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그룹 일가의 갑질 의혹이 내부 고발로 더욱 민낯을 드러내는 모습이지만, 중소기업의 직원들은 이런 '을들의 반란'이 그저 부럽다고 말하고 있다. [편집자 주]
부서 이동에 퇴사까지 '제멋대로'인 인사 전횡은 중소기업 노동자들이 꼽는 대표적 직장 갑질이다. 형식적인 고충 처리 창구조차 없는 일터에서 발만 동동 굴릴 수밖에 없다.
(사진=스마트이미지 제공/자료사진)
◇"앞에 나와 당신 문제를 얘기해보라"며 동료 투표로 징계직원이 약 50명인 생활용품 제조사를 다니던 이모(50)씨는 지난해 2월 회사에서 이른바 '인민재판'을 받았다고 한다.
이씨에 따르면, 오전 회의에서 크게 꾸지람을 한 사장은 이후 전 직원들을 한곳에 모이도록 하고선 이씨를 포함한 직원 5명에게 한명씩 나와 자신의 문제점을 말하게 했다고 한다.
곧이어 직원들에게 나눠진 것은 이씨 등 5명에 대한 '징계 투표지'.
직원들은 '권고사직' '생산직 발령 및 생산직 급여로 감봉' '6개월 10% 감봉'과 '무죄-대표이사 포함 전 직원 10% 감봉'의 항목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고 이씨는 설명했다.
결국 '6개월 감봉' 항목에 가장 많은 표를 받은 이씨는 며칠 후 아예 부장에서 차장으로, 해외 영업 부서에서 생산 부서로 자리를 옮겼다. 연봉 약 25%가 깎였다.
이씨는 몇 달 뒤 회사를 관뒀다. 그는 "그때 막 고3이 됐던 자식을 생각하며 참으려 했지만, 모욕감과 수치심을 견디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회사 측은 이에 대해 전체 직원회의였다고 설명했다. 회사 측은 "구조조정은 오히려 직원들의 요구에 따른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이씨를 비롯한 경력직들이 엉터리로 일을 해서 그랬던 것일 뿐, 우리 회사는 원래 점잖은 곳"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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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에 불만 제기하자 "퇴사하든가"한 중소 화장품 관련 업체에 다니던 김모(38·여)씨는 최근 중국 공장 출장길에 올랐다가 "숙소에 그대로 머물 건지, 회사를 나갈 건지 선택하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제대로 된 난방은커녕 비위생적인 데다, 남자 직원들이 옆방에 머물고 있지만 창문조차 잘 닫히지 않은 숙소에 놀라 회사에 전화를 했다가 겪은 일이다.
회사에 귀국 의사를 알린 김씨는 하루가 넘게 회사와 연락이 닿지 못했는데, 회사는 이를 무단결근으로 간주해 퇴사 처리를 진행했다고 김씨는 주장했다.
김씨는 "무단결근이란 판단을 내리면서 당사자에게 사실 확인은 전혀 하지 않았다"며 "치안이 열악한 숙소에 머물지 않겠다고 해고하는 것 자체도 정당하지 않다"고 말했다.
또 억울함과 불안감에 시달렸던 당시를 언급하며 "아무 연락도 안 되는 상황에서 회사 이메일 계정까지 정지돼 인간적인 배신감까지 느꼈다"고 했다.
회사 측은 "김씨가 단독으로 출근하지 않았고 당시 퇴사 처리가 된 것도 아니었다"고 설명했지만, 현재 김씨는 '권고사직으로 인한 퇴사'를 통보받았으며 고용보험도 해지된 상태라고 반박했다.
이런 중소기업 직장인들은 인사 문제에 있어 자신들은 속수무책이라는 현실을 토로했다.
무료법률상담소나 시민단체 등의 도움을 구하고 있지만, 회사 안에 하소연 할 곳도, 고충처리를 해줄 마땅한 창구도 없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