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종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 (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우리 기업들이 미국에 공장을 설립해 미국 경제에 기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투자기업들에게 불이익을 가한 점은 납득하기 어렵다"(김현종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
미국 정부가 23일 한국산을 포함한 수입 세탁기‧태양광 제품에 대한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 조치를 발표한 것에 대해 우리 정부는 불편한 심경을 감추지 않은 채 정면 맞대응 방침을 밝혔다.
이날 오전 김현종 본부장 주재로 열린 긴급 민관합동대책회의에선 혹시나 했던 기대가 역시나로 끝난 것에 대한 실망과 함께 미국 측에 대한 섭섭한 감정이 별 여과 없이 투영됐다.
김 본부장은 모두발언에서부터 이번 세이프가드가 과도하고 발동 요건도 전혀 충족하지 못한 조치임을 강조하며 유감을 표명했다.
급격한 수입 증가나 심각한 산업 피해, 이 둘 간의 인과관계 등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세계무역기구(WTO) 상소기구 재판관 경력을 언급하며 “이번 세이프가드 조치는 WTO 협정에 위배된다”고 단언했다.
그는 삼성, LG 등 우리 기업들이 미국에 대대적으로 투자해 미국 경제에 기여해왔음에도 이런 처분이 내려진 것에 서운함을 나타내기도 했다.
그는 “그동안 정부와 업계는 세이프가드 조치의 문제점과 부당함을 다양한 채널을 통해 미측에 적극 제기하여 왔으나 미국은 국제 규범보다는 국내 정치적 고려를 우선시한 조치를 결국 선택했다”고 말했다.
정부는 일말의 기대를 품었던 미국의 세이프가드가 현실화되는 등 미국의 통상 압력이 더욱 거세짐에 따라 적극적인 대응 전략을 본격화하고 있다.
미국 측의 요구에 따른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2차 협상도 이달 말이나 다음달 초 서울에서 열릴 예정이다.
정부는 일단 세탁기·태양광 세이프가드에 대해서는 WTO에 제소하기로 했고 관련 국가들과 공동대응하는 방안도 모색한다는 방침이다.
동시에 미국에 대해 양자협의를 즉시 요청해 보상방안 등을 논의할 계획이며, 보상협의 결렬시에는 양허정지도 적극 추진하기로 했다.
양허정지는 상호 협정에 따라 상대국에 부여해온 관세 혜택을 더 이상 부여하지 않는 것이다. 사실상의 보복관세를 매기는 셈이다.
정부는 또 미국을 상대로 승소한 WTO 세탁기 반덤핑 분쟁과 관련한 양허정지를 22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 WTO 분쟁해결기구(DSB) 정례 회의에서 승인 요청했다.
미국 측은 지난 2012년 한국산 세탁기를 대상으로 9~13%의 반덤핑 관세를 부과했고, 이에 우리 측은 WTO에 제소해 2016년 9월 최종 승소했지만, 미측은 ‘합리적 이행기간’(RPT)인 지난해 12월26일까지도 후속조치를 이행하지 않고있다.
역시 WTO에서 승소한 유정용 강관에 대해서는 일단 미국 측에 반덤핑 기법 시정 등의 이행을 촉구한 상태이며 불이행시에는 마찬가지로 양허정지를 요청하기로 했다.
정부는 상대가 비록 미국이지만 WTO를 통한다면 승산이 충분하다며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김 본부장은 “그동안 정부는 2002년 철강 세이프가드, 2013년 세탁기 반덤핑, 2014년 유정용 강관 반덤핑 등 미측의 과도한 수입규제 조치에 대해서 WTO에 제소하여 여러 번 승소한 바 있다”면서 “(이번에도) 승소할 수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그는 또 “미국이 자국산업 보호를 위해 16년 만에 세이프가드를 꺼내들었지만, 그동안 기술혁신을 바탕으로 세계시장에 활발히 진출해 온 우리 기업의 앞길을 막지는 못할 것”이라며 “정부는 업계 애로 해소와 국익 수호를 위해 단호하게 대응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다만 WTO 분쟁 해결 절차는 시간이 걸리는데다 트럼프 행정부의 일방주의로 인해 원활한 협의가 지연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이를 감안해 세탁기의 경우 미국 공장의 조기가동을 지원하거나 대체 수출시장 확보, 태양광 산업에 대해서는 수출 다변화와 내수시장 확대 등을 지원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