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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뜻의 '소확행'(小確幸). 욜로(YOLO)에 뒤이은 한 때 유행일 뿐이라는 시각도 있고, 목표를 이룰 수 없어 좌절한 세대들의 자기 위안이라는 비판도 있다. 하지만 그런 분석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소확행은 문화 곳곳에 확실하게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문화를 향유하는 방식은 물론 문화 콘텐츠 곳곳에서는 소확행에 대한 진지한 탐구가 진행중이다.
◇ 30년전 하루키가 만들어낸 소확행, 혼자만의 취미 문화생활로 이어져
"막 구운 따끈한 빵을 손으로 뜯어 먹는 것, 오후의 햇빛이 나뭇잎 그림자를 그리는 걸 바라보며 브람스의 실내악을 듣는 것, 서랍 안에 정갈하게 접어 넣은 속옷이 가득 쌓여 있는 것…"
무라카미 하루키가 1986년 수필 <랑겔스 섬의="" 오후="">에서 처음 사용한 단어 '소확행'은 30년이 지난 뒤에 문화의 주된 트렌드가 됐다. 덴마크의 휘게(Hygge), 프랑스의 오캄(Au calme), 스웨덴의 라곰(Lagom) 등 여러 용어들도 소박하고 균형잡힌 삶을 추구한다는 측면에서 큰 틀의 소확행에 묶일 수 있다.
소확행은 자신이 무엇을 할 때 행복한가에 대한 물음에서 시작한다. 이는 자기만의 취미나 문화생활로 자연스레 이어진다. 클래식은 물론이고 뮤지컬, 연극, 무용 공연이나 영화관람에서 1인 예매율이 크게 늘어나는 것도 이런 추세를 반영하고 있다.
대학에서 연구하는 박준호(31)씨는 종종 혼자 클래식 공연장을 찾는다. 그는 "클래식을 좋아하는데 공연장에서 오롯이 음악을 즐기기 위해 혼자 예매를 해서 가는 편"이라며 "공연장을 못갈 경우 라디오로 교향악축제 실황중계를 들은 뒤, 나중에 몇명이 모여서 감상평을 공유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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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구미선(37)씨도 "한강변을 따라 산책을 한 뒤에 혼자 영화를 보는 걸 가장 좋아한다. 혼자만의 시간이 소확행이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혼공족'이라고 불리는 나홀로 관람객은 실제로 크게 늘었다. 인터파크에 따르면 공연 티켓 구매건수 기준으로 1인 1매 구매건수비율은 2005년 전체의 11%에서 2016년 43%로 급증했다.
인터파크 관계자는 "나홀로 관람객이 해마다 크게 늘어나고 있다"며 "공연기획자들도 혼공족들이 즐길만한 작품들을 내놓고 있고, 공연장 주변에서 간단하게 혼자 식사를 할 수 있는 식당이 생겨나고 온라인상에서 서로 정보도 공유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 행복 탐구하는 영화, 예능, 도서, 전시…소확행의 명과 암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를 되짚어보게하는 소확행은 영화, TV예능 프로그램은 물론이고 출판 및 전시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최근 영화 '소공녀'와 '리틀포레스트'가 여운을 남기며 주목을 끌었다. 가난하지만 하루 한 잔의 위스키와 담배 한 모금을 사랑하며 매순간 삶을 즐기는 청춘을 그린 '소공녀'는 저예산 영화임에도 화제가 됐고, 임용고시에 실패한 주인공이 고향에서 요리를 하고 농사를 지으며 사계절을 보내는 '리틀 포레스트'도 150만 관객을 넘어 흥행에 성공했다.
TV예능에서는 '윤식당', '효리네민박' 등에서 소소한 일상을 관찰하며 인기를 끌었고, 최근에 나영석 PD가 속세와 떠나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숲속의 작은 집'이라는 예능을 선보이기도 했다.
출판계에서도 일상의 행복을 주제로 한 책이 꾸준히 베스트셀러에 올라있다. 디즈니 캐릭터 푸와 함께 행복에 대한 고찰을 담은 <곰돌이 푸,=""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는 교보문고, 인터파크 도서에서 몇주 연속 판매율 2위를 차지하고 있다.
소확행을 제목으로 내건 한 전시도 있다. dtc갤러리에서는 대전복합터미널 주최로 다음달 27일까지 회화와 사진 작품을 모은 <소확행-여행> 전을 진행중이다.
앞으로도 문화계 전반에 소확행 트렌드는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김성수 문화평론가는 "소확행은 경쟁에서의 승리 등 거대 이데올로기를 추구하기 보다는 삶을 건강하게 살려고 노력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체성을 짚어본다는 측면에서는 긍정적인 흐름"이라며 "예능에서도 소확행에 대한 본질이 무엇인지를 탐구하는 추세가 눈에 띈다. 앞으로 그런 흐름은 계속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김 평론가는 "10대, 20대 젊은이들이 소확행에 안주하게 하는 패턴이 있는 것 아닌가 하는 면에서 우려되는 면도 있다"고 소확행의 이면을 지적했다.
그는 "10~20대에 좌충우돌하면서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찾아가게 되는데, 실패에 대해 냉정하고 위로받기도 힘든 사회 속에서 젊은이들이 애초에 도전할 의지조차 없게 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