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인 마크 저커버그. (사진=유튜브 화면 캡처)
지난해부터 전 세계적인 가상화폐 열풍이 부는 가운데, 페이스북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인 마크 저커버그는 올해 초 "가상화폐를 공부하겠다"는 새해 결심을 밝혔다.
저커버그는 지난 4일(현지시각) 자신의 페이스북에 "암호화와 가상화폐 같은 주제를 공부하는 데 시간을 보낼 예정"이라면서 "현대 기술과 관련해 가장 흥미로운 주제는 중앙집권화와 분권화"라고 전했다.
그는 "소수의 IT 기업들이 인기를 끌자 정부는 인터넷과 같은 현대 기술을 이용해 사람들을 감시하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인터넷 기술의 '탈 집중화' 효과에 대한 믿음을 저버렸다"고 말했다. 인터넷이 권력을 분산시키고 정보도 스스로 통제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지만 현재는 이 기술 자체가 중앙집권화됐다는 설명이다.
그리고 "기술의 중앙집권화를 다시 분산시키기 위해 나온 것이 바로 암호화와 가상화폐"라고 말했다.
그는 가상화폐 기술의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을 연구하고, 이를 우리 서비스에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에 대해 더 깊이 연구하고 싶다"고 밝혔다. 다만, 가상화폐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은 언급하지 않았다.
◇ 페이스북, 아일랜드 중앙은행 금융업 인가 획득…유럽 전역서 금융서비스 가능페이스북 측은 저커버그의 발언이 '가상화폐 공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며 일축했다. 그러나 페이스북은 3년 전부터 금융업 진출 채비를 갖췄다. 첫 상륙지는 유럽이다.
지난 2014년 4월 아일랜드 중앙은행에 금융업 허가 발급 승인을 요청했다. 그해 4월 13일(현지시각) 파이낸셜타임즈(FT)는 "페이스북이 수 주일 내 아일랜드 정부로부터 정식 금융업 인가를 획득하고 전자화폐 취급기관으로 공식 승인된다"고 보도했다.
아일랜드 중앙은행의 승인을 받으면 페이스북은 단일 통화권인 유럽 역내에서 예금 보유와 지급, 송금, 환전 등 지불 결제는 물론, '자체 전자화폐 발행' 등의 금융서비스를 할 수 있다. 이에 당시 "시총 기준 세계 5대 은행 급인 '페이스북 뱅크' 탄생에 런던 금융가가 술렁인다"는 표현이 나왔을 정도다. 페이스북은 2016년 10월 설립 인가를 받았다.
페이스북은 유럽연합(EU)에 있는 '패스포팅(passporting)'이라는 절차를 거쳐 유럽 전역으로 발을 넓힌다. 패스포팅은 EU 국가 중 한 나라에서만 인가를 받아도 다른 EU 회원국에서도 상품과 서비스를 동등하게 제공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결국 이는 "페이스북이 아일랜드를 기점으로 금융회사로 진출하기 위한 거점을 마련한 것"으로 풀이된다.
페이스북은 금융업 진출을 위해 차근차근 준비해왔다. 앞서 같은 해 2월에는 세계 최대 모바일 메신저 '왓츠앱'을 190억 달러에 인수했다.
이로부터 4개월 뒤에는 페이팔 데이비드 마커스 사장을 영입했다. 그는 페이스북 '메신저' 사업 부문 부사장을 맡았다. 바로 다음 달엔 페이스북은 서비스 내에서 물건을 바로 살 수 있는 구매 기능을 녹여 넣었다.
그해 10월에는, 스탠포드 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하는 학생의 제보를 근거로 페이스북 메신저에 결제 기능이 숨겨져 있다는 기사가 앞 다퉈 보도되면서 페이스북의 야심이 드러나기도 했다. 지난해부터 페이스북 메신저로 송금은 물론 주문에서 결제까지 가능하다.
물론 전자화폐와 가상화폐는 다르다. 가상화폐는 컴퓨터 등에 정보 형태로 남아 실물 없이 사이버상으로만 거래되는 전자화폐의 일종이다.
막강한 영향력에 비해 페이스북과 메신저는 현재 단독 결제 플랫폼이 없다. 중국 모바일 결제 시장의 92% 이상을 장악한 위챗이나 알리페이가 엄청난 결제 데이터를 확보하는 것을 페이스북은 '할 수 없다"는 뜻이다. 치명적인 약점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가상화폐를 페이스북에 연동하거나 자체 발행하면 현재 인프라로 시장 선점 효과를 누릴 수 있다"는 게 업계 얘기다.
◇ 개발도상국 '온라인 창구' 자처…오지에 무료로 인터넷 '공급' 이면엔?페이스북의 '야심'이 보이는 또 다른 부분은, 그간 눈독을 들였던 신흥국 시장 전략이다.
페이스북은 인도처럼 은행 문턱이 높거나 이주노종자 송금환 거래가 많은 개발도상국에서 서민들의 온라인 창구가 되겠다는 '이른바 '금융포용(Financial Inclusion)'을 내세웠다. 송금수수료를 낮게 책정하거나 아예 없애 이들을 끌어온다는 것이다. 페이스북의 전 세계 점유율 70%를 감안하면 안될 이유가 전혀 없다.
여기서, 한 가지. 페이스북은 2013년부터 인터넷이 보급되지 않는 지역에 무선인터넷을 제공하는 '인터넷닷오알지(Internet.org)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저커버그는 " 전 세계에 무료로 인터넷을 공급하겠다"면서 무료 통신망 개발에 나섰다.
가상화폐는 중앙 관리조직이 없기 때문에 수수료가 거의 없다. 자금 이체도 실시간으로 일어난다. 기존 금융서비스처럼 거대한 기반 조직도 필요 없기 때문에 은행이 없는 저개발국에도 금융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전 세계 어디서나 무료 인터넷을 마음껏 쓰는 세상을 만들고,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착한 부자 저커버그'라고 칭송하기에는 다소 주저하게 만드는 부분이다.
◇ 가입자 20억 명, 10~20대 '압도적' 페이스북, 가상화폐 공부해서 뭘할까?
이미 페이스북은 가입자 수가 20억 명을 넘었다. 14억 명이 매일 이용하고 있다. 보안으로 유명한 메신저 텔레그램도 자체 가상화폐인 '그램' 발행에 나섰지만, 이용자 수(1억 8천만 명)가 페북과는 게임이 안 된다.
물론 이런 움직임은 페이스북만 하는 것도 아니다. 구글은 진작 영국에서 모바일결제와 전자화폐 발행 권한을 획득해뒀다. 2011년 '구글월렛'으로 금융업에 발을 디딘 구글은 최근 들어 송금 시장과 함께 펀드 시장 확대를 꾀하고 있다. 알리바바, 텐센트도 마찬가지다.
"페이스북 안 쓰는데 무슨 상관?"이라는 사람들도 있겠다. 그러나 현재 전 세계 10~20대 페이스북 사용자가 압도적이라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우리 세대는 아닐 수 있겠지만, 다음 세대는 이미 일상 깊숙이 들어온 페이스북에서 하나 더 얹어진 금융서비스를 쓰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 영향력은 현재 사용되는 메신저보다 막강할 전망이다. 일각에서 하나의 '글로벌페이'가 잠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이에 대해 김진화 블록체인협회 준비위원회 공동대표는 "전혀 뜬금없는 소리는 아니다"라면서 "페이스북이 만들어 놓은 금융 인터페이스에서 가상화폐가 도입되고 블록체인 기술까지 결합하면 페이스북에 가장 유리한 방식으로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병태 카이스트 교수는 "한때 IBM이 세상을 평정할 것이라 했지만, 그게 아니었던 것처럼 한 기업이 아무리 크다 해서 세상을 쉽게 재편하긴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지금은 가상화폐 시장에서 승패가 불확실하지만, 시장이 평정되면 소비자가 누리는 이익이 분명하기 때문에 기업들이 선점 경쟁에 나서는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