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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여자'… 1970년대 미디어의 성매매 여성 낙인찍기



문화 일반

    '이상한 여자'… 1970년대 미디어의 성매매 여성 낙인찍기

    [페미니즘으로 문화 읽기 ④] 호스티스 영화와 유흥의 시대

    2015년 이후 '여성혐오'와 '페미니즘' 이슈에 대한 관심이 급격히 높아지면서, 문화 콘텐츠들을 여성주의적 시각으로 읽으려는 시도들이 활발해졌다. 성균관대 문과대학 CORE 사업단이 주최하고 성균관대 문과대학 국어국문학과와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이 주관하는 '페미니스트 시각으로 읽는 한국 현대문화사'도 한 예다. 영화·미술·공연·대중음악·웹툰·팟캐스트·SNS·게임 등 여러 장르에서 전개되는 페미니즘 문화비평을 두루 다루는 이 강의는 16일부터 27일까지 이어진다. 1강부터 10강까지 전 강의를 지상 중계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약 100년 전, 여학생들은 학교에서 '애정발표'를 했다
    ② 영화 '아가씨' 히데코-숙희 옷으로 보는 크로스드레싱
    ③ "이게 작품이냐?"… 여성이기에 폄하 당했던 예술가들
    ④ '이상한 여자'… 1970년대 미디어의 성매매 여성 낙인찍기
    <계속>

    1974년에 개봉해 크게 흥행했던 영화 '별들의 고향' (사진='별들의 고향' 캡처)

     

    전두환이 쿠데타로 대통령이 된 후 정부를 향한 불만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3S(Sex, Sports, Screen) 정책을 썼던 때는 1980년대였다. 하지만 그 이전부터 '호스티스 영화'는 활발히 만들어지고 있었다.

    호스티스 영화란, 말 그대로 호스티스(술집에서 시중을 드는 여성, 접대부)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다. 영화계 불황 속에서도 서울 관객 46만 명을 동원하며 크게 흥행한 '별들의 고향'(1974)이나,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애썼지만 결국 호스티스 여성이 되고 마는 여성을 그린 '영자의 전성시대'(1975) 등이 대표적이다.

    19일 오후, 서울 동작구 대방동 서울시여성가족재단 성평등 도서관에서 '페미니스트 시각으로 읽는 한국 문화사' 4강이 열렸다. 역사학자인 김대현 씨는 '호스티스 영화와 유흥의 시대-1970년대 유흥업과 섹슈얼리티의 문화정치'에서 국가가 어떻게 성매매 여성을 관리 혹은 방치했는지, 미디어는 어떤 식으로 성매매 여성을 재현했는지를 설명했다.

    ◇ 공창제 폐지 후에도 성행했던 겸업 성매매

    김대현 씨는 흔히 생각하는 집결지 내에서의 전업 성매매만이 아니라 여러 가지 겸업 성매매가 늘 존재해 왔다는 점을 먼저 짚었다. 보도방, 룸살롱, 콜걸, 오피(스)걸 등 여러 갈래로 이어지는 현재와 마찬가지로, 1950~1960년대에는 겸업 성매매가 활발히 이뤄졌다는 것이다.

    가게에서 음식을 팔면서 이루어지는 '음식매춘', 소개로 성 구매자와 연결되는 '소개매춘'과 여관·호텔 등 숙박업소에서 진행되는 매춘, 하숙집에 성매매 여성을 거주시키는 방식의 매춘 등 다양했다.

    국내에 미군이 입성하고 나서 '공창제'는 폐지됐으나 이는 눈속임에 가까웠다. 1948년대의 기록에서도 일제시대 때 있었던 예기(기생), 작부(술 따르는 여성), 여급(카페나 음식점에서 손님 시중을 드는 여성)이라는 구분이 유지됐다. 국가가 관리하고 운영했던 '창기'(전업 성매매 여성)라는 말만이 사라졌을 뿐이었다.

    1962년에는 겸업 성매매 여성들에 대한 법 조항이 '식품위생법시행규칙'에 포함됐다. (사진=김수정 기자)

     

    김대현 씨는 "(이런 기록은) 국가가 겸업 성매매를 규정한 후 관리하거나 방조했다는 증거가 된다"고 설명했다. 박정희의 군사 쿠데타 이후에는 겸업 성매매 관련 조항이 '식품위생법시행규칙'에 포함되는데, 이를 두고는 "한국의 많은 일반음식점 근무 여성들이 성매매에 노출돼 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그는 "지역 실비집에 가면 여전히 술 따르는 여성이 있듯, 성매매 집결지 여성만으로 사회에 산재한 성매매를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며 "1960년대에는 비밀 요정(고급 요릿집)이 많고 밥집, 술집 여종업원이 문을 닫고 사실상 접객부로 활동하는 경우들이 있었다"고 전했다.

    1960년대부터 70년대까지 다방, 캬바레, 살롱, 바, 비어홀, 고고클럽, 관광나이트클럽 등 여러 유흥업소가 있었다. '선데이서울'에 나온 광고를 보면 호스티스 지원자격은 '고졸 이상'이었고, 특히 아르바이트를 할 여대생의 경우 '특별우대'하며 '비밀보장'하겠다는 문구가 붙어 있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관광나이트클럽이다. 김대현 씨는 "(통금이 있어서) 11시 30분(밤) 이전까진 다 들어가야 하는데, 관광나이트클럽은 오전 4시까지 심야영업을 허용했기 때문"이라며 "(앞서 말한) 유흥업소가 호스티스 영화에 많이 나온다"고 밝혔다.

    ◇ 영화 속, 통속잡지 속에서 그려진 호스티스 여성의 모습

    영화 '별들의 고향'의 경아와 '영자의 전성시대'의 영자는 모두 호스티스 여성이다. (사진=각 영화 캡처)

     

    김대현 씨는 1970년대에 속출했던 호스티스 영화와 '선데이서울'로 대표되는 통속잡지를 비롯해 언론 보도에 나타났던 성매매 여성의 모습이 어땠는지를 살폈다.

    흥행작 '별들의 고향'은 지금의 시선에서 보면 적지 않은 사람들이 괴로워할 만한 내용으로 가득 차 있었다. 첫사랑에 실패한 경아는 중년의 부잣집 남성 후처로 들어갔다가 과거 임신중절수술 사실이 탄로나 버림받고, 유흥업소 여성이 된다. 이후 자상한 화가 문오를 만나 동거하지만 또 다시 버림 받고 결국 알코올 중독자가 돼 눈 내리는 거리에서 시체로 발견된다는 얘기다.

    '영자의 전성시대'도 호스티스의 삶을 그린다. 식모로 들어간 집 아들에게 성폭행을 당한 영자가 버스 차장을 하다가 팔을 잃고 불구의 몸으로 성매매를 하는 게 이야기의 큰 줄기다. 영화에는 성매매 집결지가 아닌 다른 곳에서 어떤 식으로 성매매가 이뤄졌는지부터, 성병에 걸렸을 때 개인 의원을 들르는 영자의 모습을 비추면서 그가 성매매 집결지 여성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영자가 괴로워하며 물건을 집어던지자 동료가 "이게 네 거냐"하는 대사에서는 겸업 성매매 여성에게도 선불금(미리 내는 돈)이 있었다는 걸 보여준다.

    김대현 씨는 "호스티스 영화들에는 이렇게 여성들이 굉장히 힘들어 하는 장면들이 많이 나온다. (성매매 여성이 되면서) 어떻게 불행한 삶을 사는지 그리는 영화"라며 "당시 배우들은 창녀 역을 맡는 걸 선호했다. 배역으로서 열연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 사실 전달보다는 '낙인'과 '희화화'에 집중했던 통속잡지들

    당시 통속잡지에는 호스티스 여성 관련 정보가 많이 담겨 있었다. 아래 '선데이서울'에 실렸던 광고를 보면 '호스테스(고졸이상)', '여대생 아르바이트 특별우대(비밀보장)'이라고 쓰여 있다. (사진=김수정 기자)

     

    당시 '선데이서울', '주간경향', '야담과 실화' 등의 통속잡지에는 호스티스 정보들이 꽤 많이 들어가 있었다. 하지만 이들을 존중하거나 섬세하게 다루려는 노력은 찾아보기 힘들었고, 사실 여부에도 물음표가 찍히는 편이었다.

    김대현 씨는 '야담과 실화'에 실렸던 '직업방담: 다방 매담(마담)이 본 세태만상'(1961)과 '이색방담: 다방 '매담'이 실토하는 실토하는 남성 10악장'(1970)이 이름만 다르고 내용이 똑같았다는 것을 한 예로 들었다. 그러면서 "철저히 재미로 팔았던 잡지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호스티스 영화가 무분별하게 양산되기 전인 1973년 '선데이서울'에는 유흥업소에 종사하는 마담(17명) 르포가 연재됐다. 김대현 씨는 "이 일을 하게 된 이유가 거의 다 결혼 실패, 이혼 등이었고 성폭력도 있었다"고 부연했다.

    그는 당시 여성을 대상으로 한 구인광고를 보여주며 "(성매매 여성들이) 원래부터 성매매를 하려고 했던 건 아니다. 버스 여차장 등도 있지만 여성이 구할 수 있는 직업이 너무 한정돼 있었다"고 전했다.

    김대현 씨는 "(호스티스 여성들에 대한 기록이 사실인지보다는) 낙인과 희화화가 존재했다는 게 훨씬 중요하다"면서 미디어가 이들을 '이상한 여자'로 묘사한 것에 집중했다. '중앙의학'에 실린 '윤락여성에 대한 문장완성법검사'(1964)를 보면 윤락여성들이 "정신의학적으로 볼 때에 최소한 병적 상태에서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고 쓰여 있다. 김대현 씨는 "'이상한 여자'라고 함으로써 (성매매를) 여성 개인의 책임으로만 몰고 가는 담론"이라고 덧붙였다.

    김대현 씨는 "성폭력이 (우리 사회에) 의제화된 게 1990년대다. 그 전의 역사를 상상할 필요가 있다"면서 '의제화되지 않음을 슬픔'을 거론했다. 이어, "성매매 여성은 낙인밖에 없기 때문에 주체적인 복원이 불가능하다"며 "이런 낙인은 '나와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는 데서 나왔다"고 진단했다.

    역사학자 김대현 씨가 19일 오후, 서울 동작구 대방동 서울시여성가족재단 성평등 도서관에서 '호스티스 영화와 유흥의 시대-1970년대 유흥업과 섹슈얼리티의 문화정치'라는 주제로 강의하고 있는 모습 (사진=김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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