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 행적이 검찰 조사 결과 드러난 이후 지난해 숱한 논란을 불렀던 풍자화 ‘더러운 잠’이 재조명되고 있다.
‘더러운 잠’은 지난해 1월 20일, ‘곧, 바이!’ 그림전을 통해 공개됐다.
에두아르 마네의 ‘올랭피아’를 차용한 이 그림에는 침몰중인 세월호를 배경으로 잠들어 있는 박 전 대통령이 묘사돼 있다.
그런데 이 그림은 이번 검찰 수사를 통해 밝혀진 박근혜 전 대통령의 7시간 행적을 설명하는 두 가지 키워드가 그대로 관통하고 있다.
바로 침실과 최순실이다.
침실은 국가적 재난 순간에 대통령의 근무가 얼마나 태만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어다,
그리고 최순실은 대통령의 중요한 판단이 사적 관계에 있는 한 개인에게 얼마나 의존해 있었는지를 판단하게 해주는 매개물이다.
그림이 공개된 시기는 지난해 1월로, 박근혜 7시간의 미스테리를 풀기 위한 특검 수사가 한창일 때였다.
특검은 간호장교 조여옥 대위를 소환조사하고, ‘비선진료’ 의혹을 받는 김영재 원장과 차움병원 등을 압수수색하기도 했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당일 정상적으로 보고받으며 체크하고 있었다”고 반박했다.
이렇게 양측의 입장이 팽팽하던 때, 작가는 대통령의 7시간의 본질을 어찌도 그렇게 정확하게 꿰뚫었던 것일까?
이구영 작가.
‘더러운 잠’을 그린 이구영 작가는 CBS노컷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작가적 상상력의 소산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잠이라는 건 인간이 살아가면서 필수적인 요소지만, 분명 더러워지는 순간이 있다. 공적인 자리에서 공적인 시간을 써야 할 사람이 시간을 사적으로 쓰며 자기 역할을 방기했을 때다. 그런 상황에서 얼마나 나태하고 더러운 시간을 보냈을까? 그런 걸 고발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을 바탕으로, 이구영 작가는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의 관계를 극명하게 드러내기 위해 ‘올랭피아’라는 작품을 차용했다”고 한다.
'더러운 잠'이 차용한 원작인 에두아르 마네의 '올랭피아'. 원작에서는 시녀가 옆쪽을 보고있고, 주인이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원작의 구도 자체가 ‘시녀’가 ‘주인’에게 꽃다발을 전달해주고 있는 그림이다. 왜 박근혜가 최순실 씨를 언급하면서 ‘시녀 같은 사람이었다’고 한 적이 있지 않나. 그 발언을 보며 이 작품이 퍼뜩 떠올랐다. 시녀처럼 여겼지만, 정작 역전된 관계. 모든 것을 다 하는 시녀와, 아무 것도 못 하는 주인의 관계가 딱 맞았다. 그렇기 때문에 원작에서는 백인 주인이 정면을 응시하고 있지만, 제 작품에서는 최순실 씨가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훨씬 능동적인 모습. 화면 밖에는 누가 있느냐면, 그림을 보는 사람이 있지 않나. 주인인 박근혜가 아니라 최순실 씨가 주인인 것마냥 화면 밖, 그림을 보고 있는 사람들을 뚫어져라 보고 있는거다.”
결국 '더러운 잠'은 '박근혜의 7시간'에 대해 박 전 대통령 측의 거짓으로 일관하는 태도, 거기서 나타날 수밖에 없었던 모순을 포착해 담아낸 그림인 셈이다.
그림이 발표되고 1년이 훌쩍 지난 지금 박 전 대통령은 구속됐고, 그와 청와대가 그토록 숨기고 싶어했던 진실도 속속들이 밝혀졌다.
이구영 작가는 "이제는 더러운 잠에서 그만 깨어나야 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런 마음으로, 이제는 '기쁜 잠' 등의 연작도 구상중이다. 가장 관심이 많은 것은 통일을 이야기하는 그림이다. 다만 더러운 잠에 빠져있는 분들이 항상 계시기에 안타깝게도 시리즈는 계속 나오지 않을까 싶다"며 "물론 그런 연작이 더이상 나오지 않는 시대를 바란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