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모 할머니(83) 새벽밥을 먹고 나와 하루종일 폐지를 모아서 판 '대가'로 3500원을 손에 쥘 수 있었다. 지난 연말부터 중국의 폐지 수입금지에 따라 폐지값이 폭락하면서 폐지 수거 노인들의 삶이 갈수록 힘겨워지고 있다.(사진=윤철원기자)
"56키로. 하루 종일 해도 3천원밖에 (손에) 못 쥐어. 어쩌면 3천원도 못해. (보통) 2천원하고, 천원하고 그래. 오늘도 많이 한 것이 그런 거여…."
지난 6일 경기도 수원의 한 고물상에서 오후 5시가 다 돼서 만난 유모(83) 할머니는 새벽밥을 먹고 나와 하루 종일 폐지를 모은 '대가'로 3천500원을 손에 쥐었다. "그나마 기자 양반이 있어 500원 더 줬다"며 씁쓸한 웃음을 짓는 유 할머니는 "우리 같은 사람도 먹고 살게 해줬으면 좋겠다"며 다시 손수레를 끌기 시작했다.
이모(75) 할머니는 60키로가 넘는 수레를 끌고 고물상 두 군데를 지나쳐 이곳까지 폐지를 팔러왔다고 했다.
"키로당 60원 쳐줘요. 여기서 최고 많이 쳐줘요. 10원이라도 더 받으려고요."그렇게 이 할머니가 손에 쥔 돈은 3600원. 곧바로 이 할머니는 한 수레 가득 실은 책을 팔기 위해 책값을 더 많이 쳐주는 또다른 고물상을 향해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 "하루 종일 모아도 3천원…" 중국 수입금지 조치에 폐지값 '반토막'중국의 폐기물 수입 금지 조치의 불똥이 폐플라스틱‧폐비닐 수거 대란에 이어 폐지 수거 노인들에까지 튀고 있다. 중국의 폐기물 수입 거부 대상에 폐지도 포함되면서 노인들이 고물상에 넘기는 폐지 값이 크게는 4분의 1로 '뚝' 떨어진 탓이다.
9일 재활용업계 등에 따르면 2~3달 전까지만 해도 고물상 등은 노인들이 수거한 폐지를 1kg당 120원~130원에 매입했다. 그러나 중국의 폐기물 수입금지 조치로 현재는 1kg당 30원~50원까지 폭락한 상태다.
서울의 한 고물상을 운영하는 최모(55)씨는 "폐지 값이 좋을 때는 (1kg당) 150원까지 갔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갑자기 추락했다"며 "지금은 (1kg당) 40원에 사고, 50원이나 60원에 팔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환경공단에 따르면 고물상이 선별장이나 압축장 등 중간가공업체에 넘기는 '평균 폐지 가격'은 수도권 기준으로 폐골판지의 경우 지난 1월 136원에서 지난 3월 90원으로 46원이나 급락했다.
이같은 폐지 값 폭락은 중국이 폐기물 수입을 중단한 여파가 결정적이다.
관세청 통관실적을 보면 지난 1~2월 국내산 폐지 수출량은 전년 대비 43.4%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더해 중국 수출길이 막힌 유럽이나 미국 등의 값싼 폐지들이 국내로 수입되면서 국내 폐지량의 공급과잉을 더욱 부추겼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지난 1월 폐골판지와 폐신문지 수입량은 2만8859톤과 8만33톤으로 전월 대비 각각 10.17%와 26.38% 증가했다.
수원의 한 고물상 사장은 "내수 시장이 크지 않은 상황에서 중국 수입금지로 우리나라 폐지가 남아돌고 있다"며 "국내 폐지도 소화하지 못하는데, 값싼 폐지들을 밖에서 들여오면 국내 폐지 값은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에 정부는 국내 폐지를 우선적으로 재활용하도록 제지업체들의 협조를 구할 방침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최대한 국내 폐지를 재활용 할 수 있도록 수입을 최소화하고, 국산 폐지 이용률을 확대할 수 있도록 제지업계와 간담회를 가질 예정이다"라며 "'국내 폐지 재활용 이용 목표율'을 높이는 방향으로 지침을 개정해 4~5월 중에 바로 시행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