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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참사] "우리 살리려고 숨진 간호사들 떠올라"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세종병원 생존자들

사건/사고

    [밀양참사] "우리 살리려고 숨진 간호사들 떠올라"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세종병원 생존자들

    생존 환자들 "새까만 가래에 콧물 여전히…눈만 감으면 사고 생각나"

     

    "숨진 간호사들이 '수건으로 입을 가리고 대피하라'고 내내 소리치면서 정작 자신의 입은 가리지는 못했어요"

    극적으로 목숨을 구한 밀양 세종병원 화재사고 생존자들 이 자신을 돌보던 의료진을 먼저 떠나보내고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다.

    생존자들은 자꾸만 떠오르는 검은 연기의 기억에 잠 못 이루고, 새까만 가래는 '끝났다' 싶은데도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자꾸 생각나…병원에 또 불날까" 잠 못 드는 '병원포비아'

    참사 이후 밀양 세종병원 인근의 다른 병원으로 옮긴 김순조(65) 씨는 "눈만 감아도 그때 상황이 자꾸만 보이고 생각난다"며 괴로운 한숨을 내쉬었다.

    병원의 식당 직원이었던 김 씨는 화재 당시 몇몇 환자들과 가까이 있었다. 김 씨를 더욱 몸서리치게 하는 것은 연기에 가린 막막한 시야뿐만이 아니었다. 화재 당시 너무나도 '조용한' 실내를 잊을 수 없다.

    대부분의 환자가 나이가 워낙 많아 연기가 그렇게 빠르게 병원 안을 장악하고 있는데도 웅성거림조차 들리지 않았다.

    전원한 박선자(70) 씨는 떨리는 목소리로 "너무 무섭다"는 말을 반복했다. 박 씨는 "악몽을 꾸고, 이렇게 말만 하면 다시 그때 생각이 난다"며 "병원에 불이 다시 날까 두려워 어서 집으로 가고 싶은 마음뿐"이라고 토로했다.

    또 어떤 이는 불안감에 밤잠도 제대로 이루지 하고 있었다.

    입원 3일 만에 화재를 겪은 김종오(66) 씨는 "화재 이후 가슴이 콩닥콩닥 뛰는 것 같고, 불안해 마음에 잠을 청할 수 없다 "며 "자꾸만 당시 기억이 나 오늘도 새벽 동틀 무렵 겨우 눈을 붙였다"고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유독가스에 입도 못 가리고 대피 명령 내린 간호사 생각에 괴로워"

    생존과 죽음의 경계에서 안타까운 생명이 스러진 장면을 목도한 이들의 후유증은 더욱 컸다.

    당시 병원 2층에 입원해있던 양혜경(66) 씨는 자신의 목숨을 버려가며 마지막 순간까지 환자들을 위하던 간호사들을 기억하며 괴로운 마음을 전했다.

    양 씨에 따르면 화재 당시 2층에 있던 간호사들은 환자들에게 수건으로 입을 가리고 대피하라고 내내 소리를 쳤다. 그 말을 하느라 정작 자신들의 입은 가리지 못 한 채였다.

    양 씨는 "나이가 조금 있는 간호사 선생님 한 분과 좀 더 젊은 간호사 선생님 한 분이 자기 목숨 버리면서까지 환자들을 도왔다"며 "같이 살았으면 좋았을 텐데, 너무 마음이 쓰라린다"고 울먹였다.

    ◇새까맣게 올라온 가래와 콧물…'화재는 진행 중'

    새까만 가래와 콧물은 생존자들에게 끊임없이 화재 현장을 상기시키는 '연결고리'가 돼버린 지 오래다.

    이영호(85) 씨는 "'케켁'만 해도 새까만 가래가 나온다"며 "하다하다 이젠 다 나왔다 싶었는데, 아직도 끝나지 않은 모양이더라"고 말했다.

    친구를 찾아 불길 속에 들어섰던 김의미(56) 씨는 "방금도 신경안정제니 주사니 하는 것들을 잔뜩 맞고 왔다"며 "가슴이 아파서 두드리다보니까 머리카락보다 더 새까만 가래가 툭툭 튀어나와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고 격앙된 목소리를 숨기지 안했다.

    구조를 요청하다 목이 잔뜩 쉬어버린 이도 있었다. 김순남(69) 씨는 "안 그래도 독감에 걸려 있었는데 당시 병원 2층에서 밖에다 살려달라고 하도 소리를 지르다보니 목 상태가 '간' 것 같다"고 아린 목을 여러 차례 쓰다듬었다.

    화재의 충격으로 갑작스런 두통에 시달리는 환자들도 있었다. 생존한 딸 임모(47) 씨를 간호하러 온 임용택(73) 씨는 "딸이 그전까진 그런 적이 없었는데 어제 연기를 너무 많이 마셔서인지 계속해서 머리가 아프다고 호소하고 있다"며 "자신이 어떻게 구조됐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이들의 기억에 사고 현장은 아직도 생생히 살아 움직이고 있다. 생존자들에게 화재는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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