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자료사진)
특정 판사들의 동향 등과 관련한 비공식적이고 광범위한 정보수집이 법원행정처를 통해 이뤄졌다는 법원 추가조사위원회(위원장 민중기 서울고법 부장판사) 조사 결과가 나왔다.
다만 이번 결과는 동향 파악 문건 등에 대해 사법행정권의 지나친 개입이라고 인정하면서도 관심을 끈 '사법부 블랙리스트' 존재에 대해서는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않아 여전히 논란의 불씨를 남길 전망이다.
법원 추가조사위는 22일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에 대해 "법원행정처가 그동안 사법 불신에 대한 대응, 사법행정 목적의 달성, 법원장의 사법행정권 행사 보완 등을 이유로 가능한 공식적, 비공식적 방법을 모두 동원해 법원의 운영과 법관의 업무뿐만 아니라 그 이외의 영역에 관해서도 광범위하게 정보수집을 해온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특히 "특정연구회 소속 법관들을 핵심그룹으로 분류해 그 활동을 자세히 분석하고 이념적 성향과 행태적 특성까지 파악해 대응 방안을 마련한 것도 법관의 연구 활동에 대한 사법행정권의 지나친 개입으로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추가조사위는 사법행정 담당자들이 법관의 동향이나 성향 등을 파악해 작성한 문서 가운데 법관의 독립을 침해할 우려가 있는 문서를 여러 건 제시했다.
추가조사위가 밝힌 문건은 블랙리스트 의혹을 촉발한 국제인권법연구회의 공동학술대회 대응 문건 외에도 ▲사법행정위원회 개선 요구에 대한 대응 방안 ▲서울중앙지법 단독판사회의 의장 경선 대응 방안 ▲사법행정위원회 위원 후보자 검토 ▲각급 법원 주기적 점검 방안 ▲'이판사판야단법석' 다음 카페 현황보고 ▲상고법원 관련 내부 반대 동향 대응 방안 등이 포함됐다.
또 칼럼을 투고하거나 내부전산망에 글을 올린 판사들에 대한 정보 수집도 이뤄졌다.
추가조사위는 '서울중앙지법 단독판사회의 의장 경선 대응 방안'과 관련해 "법원행정처가 특정 법원의 판사회의 의장 경선과 관련해서 출마 예정자의 프로필과 경력 등의 신상 정보를 확인하는 선을 넘어 경선 출마의 경위와 지원 법관들의 세부 동향까지 파악했다"며 "그 대응전략으로 다른 판사의 의장 경선 지원 방안을 구체적으로 검토한 것은 대응 방안의 실행이나 성공 여부를 떠나서 그 자체로 부적절한 사법행정권의 행사이고, 사법행정권의 판사 회의에 대한 부당한 개입으로 보일 소지가 있다"고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사법행정위원회 위원 후보자 검토' 문건에 대해서는 "후보자 검토 내용은 이른바 진보적 성향을 가진 법관도 많이 추천되도록 해 균형 있는 위원회가 구성된 것과 같은 외양을 갖추려고 했지만, 실질적으로는 진보적 성향을 가진 법관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온건하거나 보수적 성향의 법관들이나 '주류 법관'들을 추천하고, 검토 문건에서 이른바 '강성(强性)'으로 평가된 법관들을 배제하려고 노력한 정황이 다분하게 나타난다"고 밝혔다.
블랙리스트 의혹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시절인 지난해 3월께 불거졌다. 법원이 특정 성향의 판사들과 관련한 문서를 작성해 관리하면서 이를 활용했다는 내용이 골자다.
논란의 시작은 법원행정처가 사법부 내 학술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의 '사법부 개혁' 관련 학술대회 행사를 축소하도록 법원행정처 심의관으로 발령 난 이 모 판사에게 부당한 지시를 내렸다는 게 알려지면서부터다.
이후 '판사들 뒷조사한 파일이 있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사태는 더욱 커졌고 대법원은 논란이 확산하자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려 자체 조사에 나섰다.
진상조사위는 지난해 4월 조사 결과를 토대로 사법개혁 움직임을 견제하기 위한 부당 지시 등 일부 사법행정권 남용 행위가 있었다고 밝혔다. 다만 관심을 끈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은 실체가 없다는 결과를 내놨다.
당시 진상조사위는 논란이 된 법원행정처 컴퓨터와 이메일 서버에 대한 조사 협조를 법원행정처에 구했지만, "작성자 동의 없이 요청을 수락할 권한이 없다"며 거부해 강제 조사에 이르지 못했다.
이후 일선 판사들을 중심으로 재조사 요구가 이어졌고 지난해 9월 취임한 김명수 대법원장은 두 달뒤 추가조사를 결정했다.
추가조사위는 최근 블랙리스트 문건이 저장된 것으로 지목됐던 법원행정처 컴퓨터는 물론, 이를 사용한 업무 담당자들을 상대로 대면조사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