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본회의장 (사진=이한형 기자/자료사진)
국회가 가상화폐 투자 광풍이 한풀 꺾인 시점에서 뒤늦게 관련 법안을 잇따라 발의하고 나섰다.
그동안 가상화폐 가격이 급등하고 가상화폐 거래소 해킹과 정보 유출 등 관련 사고가 연이어 터지면서 '입법 사각지대'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지만, 국회는 가상화폐를 잘 모른다는 이유 등으로 손을 놓고 있다가 해를 넘어서야 심도 있는 논의에 들어간 것이다.
◇ 가상화폐 입법 왜이렇게 늦었나…"가상화폐 잘 몰라서"8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국회에 발의된 가상화폐 관련 법안은 3개다.
제일 먼저 발의된 법안은 지난해 7월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이다. 이에 대해 정무위에서는 논의조차 하고 있지 않다가 지난해 12월 학계와 법조계, 관계 전문가를 초청해 공청회를 했을 뿐이다.
또 다른 두개의 법안은 이번달 초 발의됐다. 정태옥 자유한국당 의원이 발의한 '가상화폐업에 관한 특별법안', 정병국 바른정당 의원이 낸 '암호통화 거래에 관한 법률안'이다.
정태옥 의원의 법안은 앞서 발의된 박 의원의 법안과 유사하다. 가상화폐를 취급하는 업을 정의하고 금융위원회의 인가를 받는 '인가제'가 핵심이다. 정병국 의원의 법안은 금융위 '등록제'가 골자다.
한 국회 관계자는 "가상화폐와 관련한 입법이 상당히 뒤늦은데다 내용 조차 사실 부실하다"면서 "국회의 전형적 관행인 베끼기 수준이 아닌가 의심스럽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국회가 가상화폐 관련 입법에 뒤늦게 움직인 이유는 가상화폐와 블록체인에 대한 국회의원과 보좌진의 이해가 부족하다는 것이 정치권 안팎의 시각이다.
지난해 10월 정기국회 당시에도 가상화폐에 대한 투기 현상과 문제점이 잇따라 발생했다. 이에 대한 해결책과 입법 사항을 문의하자, 해당 상임위원회인 정무위 보좌진으로부터 "잘 모른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유승민 바른정당 대표도 지난해 12월 15일 당 정책위원회 차원에서 연 '비트코인 논란, 가상화폐 해법은 무엇인가' 토론회에서 "가상화폐에 대해 정치인들이 기술적인 디테일을 잘 모르고 있다"며 "굉장히 새로운 블록체인 기반으로 인해 이런 현상을 발생하는 데 국가가 어떤 규제를 해야하는지, 투자자 안전을 어떻게 보호해야하는지 아무도 확신을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결국 정부가 특단의 대책을 잇따라 내놓고 가상화폐 투기 엄단의 목소리를 내놓고 있지만, 이를 뒷받침할 '법적 근거'가 없다보니 엄포에 그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특히 금융당국이 가상화폐 공개(ICO)를 금지하겠다고 했지만, 여전히 곳곳에서 ICO가 이뤄지고 있는 실정이다.
◇ 정무위 여야 3당 간사, 입법조사처 세미나, 입법 착수 본격화 될까
그나마 8일 입법조사처에서 국회 정무위 여야 3당 간사 공동 주최로 '가상통화 규제의 쟁점과 개선과제' 세미나를 통해 여야가 공히 관심이 있다는 것을 표명하고 이에 대한 입법을 위해선 어떠한 방향으로 가면 좋을지 의견을 모은 것이 그나마 심도 깊은 논의의 시발점으로 보인다.
정세균 국회의장은 이날 축사에서 "만시지탄인 측면도 있지만, 가상화폐 관련 세미나가 열려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했고, 발제를 맡은 김형중 고려대 교수는 "이제라도 이런 자리가 마련돼 심도 있게 토론할 수 있어 감사하다"고 했다.
발제자인 김형중 교수는 "내일 어떤 가상화폐를 출현할지 모르기 때문에 이를 정확히 규정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면서 "가능하다면 기존 법률을 개정해 가상화폐를 규제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주장했다.
또 다른 발제자인 원종현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투자자 보호를 위한 거래소 규제가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라며 "현재 중개업자를 청산 및 보증 기능을 가진 실질적 거래소로 강화될 수 있도록 하는 절차가 마련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토론자인 차현진 한국은행 금융결제국장은 "거래소 등록제를 논의하기에 앞서, 가상화폐가 일반상품인지 금융상품인지 지급수단인지 어느 하나로 귀결되어 주무 관청이 있어야 한다"면서 "행정법상 등록은 권리 발생의 요건이므로, 거래소에 부여할 권리가 무엇인지 업계에서 말해주면 경청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