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의혹에 휩싸인 연출가 오태석(78) 씨가 두 달 넘게 아무런 입장도 밝히지 않은 채 자취를 감췄다. 이런 가운데, 그가 이끌고 있는 극단 목화는 국가의 지원을 받으며 해외 공연을 이어가고 있어 미투 고발자들을 또 아프게 만들고 있다.
극단 목화는 오는 26일과 29일 루마니아에서 두 차례 공연한다. 이후 5월 18일부터 20일까지는 대만에서 공연한다. 이 중 루마니아 공연은 문화체육관광부 소관기관인 (재)예술경영지원센터(예경)의 지원을 받는다.
예경 관계자는 지원 금액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항공료 전액과 화물운송료 일부라고 전했다.
극단 목화의 국가 지원 논란은 이번이 두 번째다. 지난 3월 초 페루 리마 축제에 참석하는 것과 관련, 극단 목화가 예경의 지원금을 받고 간다는 사실이 알려져 한 차례 논란이 일었다.
성폭력 의혹이 일자 잠적한 오 씨가 이끄는 극단에 대한 지원은 부적절하다는 세간의 지적이 잇따르자 예경은 오태석을 배제하는 조건으로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당장 예정된 공연 계약을 취소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로부터 두 달이 지난 지금 예경은 또 같은 결론을 내렸다. 지난번과 같이 오 씨를 지원하지 않는 조건으로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연출가 오태석 씨. (자료사진/노컷뉴스)
예경의 이같은 결론의 근간에는 오 씨를 극단 목화와 분리해서 보고 있는 인식이 깔려있다. 오 씨 개인의 성폭력 사건 때문에 극단 단원들의 공연까지 무산시켜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일리가 있는 주장이지만 극단 목화는 오 씨와 관련해 아무 입장도 밝히지 않고 있다. 피해자가 극단 목화 출신임에도 그들은 오 씨를 보호하기 위해 마치 다른 사람들의 일처럼 대했다.
극단 내 최고참급 배우는 "무슨 (극단) 입장이 있느냐,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다"며, 논란과 관련해서는 "무슨 얘기를 하냐, 우리는 공연 중이라 연극만 하면 된다"고 밝힌 바 있다.
심지어 극단 측에서는 이 일을 무마하려는 시도까지 했다. 극단에서 실무를 담당하는 한 단원은 지난 2월 오 씨에 대한 '미투' 글이 올라오자마자 오 씨를 만나 대책회의를 했다. 이후 미투 고발자 P씨에게 연락해 만나려고 시도했다.
극단이 지금까지 침묵하는 이유가, 어쩌면 그들 말대로 오 씨와 연락이 닿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런데 그게 사실이라면 더 큰 문제다. 오 씨는 두 달이 넘게 연락이 안 되는 것이기에 실종신고를 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나 다름없다. 극단은 공연을 이어갈 상황일 수가 없다.
하지만 아직까지 오 씨에 대한 실종신고가 없는 것으로 보아, 결국 극단이 그의 행방을 알고 있고, 이제는 잠적을 돕고 있는 공범자 역할을 하는 셈이다.
성폭력반대연극인행동은 20일 입장을 내고 "극단 목화의 루마니아 공연 소식을 들은 피해자들은 커다란 충격을 받고 있다"며 "지금이라도 오 씨와 극단 목화는 고발과 현재 상황에 대한 입장을 공개적으로 표명하라"고 촉구했다.
예경에 대해서는 "현재 많은 지원 단체들이 지원 사업에 있어 성폭력 가해자 지원 배제를 제도화 하고 있다. 오 씨와 극단 목화의 해외공연을 지원하는 예경은 현재의 흐름을 역행하는 것인지, 어떤 판단이 개입되었는지를 낱낱이 밝히고 공론화하라"고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