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6일 종영한 MBC 월화드라마 '투깝스'에서 공수창 역을 맡은 배우 김선호 (사진=황진환 기자)
지난달 16일 종영한 MBC 월화드라마 '투깝스'는 뺀질이 사기꾼 영혼이 들어온 정의로운 강력계 형사 차동탁(조정석 분)와 까칠한 기자 송지안(혜리 분)가 펼치는 판타지 수사 로맨스였다. 배우 김선호가 맡은 역할을 뺀질이 사기꾼 공수창이었다.
공수창은 나름의 철학을 갖고 사람의 돈과 마음을 모두 훔치다 하루아침에 살인범 누명을 쓰고 의식불명 상태로 육체이탈자가 되는 인물이다. 본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는 '에둘러 치는'(바로 말하지 않고 짐작해 알아듣도록 둘러대는) 연기로 캐릭터를 완성했다.
공수창을 이해한 김선호의 방식은 통했다. 지난해 MBC 연기대상에서 신인상과 월화극 남자 우수상을 받아 2관왕 기록을 썼다. 너무 멋진 사람들이 가득한, 화려한 자리에 와 있다는 것만으로 신나고 가슴 벅찼다는 그는 전혀 수상을 예상하지 못했기에, 말 그대로 "머리가 하얬"다고 한다.
'투깝스'가 끝난 지 이틀 후였던 지난달 18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한 카페에서 배우 김선호를 만났다. 예상치 못한 우연 덕에 1:1 인터뷰를 하게 되어 반가운 기색을 보이자 "한참 많은 이야기할 수 있어서 좋다. 저도 대화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화답한 김선호와의 인터뷰는, 수다 떠는 것처럼 편안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 '투깝스' 종영 소감을 부탁한다.당일(16일) 새벽까지 하고 박수치고 고생했다 하고 자고 일어나서 종방연에 갔다. (웃음) 종방연에서 다들 너무 피곤한데 행복하고 즐겁긴 하니까 잠깐만 얘기를 안 시키면 눈들이 풀려 있었다. 그래도 다들 늦은 시간까지 자리 안 떴다. 너무 행복했던 시간 같다. 종방연 때 보니 저희 드라마에 배우들이 진짜 많이 나왔더라. 작품을 하나 끝낸다는 게 의미가 되게 큰 것 같다. 너무 즐겁고 행복하고 또 섭섭한 마음에, 되게 오랫동안 자리를 함께했다.
▶ 잔꾀 많고 껄렁거리는 사기꾼 역이었다. 그런데도 연기하면서 자연히 애정이 생겼을 것 같다. 공수창의 어떤 면에 마음이 갔나.제가 좋아하는 연기이고, 한국 사람들도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연기라고도 생각하는데 '에둘러 친다'는 게 수창이한테는 있었다. 수창이는 사기꾼이라 완벽하게 좋은 놈일 순 없지만 에둘러 치는 면이 있었기 때문에 나쁜 놈만은 아니다, 측은하고 마음이 쓰인다는 느낌이 있었다.
김선호는 뺀질거리는 사기꾼이었다가 살인자 누명을 쓰고 육체이탈자가 된 공수창 역을 맡았다. 극중 형사 차동탁(조정석 분)의 몸에 들어가는 설정이어서 조정석과의 촬영씬이 특히 많았다. (사진=피플스토리컴퍼니 제공)
▶ 형사 몸에 빙의된 영혼이 몸의 주인과 공조수사를 한다는 설정이 신선했다. 자칫 잘못하면 붕 떠버릴 수 있는데 신경 쓴 부분이 있나.그래서 수창이랑 동탁이가 가져가야 할 톤에 대해 신경을 썼다. 극 전체를 봤을 때 분위기를 환기하는 몫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지안이한테 사랑 고백을 하더라도 동탁이라면, 수창이라면 어떨까 생각했다. 수차례 수십 번 생각했다. 정석이 형이랑만 붙어 있으니까 형과 대화를 많이 했다. 회식 날 어떤 분이 그러더라. '맨날 붙어 있어서 좋겠다'고. (웃음)
언제 제가 정석이 형이랑 또 연기해 보겠나. 연기 어땠는지 대화도 많이 했고, 자연스럽게 그 캐릭터에 대해 고민하고 외적으로도 얘기를 많이 했던 것 같다. 많이 보고 배웠다. 현장을 아우르는 능력, 어떻게 보면 배우로서 가져야 할, 리더로서 자기 팀을 이끄는 능력을 갖추고 계시더라. 형도 선배들한테 배웠는데, 대본을 볼 때 큰 숲을 보셨다. 이런 게 앞으로 저한테 더 오랜 시간을 가게 하는 밑거름이 되지 않을까. 형이 좋은 거름을 주셨다. 행운이다, 행운. 만나게 돼서. (웃음)
▶ 그동안 했던 드라마와 달리 액션씬도 좀 있었다. 드라마 초반 수갑이 채워진 채로 한 액션씬이 인상적이었다. 위험할 수 있는데 당시 분위기는 어땠나.액션씬이라는 건 제가 보니까 (웃음) 특히 남자들은 (몸짓이) 격하니 몰입하다 보면 더 격해지지 않나. 조금씩은 다치는 것 같다. 정석이 형이 몸을 너무 잘 써서 다행히도 저는 묻어가기만 하면 됐다. 형 동선을 외운 다음에 받아주기만 하면 돼서 어렵지 않았다. 긴 시간 액션을 해 보는 건 되게 신나는 일이었다. '너무 재밌는데?' 이랬다. 유리창 깨는 씬에서 진짜 유리로 해서 무서웠던 적이 있긴 하다. 정석이 형은 액션씬 하다 살이 까졌을 때도 있었다.
액션씬은 새로운 경험이었지만 제대로 하려면 형 정도로 몸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진짜 많은 준비를 해야 (제작진에게) 믿음을 주겠다 싶었다. (웃음) 욕심이 생겼다. 도전해 보고 싶다는 욕심. (웃음) 다음 작품이나 언젠가는 꼭 다시 해 보고 싶다.
▶ 공수창은 차동탁의 몸에 들어가면서 점차 가까워지고 끈끈한 사이가 된다. 그런 우정을 나누는 사람들이 곁에 있는지.저는 늘 얘기하지만, 인복이 굉장히 좋은 사람인 것 같다. 사실 휴대폰으로 누군가와 메신저 대화나 통화를 길게 하지는 못한다. 친분 있는 분들이 많지도, 범위가 넓지도 않지만 절 좋게 생각해 주시는 분들은 있다. 주변엔 다 좋은 사람들뿐이어서 주위에 있는 사람들 모두를 믿고 얘기한다. 근데 두루두루 바운더리가 넓은 것도 능력인 것 같다. 저는 아직 그런 달란트는 없지만, 저와 자주 연락하고 만나는 사람들에게는 속 얘기를 하는 것 같다. 그중 세 명의 친구들과 고민 얘기를 특히 많이 한다.
2017 MBC 연기대상에서 신인상과 우수연기상 2관왕을 차지한 배우 김선호. 사진은 신인상 수상소감 모습 (사진=MBC '연기대상' 캡처)
▶ 드라마로는 이번이 세 번째 작품이다. 갈수록 비중이 커졌는데 촬영 분량이 늘면서 체력적으로 힘들진 않았는지 궁금하다.공연을 같이하다 보니까 조금 힘들긴 했다. 그래도 소홀히 하지는 않았다. 다만 배우가 한 작품을 들어가기 전에 체력관리를 포함해 많은 준비를 해야 하는구나 하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 준비 안 된 상태에서 들어가면 모두가 피해 볼 수 있겠구나 싶었다. 촬영할 때 뛰는 씬이 있었는데 찬 공기가 갑자기 들어오다 보니 네다섯 번 뛰고 나서 갑자기 핑 도는 거다. 호흡 조절이 안 되더라. 그래서 찬 바닥에 누워 있었다. 그때 참 부끄럽고 창피했다. 남자배우가 몇 번 뛰었다고 이렇게 되나… 쉬면서 운동도 좀 하고 관리를 반드시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정석이 형이 왜 그렇게 운동하는지 알겠더라. (웃음)
▶ '투깝스'로 연말 시상식에서 상을 두 개나 탔다. 예상했나.예상 전혀 못 했다. 집에 시상식 간다는 얘기도 안 했다. 저는 거기 있는 사람들이 너무 화려하고 멋져서, 자리에 앉아있는 게 신나고 가슴 벅찬데 (상까지 받아서) 믿기지 않더라. 처음 간 시상식에서 상을 받아서 더 떨리고 숨이 찼다. 어떤 얘기 할지 아무 생각도 못 했다. 이름이 불렸을 때부터 점차 (머리가) 하얘지기 시작하는데 (웃음) 삐- 소리가 나면서 아무 생각이 안 나 헛소리를 했다. 우수상 받았을 땐 '어떻게 이럴 수 있지, 진짜?' 했다.
신인상 받았을 때 드라마팀 얘기를 못 한 거다. '죄송해요, 까먹었어요' 하고 내려왔다. 다행히 우수상을 받아서 팀 얘기를 할 수 있었다. 시상식 이후에 촬영장에 갔는데 다 그걸로 놀리더라. 사람들이 따라 하면서.
▶ 촬영장 분위기가 진짜 좋았나 보다.
분위기는 배우들이 만들어가는 것 같다. 어떤 배우든 그런 게 중요한데, 혜리는 '안녕하세요!' 하면서 분위기를 돋웠고 정석이 형도 그렇게 힘든 와중에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 아까 잠깐 말했던 것처럼, '투깝스'에는 배우들이 참 많았다. 연기가 너무 좋았다거나 해서 기억에 남는 배우들이 있는지 궁금하다.저는 대학로에서 많이 활동했는데 공연에서 만난 대선배들을 (드라마에서) 만났다. 탁재희 검사 역의 박훈, 이형사 역의 오의식 형 두 분이 그렇다. '유도소년' 보고 너무 팬이 돼서 분장실에 대뜸 들어가서 '저 형님 팬이에요. 손 좀 잡아주세요' 그랬다. 의식이 형은 혹시 천재 아니야 할 정도로 잘하신다. 기자님도 기회가 되시면 ('유도소년'을) 꼭 보셨으면 좋겠다. 이분들이 연기를 너무 잘하셔서 (웃음) 두 분과 연기하는 것 자체가 기뻤고, 다음 작품에서도 만났으면 좋겠다. 악수해 달라고 찾아갔던 사람들에게 이젠 따뜻한 얘기를 듣는다는 게… 너무 행운이 한 번에 왔던 해인 것 같다.
배우 김선호 (사진=황진환 기자)
(노컷 인터뷰 ② 김선호의 목표가 '평범한 배우'인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