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계간 문예지 '황해문화'에 실린 최영미 시인의 '괴물'.
"괴물을 키운 뒤에, 어떻게 괴물을 잡아야 하나"
최근 트위터 등의 소셜미디어를 타고 '한국판 미투' 운동이 번지고 있는 가운데, 문단 내 성희롱을 폭로하는 '미투' 시가 재조명되고 있다.
최영미 시인은 지난해 12월 계간 문예지 '황해문화' 겨울호에 '괴물'이라는 제목의 시를 게재했다. 당시 해당 호의 주제는 '젠더 전쟁'으로 젠더 이슈에 관한 창작·인문·비평 등이 실렸다.
시인은 이 시에서 자신의 문단 초년생 시절을 회고하며 당시부터 만연했던 문단 내 성희롱에 대해 폭로했다.
"En 선생 옆에 앉지 말라고 문단 초년생인 내게 K시인이 충고했다. 젊은 여자만 보면 만지거든. K의 충고를 깜박 잊고 En 선생 옆에 앉았다가, Me too. 동생에게 빌린 실크 정장 상의가 구겨졌다"
시인이 겪은 일에 그치지 않고 피해자는 더 늘어났다.
"몇 년 뒤, 어느 출판사 망년회에서 옆에 앉은 유부녀 편집자를 주무르는 En을 보고, 내가 소리쳤다. 이 교활한 늙은이야!"
시인은 작품 속 가해자가 소위 '잘 나가는' 인물이며 노벨상 후보로 자주 거론된다는 것을 암시하기도 했다.
"그를 씹은 소설가 박 선생도 En의 몸집이 커져 괴물이 되자 입을 다물었다. 자기들이 먹는 물이 똥물인지도 모르는 불쌍한 대중들"
"노털상 후보로 En의 이름이 거론될 때마다, En이 노털상을 받는 일이 정말 일어난다면 이 나라를 떠나야지. 이런 더러운 세상에서 살고 싶지 않아"
문단 내 현실을 고발한 이 시를 두고 누리꾼들은 "아주 오래된 소문이 드디어 시로 탄생했다"는 반응이다. 가해자 'En'으로 추정되는 인물의 실명을 직접 거론하며 비판하기도 하고 있다.
문단 내 성폭력 문제는 지난 2016년부터 트위터 등의 소셜미디어에서 공론화되며 꾸준히 문제제기 되어왔다. 사례를 정리해 모아둔 '아카이브' 계정이 있을 정도다.
이를 통해 문인 다수의 성폭력 사례가 폭로됐다. 대중에게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은 시인부터, 작품이 영화화되기까지 한 유명 소설가까지 성추문에 이름이 오르내리며 충격을 더했다.
서지현 검사의 검찰 내 성희롱 폭로로 촉발된 '한국판 미투' 운동이지만, 소셜미디어에서는 이보다 2년이나 앞서 이미 '미투'할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었던 셈이다.
트위터의 '문단 내 성폭력 아카이브' 계정은 해당 시를 계정에 게재하며 "계속해서 다양한 폭로와 논의가 나와야한다. 처벌이나 사람들 눈이 무서워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하도록. 최영미 시인님 고맙습니다"라고 전했다.
이 게시글은 1천 회 이상 리트윗되며 공감을 얻었다.
한편, 최영미 시인은 1992년 창작과 비평을 통해 데뷔했다. 1994년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로 큰 주목을 받았다. {RELNEWS:ri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