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배너 닫기

전체메뉴보기

"난 계속 휴가"… 강혜정이 경력단절 실감한 순간



방송

    "난 계속 휴가"… 강혜정이 경력단절 실감한 순간

    [노컷 인터뷰] '저글러스' 왕정애 역 강혜정 ①

    지난달 23일 종영한 KBS2 월화드라마 '저글러스'에서 왕정애 역을 맡은 배우 강혜정 (사진=씨제스엔터테인먼트 제공)

     

    스크린을 통해 관객으로서 바라본 강혜정은 언제나 독특한 매력이 있는 배우였다. 상반된 면을 모두 가졌다고 생각했던 까닭이다. 주저하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이야기하고 남에게 맘을 잘 열지 않는 경직된 얼굴도, 남들이 날 어떻게 보건 상관없다는 투로 또렷하게 자기 말을 하는 얼굴도 모두 어울린다고 봤다.

    지난달 23일 끝난 KBS2 월화드라마 '저글러스'에서 강혜정의 모습은 전자였다. 인물 소개에도 나와 있듯 "착하고 순진하고 맹한 국보급 호구"인 왕정애 역을, 그는 천연덕스럽게(조금도 거짓이나 꾸밈이 없고 자연스러운 느낌이 있게) 해냈다.

    지난달 24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한 카페에서 배우 강혜정을 만났다. 결혼과 출산 이후 아이 키우기에 집중했기에, 드라마 외출은 '미스 리플리' 이후 6년 만이었던 그에게 궁금한 점이 많았다. 타블로의 아내나 이하루의 엄마가 아니라, 2001년 데뷔한 '배우' 강혜정의 이야기를 자세히 듣고 싶었다.

    ◇ "먼저 용기 내 준 사람들 덕에 작품을 할 수 있었다"

    강혜정은 '저글러스'에서 자신의 동생으로 신분을 속이고 황보율(이원근 분) 이사의 89번째 비서가 되는 왕정애 역을 맡았다. 15년 동안 전업주부였던 그가, 인내와 모성애로 활약하는 내용이 드라마 한쪽에서 그려졌다.

    어떻게 캐릭터를 만나게 됐는지 묻자 "감독님이 캐릭터를 만들 때 일찌감치 코 뀌어서 결혼해 아이가 중학생이긴 하지만 때가 묻지 않은 굉장히 동안인 캐릭터를 만들고자 하셨다. 운 때가 잘 맞았다"고 말했다.

    이어, "김정현 작가님과 (조용) 작가님의 머릿속 상상 덕분에 (제게) 기회가 주어진 것 같다"며 "(배우는) 수주로 가능한 거다. 사실상 먼저 용기 내 준 사람들 덕분에 제가 오랜만에 작품을 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저글러스'는 비서들의 세계를 담아낸 드라마였다. 특히 여성들이 많은 비서업계에서, 도를 넘은 요구를 들어주어야 하는 '을'의 모습이 도드라졌다. 머리채를 잡힌다든가, 다짜고짜 물벼락을 맞는다든가 하는 상황이 나와 너무 가학적인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강혜정은 "극에는 어느 정도 과장된 부분이 나온다. 이야기를 만들기 위한 장치로서. 현실에서 아주 크게 벗어나진 않았어도, 저희 드라마가 보여준 모습이 실제 비서들이 겪는 곤욕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극적인 요소들이 있었으니까"라고 밝혔다.

    한 번도 일을 해 본 경험이 없는 15년차 전업주부 왕정애는 차츰 '일잘' 비서로 성장해 나간다. (사진='저글러스' 캡처)

     

    그는 비서 역할을 준비하면서 좌윤이 역의 백진희와 함께 수업을 들었다. 전직 비서의 스피치를 2시간 정도 듣고 나서 무척 '감명받았다'고 전했다. "누구를 뒤치다꺼리하는 일이 아니라 진짜 한 사람 인생에 대한 관심으로 시작하는 일"이라는 것이었다.

    "여기서는 비서의 업무를 철학적인 부분까지 건드리진 않고 보스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는 직업이라고 위트 있게 담았지만, (실제로는) 상대방에게 필요한 것들, 겪는 고민과 고뇌, 앞으로 나가야 할 방향과 계획 그런 것을 짜고 보완하더라고요. 정확한 서포트를 하는 진짜 멀티 플레이어여서 되게 멋있는 직업인 것 같아요. 인공지능이 발달하면 제일 먼저 사라질 직업 1위라고 하는데 없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아무리 인공지능이 발달하더라도 '사람'만이 줄 수 있는 정서적 안정감과 따뜻함은 구현할 수 없다는 게 강혜정의 생각이다. 모든 것을 누릴 것 같은 보스도 때로는 밥 한 끼 같이 할 사람이 없어 비서에게 가끔 '저녁 먹었니?'라고 묻는다는 일화를 언급하며, '저런 건 대체하지 못할 텐데…'라고 생각했단다.

    ◇ "이원근, 연기하는 톤이 되게 재밌다"

    극중에서 황보율과 왕정애는 철저한 갑을 관계였으나 점차 달라졌다. 망나니같이 굴 때가 있는 고난도 진상 '보스'를, 엄마처럼 품어내는 데까지 이른 것이다. 황보율은 왕정애에게 호감을 느끼기도 했다. 실제로 9살 차이가 나는 이원근과의 호흡은 어땠을까.

    강혜정은 "젊은 사람과 조금 덜 젊은 사람 사이에서 갭(차이)가 느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인정'이 필요했다. 그러고 나서 동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원근은 이제 막 시작한 친구였고, 나도 이제 막 다시 (연기를) 시작하는 입장이니, 함께 성장해 나가는 캐릭터란 게 잘 맞아떨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강혜정은 이원근의 연기에 대해 "연기하는 톤이 되게 재밌다"고 표현했다. 앞에서 연기할 땐 '얘가 나한테 왜 이러지?' 싶을 때가 있는데 그런 점도 중독성이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소리통도 너무 좋고, 쓰는 호흡이 되게 다르더라. 자기만의 것이 있는 게 좋지 않나. 그게 참 강점 같다. 그 친구 자체가 진중함이 있다. 아마 나이가 있는 분들과 함께 앙상블을 맞춰도 어색함이 없을 것 같다"고 밝혔다.

    왕정애의 보스 황보율 이사 역을 맡은 배우 이원근 (사진='저글러스' 캡처)

     

    커플 연기를 한 소감을 물으니 강혜정은 "로맨스요?"라며 웃었다. 그러면서도 이내 "가능할까 싶었는데 막상 같이 연기해 보니, 요새 젊은 배우들이 생각이 되게 깊고 진중해서 별로 세대 차이가 많이 안 느껴지는 거다. 집중력도 좋고. 그러다 보니 역할에 쉽게 잘 빠져들었다. 제가 9살이 많든, 그 역할로만 바라보니 (연기가) 되더라. 희한하다"고 답했다.

    강혜정에 따르면, 사실 '저글러스' 팀 자체가 분위기가 무척 좋았다. 최다니엘과 백진희는 사비로 커피차나 간식차를 불렀고, 배우들뿐 아니라 스태프들도 다들 '파이팅'하는 분위기였다. "관심이나 애정이 없으면 굳이 안 해도 되는 것들이잖아요. 관심과 애정을 주면 잘 자라는 선인장처럼 저희도 잘 자랐어요."

    ◇ "나는 계속 휴가인데…" 강혜정이 느낀 경력단절의 순간

    '저글러스'의 왕정애는 이른 나이에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15년 동안 전업주부로 살다 우연한 기회에 사회로 진출하는 인물이었다. 그 정도로 공백이 긴 것은 아니었지만, '다시' 현장에 나가야 하는 강혜정의 상황은 낯선 분야에 도전하는 왕정애와 조금은 닮아 있었다.

    배우로서 경력단절을 실감한 때가 있었느냐는 질문에 그는 "많다. 매년 8월 정도에 늘 생각한다. 나는 계속 휴가인데 사람들은 휴가를 만끽하고 행복해하는 걸 볼 때. 저는 계속 월차 쓰고 있는 기분이랄까"라고 말했다.

    확실히 아이가 생기고 나서는 인생이 더 스펙터클해졌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거의 매 순간 '예상 밖'을 경험하는 것이기에. 강혜정은 당장 일할 준비가 돼 있든 안 돼 있든 뭐라도 해 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꼭 연기가 아니어도 뭐라도 생산적인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

    그동안 작품 제의가 잘 들어오지 않았느냐고 묻자 "솔직히 많이 들어오지 않았다"는 답이 돌아왔다. 이어, "제가 애를 너무 예뻐하고 붙어있기를 원한다는 걸 아니까, 또 제가 (일터에) 잘 안 나가니까. (업계 사람들과) 만나서 커피 마시거나 술 한 잔 마시고 얘기하는 걸 다 끊어버렸으니 아예 경력단절이었다. 사회와도 단절됐다"고 부연했다.

    배우 강혜정 (사진=씨제스엔터테인먼트 제공)

     

    하지만 강혜정은 6년 만의 드라마 복귀작에서 '호구'지만 나름의 강점을 지닌 순수한 왕정애 역을 잘 소화했다. '저글러스'가 다음 작품으로 가는 이음새가 될까 물었더니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물론 가족들의 '적극적인 지지'가 필수적이다. '남편이 육아를 담당해 줄 수 있는 상황'이어야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처럼 드라마로 돌아온 강혜정을 애정이 어린 눈으로 바라봐 준 지인들 덕에 힘을 낼 수 있었다고도 전했다.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의 감독님이 모니터하고 있다고 연락한 것, 절친이 '걱정 안 해도 된다. 너 잘하고 있다'고 한 것 등.

    강혜정은 3개월 가까이 밤새워 찍는 고된 일정을 겪다 보니 '빨리 드라마가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막상 데드라인이 보이기 시작했을 때는 '안 끝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요 사람들이랑 헤어지기 싫고 이 시간과 분위기가 너무 좋았어서."

    (노컷 인터뷰 ② 강혜정 "밑도 끝도 없이 희한한 캐릭터 하고파")

    이 시각 주요뉴스


    Daum에서 노컷뉴스를 만나보세요!

    오늘의 기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댓글

    투데이 핫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