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출가 이윤택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는 폭로가 연일 쏟아지고 있다. (사진=노컷뉴스 자료사진)
연출가 이윤택에 대한 성추행 폭로가 연일 계속되고 있다. 15~16일 이틀 사이에만 새로운 폭로가 속속 추가됐다. 1999년 일을 전한 피해자가 나오는 등, 이윤택의 성추행과 성희롱이 매우 오랫동안 지속돼 온 정황이 드러났다. 피해자들은 이윤택이 안마를 이유로 수치심을 일으키는 행동을 종용했다고 입을 모았다.
극단의 대표이자 연출가인 B 씨는 15일 자신의 SNS에 #metoo라는 해시태그를 걸고 이윤택에게 당한 성추행 피해 사실을 적었다. B 씨의 글에 따르면 그는 이윤택을 1999년 만났고, 막내 기수 여성들은 조를 나누어 '안마 중독자' 이윤택을 밤마다 두 명씩 주물렀다고 설명했다. B 씨는 "어린 우리들은 합숙하고 있고 학교를 다니다 처음 겪는 사회였다"며 "강압적인 상황이었고 아무도 거부하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내가 안마를 해야 하는 날은 밤이 되는 게 너무 무서웠다"는 B 씨는 처음 몇 주 정도는 팔다리 등만 주물렀는데 이윤택은 한 달 정도 지나자 바지를 벗고 속옷 차림으로 안마를 받기 시작했으며, 사타구니 주변이 혈이 모이는 자리라며 집중적으로 안마를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B 씨는 "10년 전에도, 국립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고 하니 정말 실망스럽고 후회스럽다. 너무 싫었고, 무서웠고, 도망쳐서 곤란을 면하고 나 또한 외면한 시간이 너무 미안하고, 내가 나쁜 일을 당한 건지도 몰랐고 성추행이라고 할 만한 일이었는지 알 때는 이미 시간이 너무 지나가 있었고 존경하는 훌륭한 선배님들께 누를 끼치고 싶지 않고 이후에는 안 한다고 하길래.. 혹시나 연극계에서 찍힐까 두려웠고... 말할 수 없었던 변명이 너무나 많다"고 털어놨다.
B 씨는 "피해자는 의식적으로 살기 위해 피해 자체를 지우려고 노력한다. 저는 피해자라고 인식조차 하지 않고 기억에서 지우고 살아왔다"면서도 "나의 이 고백이 이제라도 조금이라도 이러한 일들이 더 이상 발생하지 못하게 되는 계기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적는다"고 썼다.
그러면서 "며칠을 본인의 진심 어린 사죄의 글이라도 나오길 기다렸다. 개인의 죄를 왜 단체가 대신 입장 발표하고 사죄하는지 모르겠다. (죄입니다. 제발 인정하세요!) 그냥 무마할 하나의 에피소드라 넘기지 마십시오"라며 "전체를 위해 개인의 고통이 묵살되지 않길 바라며, 부디 이번을 계기로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B 씨는 같은 날 올린 또 다른 글을 통해 "이윤택 님의 직접 사과를 기다립니다"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극단에 몸담은 배우 C 씨는 '#metoo # 미투'라는 해시태그 아래 자신이 겪은 일을 16일 자신의 SNS에 폭로했다. C 씨는 대학 진학보다는 극단에서 차근차근 배우고 싶어 극단 '밀양'에 들어갔을 때, 회식을 마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성추행을 당했다고 썼다.
C 씨는 "이샘은 내게 함께 타자 하셨고 그 차에 탔다. 그 차엔 운전하는 선배와 나와 이샘이 탔는데 이샘은 내게 안마를 요구하셨고 자신의 성기를 만지게 했다. 입으로 하라고 자꾸 힘으로 날 끌었다. 그 힘이 너무나 셌고 무서웠고 앞에 운전하던 선배에게 도움을 청할 수 없을 정도로 겁에 질렸다. 그 후에 극단생활은 지옥 속이었다. 이샘은 늘 나를 찾았고 난 괴로웠으며 아팠다"고 밝혔다.
(사진=자료사진)
C 씨는 "왜 도움을 청하지 않았느냐 묻고 싶을 것이다. 왜 나오지 않고 버텼는지 묻고 싶을 것이다. 아직 세상 물정을 모르는 내게 그곳은 큰 성 같았고 덤빌 수 없을 정도로 견고했으며 또 그곳이 아니면 넌 어디에서도 배우로 서지 못할 거라던 이샘에 말이 가슴에 콕 박혀 있었다"며 극단을 나오고 나서도 치료를 받았고 매일 악몽에 시달리는 10년을 보냈다고 말했다.
C 씨는 "그럼에도 나는 누군가에게 사과를 받고 싶고 또 누군가에겐 머리 숙여 정중히 사과하고 싶다. & 먼저 용기 낸 선배님 후배님 감사하다. 그리고 어디선가 아직도 상처를 안고 살고 있을 동료들에게 우리 잘못이 아니라고 이야기하고 싶다"고 글을 맺었다.
D 씨는 지난해 3월 1일 써 둔 이윤택 성추행 피해 글을 공개해 '미투'에 동참했다. D 씨 역시 이윤택이 안마를 요구했다고 밝혔다. 공적인 공간에 글을 쓴 이유로는 "나 자신이 그 일에 대해 느끼고 있는 부채의식을 털어놓고 싶은 마음"을 들었다.
이윤택은 부산일보 편집부 기자를 하다 서울예술전문대 극작과 교수를 거쳐 '오구', '어머니', '궁리', '하녀들', '이순신', '화성에서 꿈꾸다' 등 수많은 작품을 무대에 올린 연극계의 대표적인 연출가다.
그는 제26회 대종상 각본상을 비롯해 대산문학상 희곡상, 동아연극상 작품상, 백상예술상 대상, 서울연극제 연출상, 국립극장 오늘의 연출가상, 서울공연예술제 작품상, 대한민국 뮤지컬 대상 연출상, 더 뮤지컬 어워즈 최우수작품상, 대한민국연극대상 작품상 등 각종 상을 석권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난 14일부터 그간 함께 일한 여성들에게 수치심을 주는 행위를 강제하는 등 성추행을 저질렀다는 폭로가 나왔다. 이윤택은 연희단거리패 사과문을 통해 연희단거리패, 밀양연극촌, 30스튜디오의 예술감독에서 모두 물러나겠다고 밝혔으나, 본인이 직접 나서서 공식입장을 내놓거나 피해자들에게 사과하지는 않았다.
(관련기사 CBS노컷뉴스 18. 2. 15. 이윤택, 연희단 예술감독 사퇴에도 성추행 폭로 '계속')다음은 D 씨의 SNS 글 전문.
(* D 씨는 "최근 제 글이 어떠한 연락도 없이 언론 기사에 게재되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기자님들의 관심은 감사하나, 완전한 원문의 게재가 아니라면 기사에 싣지 않아 주셨으면 합니다. 부분적 편집으로 제 말이 곡해되기를 원치 않습니다"라고 밝혀 전문을 싣는다)이렇게 쓰기까지 조금은 어렵고, 상당히 오래 걸렸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언젠가 한 집단에 있었다. 그 집단은 그 집단이 속한 영역에서 최고 수준을 구가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곳이었고, 난 내가 그 집단의 일원이라는 것이 자랑스러웠다. 자랑스러워할 만한 사람들과 자랑스러운 배움을 지속할 수 있었고, 자랑스러워할 만한 산출물을 내 눈앞에서 볼 수 있었으니까. 숙식을 함께 한다는 다소 특수한 생활방식에서 오는 어려움도 그 자부심 하나로 견딜 수 있었다. 아니, 그런 어려움들이 오히려 나의 자부심을 강화시켰다고 볼 수도 있고.
그러나 결단코 자랑스럽지 않았던 시간이 있었다. 특히나 밤이 내겐 가장 거슬리는 시간이었는데, 그 이유는 바로 오너의 콜링 때문이었다. 꽤 나이가 있었던 그분께선 낮에 쌓였던 피로 때문인지 밤이 되면 안마를 요구했다. 때때로 난 그 요구에 불려 갔고, 그리하여 컴컴한 방에서 어쩔 땐 다른 이와, 어쩔 땐 홀로 1시간가량 안마를 했다. 요구 부위가 상체에서 끝날 때도 있었고, 하체 부위를 해야 할 때도 있었다. 생식기 주변을 눌러줘야 몸이 풀린다기에 ‘본의 아니게’ 그의 생식기가 손에 닿을 때도 있었다. 짧을 땐 1~2분, 길 때는 10분 정도.
지난해 말 할리우드에서 본격화돼 화제를 모은 '미투'(각계 여성들이 자신의 성폭력 경험을 공개하는 일) 운동이 국내에서는 이미 더 먼저 시작됐다는 것을 알린 '씨리얼' 영상 일부 (사진='씨리얼' 캡처)
안마를 해야 하는 시간은 불규칙했다. 어느 땐 자정에 가까운 시간이었고, 심할 땐 새벽 3~4시 중간에 깨야 할 때도 있었다. 으레 그럴 때면 나보다 집단에 더 오래 계셨던 분들이 나를 흔들어 깨우기도 했다. 오너의 안마를 좀 네가 해줘야겠다면서. 안마를 하면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그들이 모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게 말을 하는 그들의 눈빛에 깃들어 있던 미안함을 넘어선 미안함, 그것을 난 놓치지 않았으니까. 때로 내가 아닌 다른 이가 불려갈 때면 내 마음속에 찾아왔던 안도감, 그 부끄러움 또한 난 잊지 않고 있다. 아니, 영영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내가 그러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그 집단에 있는 동안 내가 오너의 안마를 했던 횟수는 아마 50회 정도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이 몇 단락을 꺼내어 놓는 데 몇 년이 걸렸다. 그 망설임의 이유는 다음과 같다.
- 재작년까지 이 사건을 얘기하지 못했던 건, 오너와의 접촉이 나로선 그리 치욕스럽거나 극심한 불쾌감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사람은 내겐 그저 늙은 살덩이였고, 그 몸과의 접촉은 (성긴 비유를 하자면) 내겐 소나 돼지의 몸을 만지는 것과 다름없었다. 이러한 내 입장을 일종의 방어막이라 여길 이들도 있겠지만, 누구보다 그 사건과 내 감정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해봤던 인물로서, 아무래도 그렇진 않다. 내가 좀 특이한 인간이라 그럴지도.
- 작년부터 지금까지, 그러니까 소위 ‘xx계 내 성폭력’ 이슈가 뜨거울 시점에 이 얘기를 하지 못했던 이유는, 내가 겪은 이 일이 나에게 있어 과연 ‘성폭력’ 혹은 ‘성희롱’ 등의 단어로 규정지어질 만한 일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한, 여성들 말고도 남성들도 안마에 불려 갔다. 그러나 난 남성들 또한 오너의 중요 부위를 건드려야 했는지, 그들은 불쾌감을 느꼈는지 확인하지 못했다. 또한 나의 입장에서 오너의 행동은 불쾌감을 일으킨 ‘폭력’이 아니었기에, 같은 이슈 속에 이 일을 말해도 될지 의구심이 들었다. 때론 오너의 요구로 인해 반발하고 집단을 탈퇴하는 여성들도 있었다. 그러나 내가 그들이 아닌 이상, ‘성폭력’이라는 말로 이 일을 거론하는 게 과연 타당한 일인가? 알 수 없었다.
그럼에도 이제서야 이 일을 공적인 공간에 게재하게 된 이유는 단 하나다. 나 자신이 그 일에 대해 느끼고 있는 부채의식을 털어내고 싶은 마음 때문에. 나라는 한 개인으로서 그 일련의 일들은 충분히 잊고 넘어갈 수 있는 일이었지만, 그 일들을 겪은 누군가에겐 잊혀질 수 없는 치욕이자 트라우마, 그리고 좌시할 수 없는 ‘폭력’으로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그 일이 아픔이었다고, 치욕이자 부끄러움이었다고 말하고픈 이들― 그러나 쉽사리 용기가 없었던 이들에게 나의 침묵이 오히려 더 큰 족쇄로 작용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자책감과 두려움, 미안함.. 그러한 이기적인 동기에서 이 말들을 꺼내게 되었다.
이 글이 이대로 묻힐지, 아니면 당신들의 손으로 멀리까지 전해질지 난 모르겠다. 그러나 그 일을 겪은 자, 곧 그 일이 ‘성폭력’이라 여기는, 소위 ‘당사자’에게까지 다다른다면 그이에게 말하고 싶다. 당신의 고통에 대해 말해도 된다고, 그대에게 용기가 없다면 난 언제든지 당신과 연대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두려워하지 말라고. 그리고 미안하다는 말은, 직접 만나서 하고 싶다고.
이상, 오랜만의 긴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