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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을 산 자의 고백…"살아남아 미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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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옥을 산 자의 고백…"살아남아 미안해요"

    형제복지원 생존자 한종선 씨 "우리도 사람…달라지는 세상 믿고 싶다"

    (사진=자료사진/스마트이미지 제공)

     

    그는 지난 2012년 처음 만났을 때 "시키는 대로 복종하는 동물이었다"고 스스로를 표현했다. 처참한 인권 유린을 자행했던 부산 형제복지원에서 살아남은 한종선(43) 씨 이야기다.

    무려 513명의 목숨을 앗아간 형제복지원 사건이 사람들 기억속에서 잊혔던 그때, 한 씨는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면서, 책 '살아남은 아이'(펴낸곳 문주)를 내놓으면서 생존자들의 비참한 실상을 세상에 다시 알렸다.

    당시 인터뷰에서 그는 "복지원을 나와 사회 생활을 하면서 짐승으로 변해갔고, 더 비뚤어졌으면 괴물이 됐을지도 모른다"며 말을 이었다.

    "지금은 달라요. 저 혼자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3500명의 피해자가 있어요. 그들이 저에게 기대를 걸고 있다는 것을 잘 알아요. 피해자들이 보상받을 길을 열고 제2, 제3의 형제복지원이 생기지 않도록 재발 방지 대책이 마련되는 데 힘쓸 겁니다."

    6년이 흘렀건만,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기록적인 한파가 불어닥친 올겨울 한 씨는 국회 정문 앞에서 100일 넘게 노숙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는, 형제복지원 사건의 진상 규명과 피해 보상 등을 담은 특별법 통과를 촉구하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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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씨는 국회 앞 노숙농성 105일째인 19일 "우리도 사람으로서 사람답게 살고 싶다"며 설명을 이어갔다.

    "피해 당사자이기 이전에 사람으로서 뒤늦게라도 우리 권리를 찾기 위한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러한 요구를 하는 데 있어서 피해자이지만 괜한 미안함이 있습니다."

    '가만히 있다가 왜 이제서야 목소리를 내느냐'는 일각의 혐오 섞인 비난을 의식한 말이었다. 하지만 언론 등에서 부각되지 않았을 뿐, 평생을 트라우마에 시달렸고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는 인식을 공유한 뒤로 그들은 목소리를 내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국가 공권력에 의해 우리가 (형제복지원에) 잡혀갔던 일이었잖아요. 피해보상 등 도움 역시 공권력에 청했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또 다른 시설에 잡혀들어가기 십상인 시대였죠. 도움을 청할 길이 없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이야기하는 데는 그나마 세상이 변해가고 있다는 것을 몸으로 조금씩 느끼고 있기 때문"이라며 "이 사회가 얼마나 바뀌어 있는가를 최소한 믿어 보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 "내가 피해자"라는 밑바닥 생존자들 외침마저 믿지 않는 국가

    부산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실종자·유가족) 대표 한종선 씨(왼쪽)와 최승우 씨가 국회 정문 앞에서 노숙 연자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이준규 기자)

     

    한 씨 이름 옆에는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실종자·유가족) 모임 대표'라는 직함이 달렸다. 그가 6년 전 홀로 시위를 할 때와는 크게 달라진 생존자들의 인식을 방증하는 상징이다.

    "제가 총대표를 맡았고, 각 지역별 대표가 따로 있어요. 당장 생계 잇기도 쉽지 않아서 생존자들은 회의 등에 참석하기가 어려워요. 지역별 대표들이 최대한 회의나 일정이 있을 때 꼭 참석한 뒤 자기 지역으로 돌아가 이야기를 전달하고, 다시 지역 목소리를 모아서 올라오는 식으로 운영됩니다."

    그는 "피해 사실을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는 책임감을 이제는 생존자들이 공유하고 있다"며 "피해자라고 해서 계속 동정만 받기 보다는, 우리 스스로 할 수 있는 역할을 찾자는 자발성을 갖게 된 것이 무엇보다 고무적"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움직임이 저는 물론 생존자들끼리 아픔을 치유하는 데도 보탬을 주고 있다"는 것이 한 씨의 전언이다.

    "당장 신분을 드러낸 생존자들만이라도 실태조사를 벌여 상처를 치유할 수 있게끔 심리상담을 지원하면 참 좋은데…. 이마저도 국회에서 특별법이 통과돼야만 가능한 부분입니다. 생존자들이 '내가 피해자'라고 외치고는 있지만, 국가에서 아직 믿어 주지 않는 셈이죠. 힘든 상황입니다."

    한 씨는 "이처럼 진상규명조차 어려운 실정이지만, 피해 당사자로서 우리마저 손놓고 기다릴 수는 없다"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최대한 다 해보자는 취지에서 노숙농성을 이어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형제복지원이 저지른 만행을 규탄하는 데 있어서 국민적 공감대는 만들어졌지만, 생존자들과 한목소리를 내는 데까지는 아직 나아가지 못하는 것 같다"며 간절한 바람을 전했다.

    "고아·부랑인들에 대한 편견, 부정적인 인식이 여전하기 때문은 아닐까라는 생각도 듭니다. 이와 관련해 생존자들이 가장 경계하는 부분 역시 우리의 진정성을 훼손시키지 않는 데 있으니까요. 이번 노숙농성의 끝은 아마도 대한민국의 제일 밑바닥에 있던 사람들이 국가로부터 사과를 받아내는 데 있을 겁니다. 그러면 우리가 지닌 미안함도 덜어지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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