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선실세 최순실의 딸 정유라씨에 대한 승마 지원비 등은 뇌물이지만 미르-K 스포츠재단과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대한 지원은 뇌물이 아니다.
6일 법원이 이같이 판단한 이유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경영권 승계'이라는 현안 자체가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김세윤 부장판사)는 이날 박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사건 1심 선고공판에서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관련해 부정한 청탁이 있었다는 혐의에 대해 "인정되지 않는다"며 무죄라고 밝혔다.
미르-K스포츠 재단과 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삼성이 각각 204억원과 16억2800만원을 부당하게 지원하게 한 혐의(제3자 뇌물수수)는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제3자 뇌물죄가 성립하기 위한 법적 요건인 '부정한 청탁'은 물론, 그 '대가'라고 할 수 있는 이 부회장의 승계작업 자체가 존재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다.
재판부는 "검찰의 증거만으로는 승계작업이라는 포괄현안을 이루는 개별현안 자체가 공소사실과 같이 이뤄졌다거나 이를 목표로 개별작업이 추진됐다고도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법정에 제출된 증거만으로는 현안이 존재하지 않았고, 따라서 부정한 청탁이 있다고도 볼 수 없다는 논리다.
"피고인의 형사책임을 논하는 법정에서는 승계작업에 대한 개념은 명확해야 하고, 합리적인 의심이 없을 정도로 증명돼야 한다"면서 승계작업이라는 현안의 존재를 '까다롭게' 봤다고 재판부는 설명했다.
같은 혐의를 받는 이 부회장에게 '부정한 청탁이 인정되지 않는다'며 집행유예를 선고한 이 부회장의 항소심 재판부와 사실상 같은 판단이다.
특히 재판부는 "설사 현안이 존재했더라도 박 전 대통령이 이를 뚜렷이 인식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현안과 관련해 명시적 청탁은 물론 묵시적 청탁이 있었다고 볼 수 없다"고 못 박았다.
다만 재판부는 정씨의 승마훈련과 관련해 삼성으로부터 받은 말 3마리 구입비와 보험료 등 36억원과 코어스포츠 지원금 36억원 등이 뇌물이라고 판단했다. 같은 재판부가 맡았던 공범 최순실씨의 1심 선고와 같은 취지의 판단이다.
재판부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박 전 대통령이 원하는 것이 정유라에 대한 승마 지원이라고 파악하고, 삼성전자 자금으로 36억원이 넘는 돈을 최순실씨 소유인 코어스포츠 계좌에 송금했다"며 "기업활동 전반에 영향력을 가진 대통령이 직무관계와 연관있는 대가관계에 따라 거액의 돈을 받았다"고 판단했다.
이 부분은 삼성 측에 유리하게 판단했다는 논란을 빚었던 이 부회장의 항소심 선고와는 다른 판단이다. 이 부회장 항소심 재판부는 말 3마리의 소유권을 삼성이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말 '사용료'만을 뇌물액으로 판단해 뇌물액수를 낮췄다.
한편 이날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사건 1심에서 징역 24년과 함께 벌금 180억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대통령 권한을 남용했고 그 결과 국정질서에 큰 혼란을 가져왔으며 헌정 사상 초유의 대통령 파면에 이르게 됐다"며 "그 주된 책임은 헌법이 부여한 책임을 방기한 피고인에게 있다"며 중형 선고의 배경을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