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비정규직 중 약 90%가 정규직 전환에 실패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정부가 제시한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 자체가 문제투성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교육공무직본부에 따르면 17개 시도교육청 가운데 학교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심의를 마친 13개 지역의 평균 전환율이 10.4%에 그쳤다.
또 나머지 4개 지역의 평균 전환율도 10.7%에 불과한 것으로 추산돼 학교 비정규직 10명 중 9명은 정규직 전환에 실패했다.
정부는 지난해 10월 공공부문의 정규직 전환 계획을 발표하면서, 공공부문 교육기관에서 상시지속적 업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비율 목표치를 24.9%로 잡았다. 그 절반에도 못 미친 셈이다.
'비정규직 제로화' 정책은 문재인 정부 노동정책 중에서도 핵심인 정책이다. 문 대통령이 취임 직후 첫 공식 외부 일정으로 인천국제공항을 선택해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선언하기도 했다.
하지만 전체 공공부문 비정규직 70여만명 중 절반인 35만여명이 교육 부문에 있는 점을 감안할 때, 학교 비정규직의 90%가 정규직 전환에 실패한 결과로는 사실상 정부의 비정규직 제로화 정책 자체가 낙제점을 받을 위기에 처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처럼 교육 현장의 정규직 전환율이 낮은 이유는 애초 정부가 만든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부터 부실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해 7월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추진계획'을, 10월에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특별실태조사 결과 및 연차별 전환계획'을 연이어 발표하며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전국 17개 시도교육청 전환심의위원회 심의위원 163명의 구성현황
이에 따르면 학교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여부를 결정하는 각 시도별 '정규직전환심의위원회' 규모는 8~10명 가량으로, 이 가운데 교육청 담당 공무원들이 절반을 차지하는 대신 비정규직 당사자 의견도 청취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당사자 의견'을 제시할 노동계 측 인원 규모의 최소값이 없다보니 거의 모든 심의위마다 노동계 입장을 대변할 위원이 고작 한두명에 불과하다. 특히 서울과 경기, 전북은 비정규직 추천 위원이 단 1명도 없다.
전국교육공무직본부 배동산 정책국장은 "서울과 전북은 전문가 위원 가운데 민주노총 추천 인원이 참여했지만, 경기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의견을 대변할 만한 인물이 전혀 없다"며 "경기는 진보 교육감이 있는 대표적 지역인데도, 실무 공무원들로서는 사용자로서의 부담감이 더 컸던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 "전문가 위원 가운데에도 노동 전문성이 없는 교육계 위원들이 다수를 차지하는 경우가 상당하다"며 "대학 교수 가운데 자신들이 속한 학교에서 맡은 업무 등의 이유로 교육청과 이해관계가 얽힌 사례도 있다"고 덧붙였다.
심의위 구성부터 문제가 발생하다 보니 실제 심의과정도 허술하기 짝이 없다.
대전, 충북 지역의 심의위에 참여한 호죽노동인권센터 하태현 노무사는 "교육청마다 상황은 다르겠지만, 교육청이 미리 준비한 전환 계획안을 안건으로 올리면 위원들이 논의하는 방식"이라며 "교육청이 먼저 결과를 만들어놓고, 심의위는 거수기 역할에 그친 일이 여럿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전환을 제외할 논거, 이유가 타당하지 않다고 반대해도 위원들이 토론하지 않더라"며 "대신 의장이 '통과시키자'고 제안하면 나머지 위원들이 '예'하고 찬성해 표결로 결정하고 다음 안건으로 넘어가던 식"이라고 설명했다.
또 전문가 위원들을 교육청이 입맛대로 선발하도록 허용했기 때문에 의미 있는 심의를 하기 어려웠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하 노무사는 "외부 전문가 위원인데도 심지어 '전문성이 있느냐, 굳이 전환할 필요가 있느냐'고 발언하는 등 전문성이 부족한 이들이 많았다"며 "수십 가지 직종의 업무형태와 실태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이를 확인하기 위한 질문도 하지 않은 채 교육청이 제공한 설명자료만 읽고 결정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게다가 관련 기준도 불분명해서 같은 직군, 같은 조건인데도 전환 결과가 다르게 나오기도 한다.
방과후교육 지도자들이나 통학차량·배식지원 등 1주일에 15시간 미만 일하는 초단시간 노동자들이나 운동부 지도자들의 경우 지역별로 전환대상에 포함되기도, 포함되지 않기도 한 것이다.
이에 대해 배 정책국장은 "현재 전환제도로는 재심의 등 구제방안이 없다"며 "전환 심의는 끝났지만, 실제 전환대상을 확대하거나 전환제외자라도 고용안정·처우개선을 누리도록 노조와 직접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일단 국회 등 정치권을 상대로 토론회를 진행하는 등 사회적 여론을 환기할 계획"이라며 "다음 달까지도 정부가 별다른 대책을 제시하지 않는다면 대규모 집회 등 정면 대응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