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굴붐' 그래픽카드 '금값' AI 연구 위기, 스타트업 '한숨''주문 급증' 삼성·SK 채굴 최적화 그래픽 D램 양산 '방긋'
가상화폐 (사진=자료사진)
가상화폐 열풍에 IT 업계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가상화폐 광풍이 '채굴붐'으로 이어지면서다.
삼성전자 등 대기업은 가상화폐 채굴에 특화된 반도체 양산에 돌입하면서 '채굴붐' 특수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양새다. 반면, 채굴붐에 따른 그래픽 카드 품귀 현상에,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영세한 스타트업이나 연구소 등에서는 한숨만 깊어지고 있다.
◇ 가상화폐 '채굴붐' 그래픽카드 '금값'전 세계적인 가상화폐 광풍에 각국에서 규제 움직임이 나오고, 비트코인 시세가 폭락하고 있지만, 가상화폐 채굴 수요는 계속 급증하고 있다.
비트코인을 비롯한 가상통화를 얻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돈 주고 사거나, 직접 '채굴'하는 것이다.
채굴하려면 가상화폐 네트워크에서 생성되는 암호화된 문제를 풀어야 한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지만, 아무나 가상화폐를 받을 수는 없다. 복잡한 수학 문제를 연산해서 풀어야하는데, 가장 먼저 푸는 서버에만 보상으로 제공된다.
이는 서버 연산 처리 성능과 직결된다. 이러한 계산에 활용되는 게 그래픽카드다. 채굴 초기에는 중앙 처리 장치(CPU)가 많이 사용됐지만, 채굴 수요가 늘어나면서 그래픽 처리 장치(GPU)가 내장된 그래픽카드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래픽카드는 단순 계산뿐만 아니라 복잡한 계산, 인공지능(AI) 등에도 다양하게 활용된다.
GPU는 장당 수백만 원에 달하는 전문가용과 게임 등에 쓰이는 십만원대 일반 소비자용이 있다. 채굴용으로 인기가 높은 보급형도 (가격 폭등 이전) 약 30만 원에 살 수 있었다.
이에 가상화폐 채굴에 나선 디지털 광부들은 값비싼 전문가용 대신, 가성비 높은 일반용 GPU를 대거 사들이기 시작했다. 이는 품귀 현상으로 이어졌고 가격은 천청부지로 치솟았다.
◇ 가상화폐 광풍에 광산 끌려가는 그래픽카드…AI 기업 '한숨'가상화폐 광풍과 채굴붐 불똥은 엉뚱한 곳으로 튀었다. 그래픽카드가 대량 광산으로 끌려가면서 AI 딥러닝 스타트업이나 중소 연구실, 기관 등에 치명타가 된 것이다.
딥러닝은 AI의 한 분야로, 축적된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반복 학습을 수없이 거듭해 데이터 처리 방법을 AI 스스로 깨우치는 기술이다. 이세돌 9단과 세기의 바둑 대결을 펼친 구글 '알파고'가 대표적인 딥러닝 기술의 결과다.
딥러닝을 위해선 컴퓨터 내부에서 단순 연산이 짧은 시간에 수없이 반복되는 등 매우 큰 연산 능력이 필요한데, 여기에 그래픽카드가 사용된다.
수백만 원짜리 고성능 GPU를 마음껏 구매할 수 있는 대기업과 달리 이들은 보급형 그래픽카드를 연구용으로 사용해왔다. 영세한 스타트업 등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보급형 그래픽카드만 써왔지만, 이마저도 가격이 오르자 진행중인 연구개발이 중단 위기에 처한 것이다.
인공지능 스타트업 관계자는 "반드시 채굴붐 때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보급형 그래픽카드 가격도 지난해보다 30%~50% 가량 올랐다"고 말했다. 의미 있는 딥러닝 연구를 하고, 성과를 내려면 그래픽카드가 많이 필요한데 당장 필요한 핵심 장비 수급이 어려우니 재정적 부담이 큰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가상화폐 열풍 초기에는, 게이머의 불만도 많았다. 게임에는 고성능 그래픽카드가 필수적인데 이를 구하지 못하면서 게임을 즐기지 못했던 것이다. 또 전자상가도 채굴업자들이 그래픽카드를 대거 사들이면서 "없어서 못 팔 지경"인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지난주부터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등 가상화폐 시세가 폭락했지만 그래픽카드 가격은 떨어지지 않았다. AI 스타트업 관계자는 "램값은 조금 떨어진 것 같지만 그래픽카드 가격은 아직도 내려올 생각을 안한다"고 말했다.
관련 업계에서는 "사양을 낮춰 그래픽카드를 주문해도 워낙 수요가 많아 구하기가 쉽지 않다"면서 "특히 학교 연구실이나 스타트업에서 이를 지속적으로 구하지 못한다면 연구 중단을 넘어 회사 존립 자체를 위협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 가상화폐 채굴 최적화…삼성·SK 세계최고속도 그래픽 D램 양산이같은 채굴붐에 그래픽카드 제조사들은 '특수' 몰이에 나섰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채굴의 핵심 부품인 그래픽 카드에 탑재되는 그래픽 D램 신제품을 선보였다.
SK하이닉스는 최근 20나노급 8Gb(기가비트) 'GDDR6(Graphics Double Data Rate 6)' 규격의 고성능 그래픽 D램 생산을 시작했다. 이전 GDDR5 D램보다 최고 속도는 2배가량 빠르다. 동작 전압은 10% 낮아 효율과 성능이 향상됐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4분기 실적 발표 뒤 진행된 컨퍼런스콜에서 "실제로 GPU 업체들은 20~30%의 추가적인 GDDR5 메모리 수요가 필요하다고 언급한다"면서 "이러한 수요는 PC 그래픽 전체에서 10% 비중을 차지한다"고 말했다.
전세계 D램 시장 점유율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삼성전자도 지난달 16일 업계 최초로 세계 최고 속도인 '16Gb GDDR6D램' 양산을 시작했다.
기존 제품보다 전력효율도 35% 이상 높아졌다. 20나노 공정 대비 칩 크기가 줄어 생산성도 약 30% 증가했다. 인공지능(AI), 비트코인 채굴 등에 최적화된 차세대 반도체 시장에서의 독주 체제를 굳히는 모양새다.
삼성전자는 "순간적으로 여러 연산이 가능해 AI 및 자율주행 시스템에 최적화된 제품"이라며 "또한 이번 제품은 채굴용 GPU를 최고의 성능으로 지원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삼성전자는 이외에도 중국 가상화폐 채굴 하드웨어 업체와 파운드리(위탁생산) 계약을 맺고 주문형 반도체(ASIC) 제조를 시작했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31일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가상화폐 시장의 폭발적 성장으로 채굴 특성에 맞는 반도체에 업계의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면서 "관련 시장에서 올해 파운드리 고객 점유율이 급속히 상승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