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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린'은 맞고 '워너원'은 틀리다



문화 일반

    '아이린'은 맞고 '워너원'은 틀리다

    인기 아이돌 발언 관련 대비되는 두 사건 진단…뿌리깊은 가부장제 민낯

    아이돌 그룹 레드벨벳 멤버 아이린(왼쪽)과 워너원(사진=황진환 기자)

     

    #1. 인기 아이돌 그룹 레드벨벳은 지난 18일 서울 삼성동에서 팬들과 만남의 자리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멤버 아이린은 "최근 책을 많이 읽었다.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다"고 근황을 전했다. 이를 두고 일부 누리꾼들은 "아이린이 페미니스트 선언을 했다"고 비난하며 그의 사진을 찢거나 불태우기도 했다.

    #2. 인기 아이돌 그룹 워너원은 지난 19일 새 앨범 발매와 관련한 인터넷 생방송에서, 방송이 나가는 것을 모르고 성적 비하 발언 등을 해 물의를 빚었다. 당시 현장에는 여성 스태프도 여럿 눈에 띄었다. 일부 팬들은 워너원을 두둔할 목적으로 다소 무리한 '왜곡' 주장을 펴 대중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기도 했다.

    최근 아이돌 스타와 관련해 벌어진 위 두 사건은, 사건 그 자체와 이후 터져나온 반응 면에서 모두 흥미로운 대비를 이룹니다.

    먼저 레드벨벳 멤버 아이린은 작가 조남주의 소설 '82년생 김지영'(민음사)을 읽었다는 이유로 '페미니스트'(이러한 주장을 펴는 이들은 페미니즘이나 페미니스트를 몹시 부정적인 것으로 이해합니다. 마치 테러리스트처럼) 혐오의 대상이 됐습니다.

    이 소설은 딸을 둔 평범한 30대 주부 김지영씨가 살아 온, 특별할 것 하나 없는 여성으로서의 삶을 찬찬히 따라갑니다. 이를 통해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당해 온 뿌리깊은 일상의 차별과 폭력을 담담하게 고발하죠. 지금과 같은 출판 불황기에도 출간 14개월 만에 50만 부가 팔렸다니, 사람들로부터 커다란 공감을 얻었다는 점을 방증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다는 이유로 아이린이 비난 받을 이유는 없습니다. 오히려 지지와 응원을 받아야 하지 않을까요. 소설 속 김지영씨 삶에 공감하고 같은 여성으로서 자기 삶을 되돌아본 그가,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테니까요.

    아이린을 향한 일부 누리꾼들의 비난에는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강요하며 여성 등 사회적 약자를 억압해 온 가부장제 인식이 똬리를 틀고 있다는 점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습니다. 각성하고 저항하는 약자를 인정 못하는, 이 시대착오적인 인식이 여전히 우리 일상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드러내는 대목이죠.

    남성 아이돌 그룹 워너원의 경우가 이를 다시 한 번 증명합니다. '방송이 되는 줄 몰랐다'는 전제로 인해, 워너원은 본의 아니게 자신들의 평소 모습을 가감없이 대중 앞에 드러냈습니다.

    불붙은 '미투운동'이 정치권까지 뒤흔드는 시기에 접하게 된 그 민낯은 다소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동안 우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하던 일상적인 말과 행동이, 여성 등 사회적 약자에게 상처를 줬던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자'는 사회적 성찰 분위기와는 확연히 동떨어졌던 까닭입니다.

    또래 남성 멤버들이 거리낌없이, 익숙하게 주고받던 성적 비하 발언에는 열렬한 지지를 보내주는 팬들, 현장에 있던 여성 스태프들의 존재가 지워져 있었습니다. 이번 사건의 원인을 두고 워너원 측이 '단순 방송사고였다'는 안일한 인식에 머물러서는 안 되는 이유입니다.

    ◇ "인간을 남녀로 구분하는 사고방식은 페미니즘이 아니라 가부장제"

    지난 15일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미투 운동과 함께하는 범시민행동 출범 기자회견' 참석자들이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가부장제는 인간을 생물학적인 남과 여로 나눠 각기 다른 사회적 역할을 부여함으로써 남성을 상대적인 강자로 만들었습니다. 문제는 부와 권력을 쥔 극소수 남성을 제외한 대다수 남성에게도 "자고로 남자란 말이야"라고 강권하는 가부장제가 억압으로 작용한다는 점입니다.

    여성학자 정희진은 저서 '낯선 시선: 메타젠더로 본 세상'(교양인)의 머리말을 통해 어느 인문학 캠프 강의에서 겪은 일화를 소개합니다. 당시 만난 한 학생이 아래와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저는 페미니즘(여성주의)은 인문학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인문학은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건데, 페미니즘은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나누면서 갈등을 만들잖아요? 여성주의가 인문학이 되려면 앞으로 시간이 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아직 여성주의는 인문학에 포함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대한 정희진의 대답은 이랬습니다.

    "아, 그렇군요. 저는 인문학이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가는 공부라고 생각하거든요. 내가 누구인지 고민할 때, 자신의 성별을 모르고 가능할까요? 여성주의는 성별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해 인간과 사회를 공부합니다. 아, 참 그리고, 이게 가장 잘못 알려진 건데요. 인간을 남성과 여성으로 구분하는 사고방식은 여성주의가 아니라 가부장제입니다."

    결국 가부장제 아래에서 여성 문제는 필연적으로 여성 만의 문제가 아닌 것이 됩니다. 차별 받는 여성 문제는 곧 차별 받는 남성 문제로서, 모두가 평등할 수 있는 사회로 함께 바꿔나가야 할 과제라는 이야기죠.

    이러한 가부장제적 인식에 도전장을 내민 것이 "불평등한 세상을 직시하자"는 페미니즘이라고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듯합니다. 사회적 약자인 여성의 눈으로 주변을 보면, 그만큼 보다 평등한 세상을 그리고 그러한 세상을 앞당길 수 있을 테니까요.

    그 연장선상에서 위 책 머리말 말미, 정희진의 아래와 같은 당부는 여러 차례 되씹어 볼 만합니다.

    "우리에게는 돈이나 물리력이 없다. 절대 다수인 사회적 약자가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자원은 윤리와 언어뿐이다. 그리고 남녀를 불문하고 여성주의는 이 과정에 '지름길'이 될 것이다. (중략) 단언컨대, 여성주의를 모르고 앎을 말할 수 없다. 인류의 반의 경험을 제외하고, 어떻게 인간과 사회를 논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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