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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끝작렬

    [뒤끝작렬] 반미 좀 하면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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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8올림픽때도 NBC 망동…통상압박, GM철수, 펜스 외교결례로 감정악화

    노컷뉴스의 '뒤끝작렬'은 CBS 노컷뉴스 기자들의 취재 뒷얘기를 가감 없이 풀어내는 공간입니다. 전 방위적 사회감시와 성역 없는 취재보도라는 '노컷뉴스'의 이름에 걸맞은 기사입니다. 때로는 방송에서는 다 담아내지 못한 따스한 감동이 '작렬'하는 기사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편집자 주]

    (사진=스마트이미지 제공/자료사진)
    새해 벽두부터 미국이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 조치) 등 통상 압력을 가한데 이어 GM은 군산공장에 대한 일방적 폐쇄 방침을 발표했다.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평창 동계올림픽 잔칫상에 재를 뿌리고, 독점 중계권을 지닌 미국 NBC 방송은 한국을 비하하는 망언을 한 것도 불과 며칠 전이다.

    약소국 설움에 자존심마저 꾹꾹 누르고 살아온 '동맹국' 한국인들의 감정 따위는 아랑곳 하지 않는 태도다.

    물론 GM과 NBC는 사기업의 자체 경영논리에 따른 결정을 한 것이어서 미국 전체가 그런 것처럼 뭉뚱그릴 수 없다는 반론이 가능하다.

    하지만 주로 한국산 세탁기를 겨냥한 세이프가드의 배후에는 월풀이라는 미국 기업의 로비가 있었다는 게 정설인 것처럼 대외정책에 관한 한 미국 정부와 기업은 한 몸이다.

    이런 미국의 한국 무시는 연원이 깊다. 일본의 한국 지배를 용인한 가쓰라 태프트 밀약이나 해방 직후 미 군정의 횡포까지 거슬러 올라갈 필요도 없이 딱 30년 전 88 서울 올림픽 때도 그랬다.

    그때도 올림픽 기간 방송사였던 NBC를 비롯한 미국 언론들은 주최국 한국에 대한 편파·비하 보도로 자국 내에서조차 문제가 됐다.

    당시 뉴욕타임스는 1면 기사로 미국 TV의 올림픽 보도가 불공평하게도 한국의 어두운 측면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비판이 일면서 한국에 반미주의를 촉발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 언론들은 한국의 메달박스인 권투 경기에 대한 편파 보도에 이어 한국인의 생활상에 대해서도 경멸에 가까운 언행을 일삼았다.

    당시 동아일보 9월28일자 보도를 보면, NBC PD 등 직원 4명이 이태원 옷가게를 찾아와 앞면에는 '올림픽 개최지의 싸구려 티셔츠', 등쪽에는 '무질서한 88공연'이란 영문 표현이 담긴 티셔츠를 주문했다.

    뿐만 아니라 당시 미국의 흑인 육상스타 칼 루이스는 한국 입국시 오만불손한 태도로 물의를 빚었고 미국 수영 금메달리스트의 치기 어린 절도 사건까지 연거푸 발생했다.

    미국을 일제로부터의 해방군, 북괴로부터의 수호자로 여기며 두 팔 벌려 환대했던 한국인들의 기대에 찬물을 끼얹으며 미국에 대한 인식을 재고하게 만든 계기였다.

    오죽하면 당시 미국과 소련의 농구 경기에서 한국 관중들이 수교도 하지 않은 소련을 응원하는 '이변'이 벌어졌겠는가.

    정부는 물론 여야 정치권도 전혀 예상 밖의 상황 전개에 놀라며 "북한의 대남전략에 이용당할 가능성"(9월29일 민정당 확대당직자회의)이 있다면서 "국익 차원의 냉철한 자세"(9월29일 평민당 김대중 총재)를 당부했다.

    그렇게 30년 세월이 지났고 한국은 개발도상국을 벗어나 경제는 물론 정치, 사회, 문화 등 모든 면에서 세계 유력 국가로 발돋움했지만 미국의 한국 '패싱'(passing)은 여전하다.

    비록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을 무시할 일은 없을 것"(there will be no skipping of S. Korea)이라며 친절하게도 '패싱'이란 콩글리쉬를 교정해줬지만 상황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펜스 부통령이 세계적 대행사인 올림픽 주최국 대통령이 주재하는 리셉션에 늦게 도착한 것도 모자라 5분 만에 자리를 뜨는 무례함은 한국을 얕보는 마음이 깔려있지 않고서야 나올 수 없는 행동이다.

    미국의 이런 오만함과 달리 한국인들의 대미 인식은 크게 달라졌다.

    30년 전에는 소련, 중공, 북한이란 '적성국'에 둘러싸인 냉전 질서에서 미국이란 존재는 어찌됐든 한국을 구원해줄 유일한 생명줄이었다.

    물론 냉전이 끝나고 중국이 G2로 부상하며 새로운 지정학적 시대가 펼쳐지는 지금도 한미동맹의 가치는 결코 줄어들지 않았다.

    하지만 무조건 미국에 의탁하고 한국은 수혜자 역할에만 머물렀던 과거와 달리 한미관계의 등가성이 강조되는 현실이다.

    일례로 주한미군이 비단 한국 방어 목적뿐만 아니라 미국의 세계전략 차원의 필요 때문이라는 것은 이제 상식이 됐다.

    경제적 측면에서 보더라도 미국은 팔리지 않는 미제 자동차 판매를 강요하다시피 하며 FTA 개정을 압박하는, 더 이상 '고마운 존재'만은 아니다.

    한국인들은 30년 전 88올림픽 때와는 또 다른 측면에서, 아니 오히려 더욱 살얼음판 같은 현 상황에서 전운을 고조시키는 미국의 군산복합 시스템에도 의혹의 시선을 보내기 시작했다.

    비록 실패했지만 수평적 자주외교를 꿈꾸며 "반미(反美) 좀 하면 어때"라고 했던 대통령을 10여년 전에 배출한 나라다.

    그럼에도 미국은 이런 눈치도 없이 세계인의 축제 한복판에서 훼방꾼의 옹졸한 이미지만 남기고 갔으니 보수·진보를 떠나 한국인들의 실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다만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이런 불만과 분노에도 불구하고 섣불리 드러내지 않고 상황을 관리해 나가려는 우리 국민들의 성숙함이다.

    동방예의지국을 동맹으로 둔 미국은 한국의 이런 정서를 깊이 헤아릴 필요가 있다. 영원한 친구도 적도 없는 국제사회에서 70년 넘게 결초보은하는 나라는 그리 흔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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