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7일 오전 판문점 평화의 집 2층 회담장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 (사진=한국공동사진기자단)
한때 외교무대에서 '은둔자'로 불리며 어두운 이미지를 대변했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7일 재치있는 농담과 웃음으로 '이미지 변신'에 정점을 찍는 모습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이날 줄곧 솔직하고 격의없는 행동과 발언으로 눈길을 끌었다.
첫 만남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김 위원장을 군사분계선에서 맞이하며 "나는 언제쯤 넘어갈 수 있겠습니까"라고 묻자 김 위원장은 "그럼 지금 넘어가 볼까요"라고 말하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조성했다.
시종일관 대화를 나누며 활짝 미소를 짓는 김 위원장의 모습이 생중계됐다.
전통의장대 사열을 받으며 문 대통령이 "청와대에 오시면 훨씬 좋은 장면을 보여드릴 수 있다"고 말하자, 김 위원장은 "초청해주시면 언제라도 청와대에 가겠다"며 '파격적인' 답을 했다.
그는 "북한의 미사일 도발로 새벽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 참석하느라 잠을 설쳤다고 들었는데, 새벽에 일어나는 것이 습관이 되셨겠다"면서 "새벽잠을 설치지 않도록 내가 확인하겠다"고 말하며 웃음을 유도하기도 했다.
자신을 낮추는 듯한 뜻밖의 모습도 보였다. 김 위원장은 "문 대통령이 오시면 솔직히 걱정스러운 것이 우리 교통이 불비해 불편을 드릴 것 같다"며 평창동계올림픽에서 북측 고위급 대표단이 이용했던 KTX열차를 칭찬하기도 했다.
부인 리설주 여사도 판문점으로 오기로 결정되면서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만찬이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7일 판문점 남측 평화의 집 북한산 그림 앞에서기념 촬영을 하고있다.(사진=한국공동사진기자단)
올해 초 신년사 직전까지만 해도 김정은 위원장은 '대립과 전쟁'의 대명사였다.
지난해 11월 29일 김 위원장이 ICBM급 화성-15형 미사일을 시험발사하고 핵무력 완성을 선언하는 등 분위기는 '악화일로'를 걸었다. 미국 내에서는 북한 선제타격론까지 공공연하게 돌며 한반도 긴장은 한껏 고조됐다.
하지만 이날 김 위원장의 언행은 과연 같은 사람이라고 볼 수 있을지 의심될 정도로 변신한 모습이었다. 몇달 새 '급 반전'이 일어난 것이다.
북한의 평창동계올림픽 참가와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나타낸 신년사 이후 김 위원장은 계속해서 이미지 변신을 꾀해왔다. 김 위원장은 동시에 가려진 베일을 벗어던지고 국제 외교 무대에 등장해 순식간에 이목을 끌었다.
중국을 전격 방문해 북중정상회담을 갖는가하면, 부인 리설주를 '동지'에서 '여사'로 호칭하면서 정상국가로서의 위용을 과시하기도 했다. 그간 김일성, 김정일 시대에 북한에서는 '퍼스트레이디'의 존재는 주목받지 못했을 뿐 아니라 개념도 명확하지 않았다.
김 위원장은 3월 방북한 특사단에 "미국에 대화 상대로서 진지한 대우를 받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전세계의 이목이 쏠린 이날 정상회담에서도 기존의 폐쇄적 이미지를 벗고 세계에 정상국가의 지도자로서의 이미지를 부각하기 위한 시도를 이어간 것으로 읽힌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이같은 이미지 변신의 배경에 대해 "집권 이후 김정은 위원장의 행보의 특징은 굉장히 실용주의적이고 과감하다는 것"이라면서 "의지와 자신감의 표현, 솔직함과 대담함을 보이기 위한 행동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내용적으로는 이 국면의 성과를 극대화하고 국면을 주도하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표출하는 모습"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