있느냐며 한바탕 난리가 났다. 대중은 침대를 더럽히면서 '이게 작품이라면 내가 하는 행위도 작품'이라고 주장했다.
영국의 예술가 트레이시 에민의 '나와 함께 잔 모든 사람들' (사진=영국 위키피디아, 트레이시 에민 스튜디오 홈페이지)
더 노골적인 작품은 1997년에 나온 '나와 함께 잔 모든 사람들'(Everyone I Have Ever Slept With)이었다. 1963년부터 1995년까지 내가 잔 모두의 이름을 텐트 안에 패치워크로 새겨 넣었다. 이 중에는 에민의 친지, 어떤 사건을 통해 관계 맺은 사람들의 이름도 포함됐다. 정은영 씨는 "이런 것들이 굉장히 아름다운 패치워크로 수놓아진 것"이라며 "(작품은) 영국 미술계에 파란을 일으키게 되고 작가를 스타의 자리에 올려놓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 작품은 2003년 영국의 미술 소장고가 전소되면서 같이 불타고 말았다. 작품이 사라져 슬프지 않느냐는 질문에 에민은 "내 작업이 불에 탄 건 너무 슬프다. 그런데 우리 정부가 어제 아프가니스탄에 폭격기를 내려 이름 모를 어린 아이들이 무수히 죽어간 게 더 슬프다"고 답했다.
정은영 씨는 "자기의 작업,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을 뛰어넘어 작품 외적인, 굉장히 정치적인 이야기를 가지고 자신을 설명했다"며 "현대미술은 이렇게 복잡한 입체적 공간을 가로지르는 세로축-가로축 만남들 안에서만 이야기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작품의 파격성뿐 아니라 술에 취한 채로 TV에 등장하는 등의 기행 때문에 개인에 대한 논쟁도 불거졌다. 작가로서의 자질이 의심되고, 신상이 파헤쳐졌다. 에민은 터키계 아버지와 영국계 어머니를 두어 이주민으로 오해 받거나, 아름다운 외모 때문에 늘 성적으로 대상화됐다.
정은영 씨는 "조롱조로 '고백의 여왕'이라고 불릴 정도로 미술계의 탕아 같은 사람"이라며 "이 작업 안에는 사회적 맥락에서 자기의 자리를 갖지 못한 여성들이 언제나 성적으로 대상화되고 그것이 역사가 되어버리는 순간들을 담았다. 누군가와의 잠자리가 늘 편한 것은 아니었으며, 강제적인 일도 일어났다는 맥락을 설명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그러나 에민은 이내 명품 브랜드 롱샴과 협업해 아름다운 가방을 만들어 냈고, 그 가방은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정은영 씨는 "페미니스트, 이주민과 소수자라는 정체성, 정치를 생각하는 평화주의자이지만, 소비주의와 자본주의의 첨병 역할도 했다는 복잡성을 읽을 수 있다"며 "에민의 복잡성에서 우리는 자기 성별의 경험을 문젯거리로 쓰는 걸 발견할 수 있다"고 전했다.
18일 오후, 미술작가인 정은영 씨가 서울 동작구 대방동 서울시여성가족재단 성평등 도서관에서 '현대미술에서 젠더를 문제화한다는 것-여성 국극 프로젝트를 중심으로'를 발제하고 있다. (사진=김수정 기자)
◇ "왜 위대한 여성미술가는 없는가?"… 정말 그런가여성이라는 이유로 진지하게 고려되지 못해 합당한 예술가로서 평가를 받지 못하는 역사는 과거부터 꾸준히 쌓이고 있었다. 여성인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가 그린 자화상은 오랫동안 남성 작가가 그린 것으로 해석돼 왔다. 여성은 자화상을 그릴 때 이렇게 열정적이지 않으리라는 것이 근거였다. 열정과 프로페셔널함은 남성 고유의 가치이기 때문에.
정은영 씨는 "남성들이 보기에 이런 여성은 말이 안 되는 거다. 왜냐하면 너무 잘 그리니까. 이렇게 잘 그리면 자신들이 논리에 큰 오류가 생긴다. 너무 잘 그려서 이건 '틀림없이 여자의 작업일 수 없다'고 했다"고 말했다. 잘함=남성의 공식이 무너지자, 삶과 행실이 새로운 공격 타깃으로 떠올랐다.
여성 투표권을 주장하며 투쟁하는 '서프러제트'를 이끌던 에멀린 팽크허스트에게 사형이 구형된 날, 메리 리처드슨이라는 여성이 스페인 남성 작가 벨라스케스의 '거울 속의 비너스'를 손도끼로 난도질하는 사건이 있었다.
당대 미술에서 계몽적인 역할을 했던 작품이 수난을 겪은 이유는 뭘까. 메리 리처드슨 역시 서프러제트였다. 정은영 씨는 "진정한 여성의 아름다움은 팽크허스트 같은 것이라고 봤다. 여성의 권위와 정치적 참여를 위해 자기 삶을 모두 버리고 이를 구현하려는 역사적 인물에게 사형을 내리는 나라의 국립 박물관에 '거울 속의 비너스'가 있었다. 많은 지식인 남성들은 이 그림을 찬미했고. 리처드슨은 이것에 너무 화가 났다는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1914년 3월 영국 국립 박물관에서 체포될 당시 메리 리처드슨의 모습 (사진=김수정 기자)
그는 "재판 기록을 보면 '(거울 속의 비너스'를 찬양하던) 남자들을 다 죽여 버리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해 그림을 잘랐다고 나와 있다"며 "리처드슨은 폭력 시위를 해서 구속된 게 없다. (여성이라) 아름다움을 판별할 수 없는데 (아름다움에 대한 가치평가를 하니) '광인'이라며 정신병원으로 보내지게 된다"고 부연했다.
정은영 씨는 "그동안 우리가 미를 안다는 건 절대적인 규범이었다. 아름다움을 판단할 때 주관이 개입돼선 안 된다는 식이었다"며 "그런데 리처드슨은 ('거울 속의 비너스'가) 세상에서 제일 추하다고 느꼈다. 이는 목적 없이 미가 판단되는 게 아니라 어떤 사람들의 삶과 관계해 미학적 판단이 가능할 수 있다는 힌트를 페미니스트들에게 준 것"이라고 밝혔다.
페미니스트 관점의 글로는 처음 아트 포럼에 실렸던 린다 노클린의 '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없는가'(1971)는 여전히 유용한 관점을 제공하고 있다. 정은영 씨는 "성별을 통해 역사 저술과 비평어를 만드는 데 완전히 개입할 수 있다는 관점을 심어준 것이 노클린의 성과다. 단지 페미니즘 미술사가 가능한지 아닌지를 넘어, 문화 비평이라는 관습적 서술의 세계에서 페미니스트들의 관점으로 이곳의 당연한 규범을 어떻게 격파할 수 있는지 질문한다"고 평가했다.
"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없는가"라는 노클린의 질문은 중의적 의미를 지녔다. 실제로 왜 없었는지를 물음과 동시에, 여성 미술가들을 잘못 이해해 기회를 주지 않았던 구조를 폭로한다는 것이다. 영국 미술왕립아카데미에서 남성 누드화 수업에 들어갈 수 없었던 여성들이 한 예다. 누드화 수업을 강요하는 아카데미의 방침에도 여성은 (남성 누드라는 이유로) 들어가지 못해 교육 받을 기회를 놓쳤고, 이는 불평등한 사회 구조에서 기인했다는 설명이다.
반면, 2세대 페미니스트였던 그리젤다 폴록과 로지카 파커는 실제로 연구해 보니 19세기 이전 여성 미술가들이 너무 많았다며 노클린의 주장을 반박했다. 과거 미술사 교본에는 여성 미술가 세션이 따로 있었지만, 오히려 19세기에 들어서면 여성의 존재가 빠졌다.
정은영 씨는 "폴록은 이런 역사서술이 어떤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있고, 어떤 구조 속에서 끊임없이 역사 지식의 장이라는 걸 만들어 내고 있는지 문제 삼아야 하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미술사는 폐기되고 완전히 해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클린이 말하듯 그동안 왜 여성 미술가가 없었느냐며 여성 미술가를 찾아서 남성의 역사 속에 집어넣는 건 절대 좋은 일이 아니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2세대 페미니스트 그리젤다 폴록과 로지카 파커는 '여성, 미술, 이데올로기'(1980)라는 글로 린다 노클린이 쓴 '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없는가'(1971)를 반박했다. (사진=김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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