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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1년] 트럼프와 다카의 역설 그리고 셧다운



미국/중남미

    [트럼프 1년] 트럼프와 다카의 역설 그리고 셧다운

    • 2018-01-21 14:36

    '드리머' 김정우 "트럼프 빠르고 일관성 있는 건 인정…트럼프가 짜놓은 판엔 안 들어가"

    김정우 씨(34)가 미국 워싱턴DC에서 불법체류 2세 청년들의 법적지위를 보장하는 드림액트 통과를 의회에 촉구하는 집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김정우 씨 제공)

     

    김정우(33)씨는 어릴 때 미국에 건너온 불법체류 청년, 이른바 ‘드리머(dreamer)’다. 2012년 오바마 전 대통령이 도입한 불법체류 청년 추방유예 프로그램, 다카(DACA)의 수혜자로, 현재 미국 캘리포니아 오렌지카운티에 살고 있다. 한국계가 주축이 된 이민자 단체, 민족학교(Korean Resource Center)의 일을 돕고 있다.

    정우 씨는 미국 각 지역에서 모인 드리머 청년들과 함께 워싱턴DC에 집결했다. 그는 드리머들의 법적 지위를 보장하는 법안 이른바 '드림액트' 통과를 위해 지난주부터 미 연방의회에서 의원 사무실 기습 방문과 가두집회 등 의원들을 압박, 설득하기 위한 각종 집회에 참가 중이다. 기자는 그가 워싱턴에 머물고 있는 동안 인터뷰를 진행했다.

    ◇ "나는 없는 사람...학교도 못가고 운전은 물론 처방약조차 살 수 없었다"

    김정우 씨가 누나와 함께 미국에 온건 1999년이었다. 당시 15살이었다. 처음에는 언어의 어려움이 있었지만 밝은 성격의 그는 금방 적응했다. 고교 졸업까지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여느 또래 친구들과 같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부터였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에서 입학허가를 받았다. 등록을 하려고 하자 사회보장번호(SSN)를 요구했다. SSN이 없다고 하자 외국인 학생으로 등록하려면 학생비자를 받기 위해 I-20를 내야한다고 했다. 그제서야 자신이 ‘서류미비자’ 한마디로 불법체류자라는 현실을 깨닫게 됐다.

    같이 공부하고, 같이 놀던 친구들이 아무런 문제없이 대학에 진학하는 모습을 그저 지켜봐야만 했다. “돈이 없다거나 어렵다는건 그래도 뭔가 힘들지만 해볼 수 있다는 것이잖아요. 근데 이건 어려운게 아니라 내 의지로는 할 수 없는 불가능한 것이었어요.” 정우 씨는 처음으로 어찌해볼 수 없는 깊은 무력감과 좌절에 맞닥뜨렸다.

    그는 돈이라도 많이 벌어보자는 심산으로 뉴욕으로 갔다. “생활정보지 구인란에 있는 직업중에 네일아트나 헤어드레서 이런거 빼고는 다 해본 것 같아요. 건설현장이나 신문배달, 청소부, 수리공, 심지어 베이비시터까지 돈 되는 건 다 해봤습니다.”

    그러나 불법체류 신분으로 할 수 있는 일은 한정돼 있었고, 경험이 쌓여도 급료가 오르거나 진급이 되는 일이 없었다. “더 괴로운 것은 운전면허가 없으니 운전도 못하고, 집도 살 수 없고, 심지어 병원을 가거나 처방약을 받을 때도 신분이 필요한 거에요. 그냥 권리 자체가 없는거죠.”

    급기야 그는 뉴욕에서 1주일 동안 홈리스(노숙자) 신세로 추락한 적도 있었다고 했다. 뉴욕의 가장 긴 지하철 구간인 A라인 열차를 타고 끝에서 끝까지 가면서 잠을 청하기도 했고, 센트럴파크가 너무 추울 때는 남의 집 가게를 정리해주면서 추위를 버티기도 했다.

    ◇ 임시로 얻은 신분 DACA, 마침내 아메리카 드림을 맛보다

    그러던 그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캘리포니아 주에서 불법체류 청년들이 대학에 입학할 수 있도록 법이 만들어졌다는 소식을 듣게 된 것. 22살이던 2006년, 정우 씨는 캘리포니아로 돌아와 한 커뮤니티 컬리지(일종의 직업전문대학)에 지원했다. 그러나 대학 측에서는 그의 등록을 거부했다.

    변호사를 찾아 백방으로 뛰었고, 마침 민족학교에서 무료 법률상담을 통해 변호사를 알게 됐다. 대학에 소송을 진행했고, 공방 끝에 결국 입학허가를 받아냈다. 그가 생애 최초로 느껴본 큰 성취감이었다. 정우 씨가 진행한 소송 덕에 이후 많은 불체 청년들이 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다.

    그가 대학에 진학을 했을 때는 2008년이었다. 정우 씨는 그래도 자신이 운이 좋은 편이라고 했다. 2012년 대학을 졸업했을 때 마침 당시 오바마 대통령이 다카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불과 2년짜리 고용허가였지만 처음으로 법적 지위를 갖게 됐다. 합법적으로 취업할 길이 열린 것이었다.

    몇 군데 면접을 봤지만 떨어졌다. 28살이 되도록 직업 경력을 쌓을 수 없었기 때문. 어렵사리 들어간 한 보험회사에서 그는 영업직을 맡게 됐다.

    “돈을 많이 벌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더니 상사가 하는 말이 하루도 빼먹지 말고 매일 15명만 만나래요. 그러면 된다고. 그래서 저는 하루에 20명을 만났어요. 길에서도 엘리베이터에서도 사람들에게 명함을 건네고 말을 걸었습니다. 나중에는 4개월 만에 17만 달러(약 2억원)를 벌었어요. 그리고는 더 좋은 조건으로 스카웃도 됐죠.”

    상상만 했던 아메리칸 드림이 눈 앞에 다가왔다. 정신없이 돈 벌기에 열중했던 그는 어느날 일을 그만두고 자전거를 타고 미국 횡단에 나서기로 했다. 추방유예 신분이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남은 시간을 가장 값지게 보내는 방법을 찾은 것이 자전거 횡단이었다.

    그는 자전거를 타고 미국을 횡단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일자리를 잃은 광부들과 생계가 팍팍해진 카우보이들을 만나면서 그는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을 직감했다고 했다. “그들은 과거처럼 열심히 일하는데도 삶이 점점 힘들어지는 것을 이해하기 힘들어했어요. 그리고 하나같이 트럼프가 좋은게 아니라 힐러리가 싫다고 말하더군요.”

    ◇ 질질 끌던 드림액트. 트럼프가 동력 제공...'다카의 역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이한형기자

     

    예상대로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됐고, 그가 공약한 대로 다카 프로그램은 폐지 수순을 밟게 됐다. 정우 씨를 비롯한 80만명의 드리머들은 다시 추방 위기에 놓이게 됐다. 그가 불체 청년 구제 입법, 이른바 드림액트(Dream Act) 운동에 뛰어든 계기다.

    흥미로운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드림액트 운동에 상당한 동력을 제공했다는 점이다. 사실 드림액트는 지난 2001년부터 추진돼 왔지만, 이민 강경론자들에 번번이 막혀 논의가 하염없이 늘어졌다.

    오바마 전임 대통령도 너무 자신의 평판 관리에 치중하느라 드림 액트를 세게 밀어붙이지 못했다고 정우 씨는 비판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자신의 평판을 깎아내리는 일을 하지 않으려 했어요. 누구에게나 굿 가이(좋은 사람)가 되려고 했으니까 민주당이 다수당일 때조차 드림액트를 성사시키지 못했어요.”

    사실 오바마 전 대통령이 도입한 다카 프로그램은 대통령 행정명령으로 불체 청년들의 추방을 일정기간 유예하는 임시방편에 불과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런 임시방편은 헌법에 위반된다며 지난해 9월 중단 의사를 밝혔고, 오는 3월 전까지 보완 입법을 만들라고 의회에 요청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협상에 치중하는 스타일이라 그런지 일이 정말로 빨리 진행되는 건 있는 것 같아요. 오바마 때는 질질 끌었던 이슈가 벌써 법안을 만드는 단계까지 와버렸으니까요. 트럼프 대통령이 동력을 제공한 것은 확실히 있는 것 같아요.”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드림액트를 일종의 협상카드로 활용하는 전략을 펴고 있다.

    그는 민주당이 요구하는 드림액트 통과에 공화당이 협조하는 대신 민주당이 국경장벽 예산이 포함된 예산법안을 통과시켜 주길 요구하고 있다. 또 이렇게 탄력을 받아 가족초청이민이나 영주권 추첨제 등을 폐지하는 포괄적 이민개혁까지 끌고 간다는 방침이다.

    ◇ 다카에 되치기 당한 트럼프..취임 1주년에 셧다운 봉변

    드림액트 통과를 촉구하며 가두집회를 벌이고 있는 다카 프로그램 수혜자들 (사진=김정우 씨 제공)

     

    최근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인들의 60% 가량이 다카 프로그램에 들어간 불체 청년들에게 일정한 법적 지위를 보장해줄 필요가 있다고 응답했다.

    16세가 되기 전에 미국에 들어와 고교 졸업까지 마치고 별다른 범죄 전력이 없어야 다카 프로그램의 수혜를 받을 수 있다. 이미 검증을 거쳤고, 미국식 교육을 받고 사회에 일익을 담당하고 있는 청년들인만큼, 이들을 받아들이는 것은 큰 문제가 없다는 공감대가 미국 사회에 형성돼 있다.

    이왕에 드림액트를 통과시키는 쪽으로 가닥이 잡힌 만큼, 이것을 허용해 주는 대신 국경장벽을 포함해 포괄적 이민개혁으로 가겠다는 것이 트럼프 대통령의 전략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전략에 발목이 잡혔다. 민주당이 드림액트를 국경장벽 예산이 아닌 임시 예산법안과 연계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아직도 2018년 예산법안이 통과되지 못한 상태여서, 지난해 예산에 준하는 한두달 짜리 임시 예산법안을 통과시키며 연명하고 있는 상태다. 앞서 지난달 통과된 임시예산은 지난 19일에 시한이 끝났다.

    미국 연방 상하원은 새로운 임시예산 법안을 통과시켜야 했지만, 민주당이 드림액트를 임시예산 법안과 연계하면서 20일(현지시간) 새벽 0시 상원은 임시 예산법안에 대한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다.

    결국 연방정부는 이날부터 예산 부족으로 인한 일시 업무정지, 즉 셧다운(shutdown)에 들어갔다. 20일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당선된지 딱 1년 되는 날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선 1주년에 연방정부 셧다운이라는 씁쓸한 선물을 받아들어야 했다. 그는 1주년 기념 행사도 취소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다카 폐지를 선언하면서 오히려 드림액트는 동력을 얻었고, 이것은 다시 트럼프 취임 1주년을 맞는 날 연방정부 셧다운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트럼프식 협상 전략이 가져온 다카의 역설은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까.

    김정우 씨는 트럼프 대통령을 두고 “더럽게도 일관성 있는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다카 구제법안인 드림액트를 지렛대로 이민제도 개편을 얻어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다.

    정우 씨는 “우리 때문에 다른 이민자들이 불이익을 받아야 한다면 우리는 당장 드림액트를 요구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이 짜놓은 판 안에서 움직이는 것은 안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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