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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 추행, 불법촬영, 음담패설… 방송가 성폭력 실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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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제 추행, 불법촬영, 음담패설… 방송가 성폭력 실태

    성폭력 피해 경험 89.7%, 가해자 47%가 방송사 임직원

    (사진=자료사진)

     

    "평소 존경해 왔던 20년 넘는 경력의 부장님이 회식 자리에서 뽀뽀하자고 했을 때 처음 그날의 당황스러움은 15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합니다."

    "노래방 갔을 땐 이런 건 어린 작가들이 하는 거라며, 자신들은 자리를 피하고 저 포함 연차 낮은 작가들에게 부장님과 블루스를 추게 하는 선배 작가님들도 있었습니다."

    "2015년 서브작가였을 당시 10살 차이가 나는 메인 PD에게 강제 성접촉(입맞춤, 끌어안음, 사귀는 사이가 되면 일 편하게 해 주겠단 반협박 제의) 등을 당했으나 그냥 묵인하고 조용히 본인만 그만둔 사례가 있었습니다."

    "저는 남자입니다. 원치 않는 술자리에서 헌팅을 강요하고 같이 성매매를 하러 가자고 합니다."

    "상사가 몰카를 찍었고(불법촬영) 그게 적발되었고 대표한테 말했지만 가해자는 여전히 그 회사 버젓이 다니고 있습니다."

    "회식 자리에서 술에 취한 50대 중후반 공중파 본사 제작 PD(남자)가 20대 후반의 서브작가(여자)의 가슴을 모두가 보는 앞에서 움켜쥐었고, 서브작가는 그날 이후 일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내려간 일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아무 조치도 징계도 없이요. 그 자리에서 아무도 말린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 충격적이었습니다."

    "작년 회식 때 출연 연예인으로부터 제작진에게 안마방을 잡아달라는 요구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셀 수 없는 음담패설, 업무 이야기를 해도 늘 사귀자는 제안으로 끝나는 전화통화, 회식 자리에서의 강제 신체 접촉과 블루스 강요, 출장 시 성별이 다른데 같은 방 쓰자고 강권, 불법촬영, 남자의 경우 술자리에서의 성매매 강요까지. 방송 제작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밝힌 성폭력 실태다. 응답자의 89.7%가 성폭력 경험이 있었지만, 성폭력 사건 사후 조치 만족도는 13.5%에 불과했다.

    방송계갑질 119와 방송스태프노조준비위원회가 18일 '2018 방송제작현장 성폭력 실태조사'를 발표했다. 이번 조사는 지난 2월 14일부터 3월 2일까지 구글 독스를 이용한 온라인 설문으로 진행됐다. 응답자 223명 중 여성이 93.7%(209명)로 압도적이었고, 직종은 작가(자료조사·프리뷰어 포함)가 80.2%(178명)가 가장 많았다.

    ◇ 외모 평가·성적 비유 가장 많아… 응답자 80.4% "참고 넘어갔다"

    직접 겪은 성폭력 피해 사례(복수응답 가능) 중 가장 빈도가 높았던 것은 외모에 대한 성적 비유나 평가(70.4%, 157명)였다. 전화·문자·SNS로 한 것을 포함한 음담패설 및 성적 농담(57.8%, 129명)이 그다음으로 높았고, 회식에서 술을 따르거나 옆에 앉도록 강요하는 행위(110명, 49.3%)가 세 번째였다.

    포옹·손잡기·신체 밀착·안마·입맞춤 등의 신체 접촉을 하거나 신체 접촉을 강요하는 행위(43.9%, 98명), 성적 굴욕감 또는 혐오감을 느끼게 하는 행위(40.8%, 91명), 성적 사실관계를 묻거나 관련 정보를 의도적으로 유포하는 행위(25.1%, 56명), 특정 신체 부위를 쳐다보는 행위(25.1%, 56명), 사적 만남을 강요하는 행위(22.0%, 49명)도 높은 빈도를 보였다.

    성폭력 행위자 중 1위는 47%(87명)를 차지한 방송사 소속 임직원이었다. 방송영상제작사 소속이거나 계약관계를 맺은 임직원이 35.7%(66명), 부문별 용역업체 소속이거나 계약관계를 맺은 임직원 7.6%(14명), 연예인 등 출연자 5.4%(10명), 기타 4.3%(8명) 순이었다.

    성폭력 행위자의 성별은 남성이 94.9%(188명)이었고 여성이 5.1%(10명)이었다. 발생 장소는 회식 장소(44.7%, 89명)가 1위였다. 방송 제작 현장 내 개방된 장소(24.1%, 48명), 기타(10.2% 20명), 방송 제작 현장 내 밀폐된 장소(8.5%, 17명)가 뒤를 이었다. 사적인 장소는 6.5%(13명)였다.

    (그래프=방송계갑질 119, 방송방송스태프노조준비위원회 제공)

     

    성폭력이 일어났을 때 어떻게 대처했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80.4%가 참고 넘어갔다(156명)고 답했다. 상급자나 동료와 면담(12.4%, 24명)하거나 성폭력 행위자에게 사과를 요구하는 등 개인적으로 처리(5.2%, 10명)하거나 사내 창구를 통해 문제를 제기(2%, 4명)한다는 응답은 비율이 매우 낮았다.

    참고 넘어간 이유(복수응답)는 고용형태 등 열악한 위치(57.7%, 90명), 문제제기해도 해결되지 않을 것 같다는 전망(55.8%, 87명), 소문과 평판 등에 대한 두려움(44.2%, 69명), 도움받을 곳 전무(34.6%, 54명), 대처방법 모름(30.1%, 47명), 큰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음(15.4%, 24명) 등이었다.

    성폭력 사건에 문제제기했다고 답한 응답자 중 사후 조치와 결과에 만족한다는 응답은 13.5%(5명)에 그쳤다. 사후 조치가 없는 경우(48.7%, 18명)가 가장 많았고, 사후 조치가 있었지만 결과에 불만족했다는 경우가 37.8%(14명)였다. 사후 조치에 불만족한 이유는 성폭력 행위자에게 적절한 징계가 이뤄지지 않아서(76.9%, 10명), 성폭력 행위자에게 적절한 사과를 받지 못해서(61.5%, 8명), 조사 과정에서 2차 피해가 발생해서(30.8%, 4명) 순이었다.

    직접 겪진 않더라도 전해 듣거나 목격한 성폭력 피해 사실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91.9%(205명)가 있다고 답했다. 피해 사례 1위는 외모에 대한 성적 비유나 평가(78.9%, 176명)였고, 음담패설 및 성적 농담(73.1%, 163명), 회식에서 술을 따르거나 옆에 앉도록 강요하는 행위(63.7%, 142명), 신체 접촉을 하거나 강요하는 행위(57%, 127명)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성폭력 피해를 전해 듣거나 목격한 후 가만히 있었다는 응답이 47.3%(95명)로 가장 높았고, 동료나 선후배·관리자에게 피해 사례를 알렸다는 응답이 39.3%(79명)로 두 번째로 높았다. 피해자를 대신해 성폭력 행위자에게 직접 사과를 요구한 경우, 회사에 문제제기, 성폭력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섰다는 응답은 각각 2.5%(5명)였다.

    ◇ 성폭력 발생 원인 핵심은 '권력 관계'와 '조직문화'

    방송 제작 현장 종사자들은 왜 성폭력이 일어난다고 생각(복수응답 가능)했을까. 가장 많은 응답이 나온 것은 '성폭력 행위자와의 권력 관계'(79.4%, 177명)였다. 성폭력을 가볍게 여기는 조직문화도 78.5%(175명)나 됐다. 고용상의 불안은 66.4%(148명), 방송계 인적 네트워크의 폐쇄성은 46.2%(103명), 성희롱 예방 교육이나 대응 매뉴얼 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라는 응답은 31.4%(70명)였다.

    실제로 응답자의 다수는 프리랜서로 고용형태가 불안한 전형적인 을의 위치였다. 사업자등록증이 없는 프리랜서가 응답자의 83.3%(185명)를 차지했다. 방송영상제작사(부문별 용역업체) 계약직이 5.9%(13명), 방송사 직접고용 계약직이 3.6%(8명), 사업자등록증이 있는 프리랜서 3.6%(8명)이었다. 방송영상제작사(부문별 용역업체) 정규직은 1.8%(4명), 방송사 파견계약직 0.9%(2명), 방송사 정규직(무기계약직 포함) 0.9%(2명)였다.

    방송계갑질 119와 방송스태프노조준비위원회가 18일 오전 11시, 서울 중구 민주노총 15층 교육원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018 방송제작현장 성폭력 실태조사'를 발표했다. (사진=방송계갑질 119 제공)

     

    80%에 가까운 응답자가 성폭력 예방 교육을 받지 못했다는 결과는, 방송가가 '성폭력 이슈'에 얼마나 무감한지를 보여주는 단면이었다. 성폭력 예방 교육을 실시하지 않았다는 응답이 79.9%(178명)였던 반면, 성폭력 예방 교육을 받았다는 응답은 5.8%(13명)였다. 성폭력 예방 교육이 있었지만 본인은 받지 않았다는 응답은 14.3%(32명)였다.

    성폭력 예방 교육은 외부 전문가 강의(58.3%, 7명) 형태로 가장 자주 이뤄졌고, 배부 자료나 온라인 자료를 보는 것이 25.1%(3명)였다. 성희롱 업무 담당자의 강의는 8.3%(1명), 관리자가 간단히 언급하는 수준은 8.3%(1명)였다.

    예방 교육 내용(복수응답 가능)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것은 성폭력의 개념 및 유형(83.3%, 10명)이었다. 성폭력 실태와 사례(66.7%, 8명), 성폭력 예방 요령(58.3%, 7명), 성폭력 사건 처리 절차 및 조치 기준(58.3%, 7명), 성폭력 관련 법령 및 정책(50%, 6명), 피해 노동자의 고충 상담 및 구제 절차(41.7%, 5명) 순이었다.

    방송 제작 현장 종사자들은 방송사가 성폭력 사건에 적절하게 대응하리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88.3%(197명)가 부정적으로 답했고, 11.7%(26명)만이 긍정적으로 답했다. 그 이유(복수응답 가능)로는 신분상 열악한 지위로 방송사의 공식적 사건 접수 대상에서 제외되거나 제외될 염려가 있기 때문(83.1%, 162명), 공정한 처리가 어렵기 때문(66.7%, 130명), 방송계에서 성폭력 사건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분위기 때문(57.9%, 113명), 이전에 발생했던 성폭력 사건이 제대로 처리되지 않았기 때문(42.1%, 82명)이었다.

    그래서 더 실효성 있는 사후 처리를 원했다. 성폭력 예방 혹은 적절한 사후 조치를 위해 필요한 방안(복수응답 가능)을 묻자 성폭력 행위자 징계 등 처벌 강화가 89.2%(198명)로 가장 높았다.

    성폭력 발생 시 사업주의 조치 의무에 관한 규정을 프리랜서와 외주제작 프로그램 종사자에게도 확대 적용해야 한다는 응답이 72.5%(161명), 방송사로부터 독립적인 '방송업계 성폭력 상담 및 신고센터' 구축이 52.3%(116명), 성폭력 등 각종 인권침해에 적극 대응하는 노동조합 출범이 49.5%(110명), 방송제작현장 성희롱 예방 교육 의무화가 31.1%(69명)였다.

    특히 응답자의 42.6%(95명)는 노동조합 가입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노동조합이 세워지면 그때 가서 생각해 보겠다는 응답이 26.5%(59명), 선후배나 동료들이 가입하면 동참하겠다는 응답이 20.8%(45명)였다. 잘 모르겠다는 7%(17명), 가입하지 않겠다는 3.1%(7명)였다.

    ◇ 방송가에 만연한 성폭력, 개선 방안은

    (사진=자료사진)

     

    방송계갑질 119와 방송스태프노조준비위원회는 성폭력을 예방하거나, 성폭력이 발생했을 때 실효성 있게 해결하기 위해서는 방송 제작 현장의 특성을 고려해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방송 노동자들이 주로 프로그램이라는 프로젝트 단위로 고용이 성립되고 업계 분위기가 폐쇄적인 점, 간접고용 및 특수고용 비정규직 형태 종사자가 많은 점, 외주제작의 비중이 높은 점 등을 두루 살펴야 한다는 의미다.

    이들이 제안한 방안은 △사용자단체(한국방송협회·한국케이블TV방송협회·한국방송영상제작사협회·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와 협력한 성희롱 예방 교육 실시 △마음 놓고 성폭력 피해를 신고하고 지원받을 수 있는 독립적인 신고센터 설치 △방송사 사규나 직종별 협회 정관에 성폭력 관련 지침 강화 △각종 행정권한과 연계해 성폭력 사건으로 분쟁 중인 방송사 및 외주제작사에 대한 재정 지원 배제 등 4가지다.

    방송계갑질 119 관계자는 18일 CBS노컷뉴스에 "미투 운동(#Me_Too, '나도 말한다'는 뜻으로 성폭력 피해자들이 자신의 경험을 밝히는 것)이 확산하면서 방송사에서 처벌 규정을 강화하고 비정규직에도 적용하는 방향으로 바꾸긴 했지만, 응답자들이 우려하는 '공정한 처리'에 대한 신뢰를 주기에는 미흡하다"고 말했다.

    이어, "방송 제작 스태프들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인물이나 단체가 참여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또한 "예를 들어 단역배우 자매 성폭력 사건의 경우 법조계는 처벌할 수 없다고 하지 않나. 하지만 방송사·제작사·정부는 충분히 그들의 권한으로 가해자들에게 사회적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점을 명심했으면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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