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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계 대모 박정자, "무대 위에선 아직도 늘 긴장하죠"



공연/전시

    연극계 대모 박정자, "무대 위에선 아직도 늘 긴장하죠"

    [노컷 인터뷰]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 배우 박정자

    배우 박정자. (사진=신시컴퍼니 제공)

     

    올해 나이 일흔일곱, 데뷔 52년차 원로배우, 연극계 대모 박정자. 인생의 대부분을 무대와 함께한 박정자는 무대가 집보다 편하다고 한다. 극장에 가지 않는 날은 불안해서 스케줄을 확인하고 또 확인하고, 대기실에 앉아 있어야 마음이 놓인다.

    박정자는 지난 11월부터 신도림 디큐브아트센터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에서 열연 중인다. 배우 홍윤희와 함께 할머니 역에 더블 캐스팅됐다. 무대 위에서 반백년을 지낸 베테랑이 "아직도 늘 긴장이 된다"고 한다.

    공연 시작 2시간 전 연습실에서 만난 박정자는 "곧 공연이 있으니 짧게 인터뷰하자"고 해놓고는 무대와 연기 이야기를 나누느라 눈빛이 반짝이더니, 어느새 이야기 삼매경에 빠졌다.

    긴장이 되지만, 무대 위에서 배우들과 함께 노래하고, 관객들에게 박수 받는 그 순간만큼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이 설렌다고 한 박정자. 그에게 현재 출연 중인 '빌리 엘리어트'를 비롯해 연기 인생을 들어보았다.

    ▶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가 호평 속에 공연 중입니다. 소감은 어떠세요.

    "주변에서도, 관객들도 잘 봤다고 하고 기립 박수를 보내주시니까 고맙죠. 저도 즐겁습니다. 사실 뮤지컬로 지금 같은 감동의 드라마를 전하기가 쉽지 않아요. 빌리를 맡은 어린이 배우들, 공연에 참여하는 앙상블, 그리고 스태프까지 포함해서 약 120명이 모두 피곤하다는 소리 없이 한마음으로 행복하게 임하고 있습니다."

    ▶ 더블 캐스트로 '할머니 역'을 맡고 계세요. 원래 원 캐스트를 주로 맡으셔서, 어색하실 것도 같아요.

    "어색하죠. 극장에 안 나오는 날은 불안해서 스케줄을 확인하고 또 확인해요. 대기실에 앉아 있어야 마음이 놓여요. 여기에는 영혼이 있어요. 제 일터이고, 안 오면 불안하고. 그래서인지 여기만 오면 잡념이 없어요.

    사실 저는 더블로 한 경우가 거의 없어요. 언제나 원 캐스트가 몸에 배어 있죠. 연극은 1년 정도 혼자 한 경험도 있는데, 이제는 이렇게도 하는 구나라며, 새로운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원 캐스트로 했으면 더 탄력이 붙었을 거예요."

    ▶ 요즘은 더블, 트리플 캐스트가 참 일반적이죠. 심지어 4명이 하는 경우도 있던데, 이런 흐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좋다고는 생각지 않아요. 외국에서도 이 정도로 많지는 않거든요. 우리나라가 유난히 심하죠. 그래서 드라마의 깊이가 부족할 수도 있어요. 바쁜 일정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것은 이해해도, 좋은 흐름은 아닌 것 같아요."

    ▶ 분장실 말고 공연 중에는 어떨 때 가장 힘이 나세요.

    "제가 하는 장면은 관객들이 평가해주실 거고, 저는 모든 배우가 합창할 때 가슴이 뛰어요. 노래 가사들도 참 좋고, 합창만이 주는 에너지가 있어요. 그 에너지 덕에 저뿐만 아니라 배우들이 지치지 않고 공연한다는 감사함이 있죠."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 제작 발표회 무대에서 배우 박정자가 인사말을 전하고 있다. (사진=신시컴퍼니 제공)

     

    ▶ 건강이나 체력적으로 힘드시지는 않으세요.
    "아직까지는 전혀 문제없어요. 원 캐스트도 할 수 있다니까요."

    ▶ 건강 관리 비결이 따로 있으신가요.
    "아무 것도 안 하는 게, 제 건강 관리 비결입니다."(웃음)

    ▶ 무대에 서실 때 긴장을 하시나요.
    "늘 긴장하죠. 가사 잊을까, 음을 틀릴까 늘 신경 써요. 할머니 역이 대사나 노래 분략은 적지만, 극의 정점을 찍는 1막이 끝나야 한시름 놔요."

    ▶ 이번 뮤지컬에 출연하려고 오디션을 보신 게 화제가 됐습니다. 박정자 선생님 정도면 서로 모시려고 할 텐데요.

    "오디션을 보려고 했는데, 오디션을 안 본다고 그래요. 재작년 여름인가 신시컴퍼니에서 연락이 왔어요. '오리지널 연출자가 한국에 왔는데 오셔서 말씀 좀 나누시죠'라고 해서 갔어요. 카페에서 만났는데, 오신 김에 대사 하나만 하고 가라네요. 알고보니 그게 오디션이었어요.(웃음)

    사실 요즘 젊은 친구들은 연극도 오디션을 봐요. 저는 오디션을 안 본 세대라서, 오디션이 어색한 건 있어요. 하지만 안 할 이유는 없죠. 내가 그 잘난 자존심 내세울 게 뭐가 있겠어요. 그 정도로 저도 철이 난 거죠."

    ▶ 오디션 후에 연출가 쪽 반응은 어땠나요.
    "나중에 신시컴퍼니서 연락이 왔어요. 전 세계적으로 할머니 역 캐스팅이 제일 어려운데, 의외로 좋은 배우를 만났다고, 그렇게 문자가 왔죠."(웃음)

    ▶ 빌리를 맡은 아역배우들과 호흡을 맞추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아이들이 참 똘똘해요. 종종 내가 어렸을 때 저 나이라면 쟤들처럼 똘똘하게, 연기를 잘했을까하는 생각도 하고요."

    ▶ 어린 친구들이라, 떼를 쓰거나 하지는 않나요.

    "전혀요. 인사성도 밝고, 의젓해요. 그런 점은 교육을 철저하게 받은 것 같아요. 뮤지컬 연습 중에는 엄마에게 절대 의지할 수가 없어요. 엄마들은 연습장에 못 들어오거든요. 그렇게 혼자 터득해가면서 이 길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길인지 본인들도 알게 되겠죠. 그리고 공연 후 터지는 환호와 박수 덕에 그 힘든 걸 싹 잊게 될 거고."

    ▶ 손주가 있으시잖아요. 빌리 아이들을 보면서, 연기 시키고 싶다는 생각은 안 드세요.

    "전혀요. 연기가 너무 힘들기도 하고, 잘하는 애들이 많아요."

    ▶ 아이들이 연기를 잘하는 건 학원 덕분일까요.

    "글쎄요. 근데 나는 오히려 학원이 문제라고 생각해요. 학원이라는 데가 아이들을 이상하게 만들어요. 틀에 맞춘 주입식 교육으로 상상력을 저해시키는 거죠. 그런 건 가르치는 게 아니에요. 그렇게 가르쳐 주면 안 가느니만 못하다고 봐요."

    ▶ 어디나 가르치는 사람이 중요하죠. 윌킨슨 선생님처럼. 선생님께 윌킨슨 선생님은 누구인가요.

    "제가 초등학교 때니까 전쟁 막 끝난 뒤였어요. 그때는 선생님이 운동장애 애들 세워놓고 디디티(DDT, 살충제)를 뿌렸어요. 벼룩이랑 빈대, 이를 잡는다고, 옷 안이고, 머리고 뿌려댔는데, 그때 우리는 서로 하얗게 되니까 '깔깔깔' 웃었다고요. 재미있는 기억이지만 비극이죠.

    그때 초등학교 담임선생님이 저에게 무용을 알려주셨어요. 학예회였는데, 헝가리 무곡 제5번. 그게 브람스곡인데, 그때 당시에는 알게 뭐예요. 막 전쟁 치르고 먹을 게 없어 배를 굶주리던 때인데, 그런 노래를 누가 만들었는지 무슨 관심이 있겠어요.

    그런 시절에 저를 포함해 5명에게 무용을 가르쳤어요. 탬버린이 필요하니 선생님이 옆 부자 학교에서 빌려왔어요. 저는 그 선생님이 윌킨슨 선생님 같아요. 시골 탄광 구석에 사는 아이의 가능성을 보고 로얄 발레단까지 시험을 보도록 하잖아요."

    ▶ 그런 리더가 많아야 할 텐데요.

    "리더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저는 '빌리 엘리어트'에서 심사위원도 참 훌륭하다고 생각해요. 좋은 질문을 하는 사람. 우리 사회엔 그런 리더가 필요해요.

    극에서 빌리가 심사위원단에 묻잖아요. 왜 무용 안 보느냐고. 그런데 심사위원들이 다 봤다면서 가라고 하니, 풀이 죽은 채 나가려 하는데, 한 심사위원이 물어요. '빌리, 넌 춤 출 때 무슨 생각을 하니'라고.

    빌리가 뭐라고 답해요. '난 아무 생각도 안 한다. 음악이 들리면 맞춰 뛰어오르고, 그때 자유를 느낀다'고 한다고요. 춤 추는데 무슨 생각을 해요. 그냥 즐기는 거지. 빌리가 이야기하는 건 자유로움이에요. 날아오르는 것. 저는 어떤 장면을 좋아하냐고 꼽으면 꼭 윌킨슨 선생님이 등장하는 장면과 이 심사위원 장면을 꼽아요."

    ▶ 앞으로 하고 싶은 역이 있으세요.

    "무슨 역이든 주어지면 행복하게 최선을 다 할 겁니다. 많은 역할을 해서 뭘 꼭 하고 싶다는 건 없어요. 아, 이건 꼭 할 겁니다. 연극 '19 그리고 80'. 이거는 제 나이가 80이 됐을 때 할 겁니다.

    지금까지 6번 했어요. 이제 3년 후면 제 나이가 극과 같이 80이 되어가요. 그때 연출자는 윤석화 씨가 할 거고, 문제는 해롤드인데. 누구를 시키지. 여기 빌리 중 한 명을 잘 키워서 할까 (웃음). 이건 내가 세운 프로젝트죠. 박정자의 아름다운 프로젝트라고 이름 붙였어요. 배우의 연령과 세월에 맞춰 그 역할을 하는 거죠.(웃음)

    ▶ 건강을 잘 지키셔야겠어요.

    "그렇죠. 우선 내가 건강해야 할 수 있겠죠. 8건강한 모습으로 계속 무대 위에서 좋은 모습, 잘하는 모습 보이고 싶어요. 그때까지 관객들께서 연극배우 박정자를 응원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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