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루지 국가대표 성은령은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출전 후 그동안 참았던 눈물을 왈칵 쏟았다. 오해원기자
4번의 주행을 모두 마친 뒤 왈칵 눈물이 터졌다. 좀처럼 멈추지 않았다. 짧게는 지난 4년을, 길게는 루지를 처음 시작했던 7년 전 그 순간부터 모든 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성은령(26)은 13일 강원도 평창의 올림픽 슬라이딩센터에서 열린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루지에서 1~4차 합계 3분8초250으로 전체 30명의 출전 선수 가운데 18위로 경기를 마쳤다. 비록 메달권 성적은 아니지만 4년 전 자신의 첫 올림픽이었던 소치 동계올림픽의 29위보다 크게 순위를 끌어올린 성은령의 표정은 밝았다.
사실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둔 성은령에게는 분명한 목표가 있었다. 바로 역대 동계올림픽에 출전한 아시아 선수 가운데 최고 성적을 내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10위권 초반의 성적을 내야 했다.
하지만 성은령은 10위권 진입은 성공했지만 목표달성은 실패했다. 하지만 루지를 시작한 이래 도전의 연속이었던 성은령에게 실패는 좌절이 아니었다. 새로운 도전의 시작을 의미했다.
한국 썰매 종목의 선구자 강광배 한국체대 교수는 유럽이 썰매 종목에 강한 이유로 “어려서부터 썰매를 타기 시작해 올림픽이나 월드컵에 나오는 선수들은 이미 십수 년씩 썰매를 타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들과 비교하면 고작 7년 만에 두 번이나 올림픽 무대를 밟은 성은령은 정말 특이한 케이스다.
성은령이 루지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다소 독특하다. 용인대 재학 중에 태릉선수촌 밥이 맛있다는 꾐에 빠져 낯선 종목이던 루지를 시작했다. 출발이 늦은 탓에 기대만큼 빠르게 성장할 수 없었다. 그래도 묵묵히 여자 루지 국가대표 1호라는 자부심이 성은령을 다독였다. 그렇게 수없이 많은 월드컵과 두 번의 올림픽을 몸으로 부딪치며 경기했다.
평창에서의 모든 경기를 마친 성은령은 동료인 귀화선수 아일렌 프리쉐의 이름만 듣고도 눈물을 쏟았다. 일종의 죄책감이었다. 그는 “내가 성적을 내지 못해 프리쉐가 온 거다. 프리쉐가 온 것이 싫다는 것이 아니다. 내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점이 슬프다”고 했다.
20세 성은령을 생소한 루지에 빠지게 했던 것은 맛있기로 소문난 태릉선수촌의 밥이었다. 하지만 지난 7년간 버틸 수 있게 했던 힘은 한국 여자 루지 1세대라는 자부심이었다.(사진=노컷뉴스)
그렇게 한참을 울었다. 한번 터진 울음은 좀처럼 멈추지 않았다. 마치 지난 7년의 아픔을, 무릎 십자인대 파열의 고통을 한꺼번에 쏟아내기라도 하듯이 성은령의 두 눈에서는 쉴새 없이 눈물이 흘렀다. 그리고는 나지막이 “내가 부족했다.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스스로 주문을 걸었다.
누가 뭐래도 한국 여자 루지의 간판은 성은령이다. 지난 7년간 오직 루지만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성은령이 있었기에 프리쉐의 평창 동계올림픽 8위도 가능했다. 지난 7년의 성은령이 없었다면 2018년의 프리쉐도 없었다.
루지를 위해 자신을 포기했던 성은령은 잠시 휴식에 들어간다. 우선 올림픽 출전을 위해 미뤄뒀던 왼쪽 무릎의 십자인대 수술이 가장 급하다. 선수 생명 연장 여부를 떠나 평범한 20대 여성의 삶을 위해서도 더는 미룰 수 없다.
무릎 십자인대 수술을 제외한다면 성은령은 또래 20대 여성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늦잠을 자고 일어나 친구를 만나 수다를 떨고 여행을 다니고 싶다고 했다. 무엇보다도 성은령은 억지로 체중을 불리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기뻤다.
한창 외모를 꾸미기 좋아할 나이지만 성은령은 기록 향상을 위해 체중 감소가 아닌 체중을 억지로 늘려야 했다. 이 때문에 자다가도 정해진 시간이면 일어나 먹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올림픽이 끝난 뒤에는 체중을 늘려야 하는 걱정에서도 조금은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성은령의 소박한 꿈이 하나둘씩 이뤄지는 순간 한국 여자 루지도 조금씩 세계적인 수준과 가까워지는 꿈을 더욱 키워갈 것이다. 그렇게 성은령도, 한국 여자 루지도 차근차근 익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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