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린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 결과 종합발표 기자회견 참석자들이 인새물을 보고 있다. 진상조사위는 블랙리스트 DB분석 결과 단체 342개, 개인 8931명 등 총 9273개(중복 제외) 명단이 피해를 입은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사진=황진환 기자)
지난 10개월간 민관이 힘을 모아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의 피해를 광범위하게 조사한 최종 결과가 발표됐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기간 동안에 블랙리스트에 등재돼 사찰, 검열, 지원 배제 등의 피해를 입은 개인이나 단체가 총 9273명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 개인 8931명, 단체 342개 실제로 피해 입어, 영화가 가장 많아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민관합동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는 8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10개월간의 활동을 마무리하는 종합 발표 기자회견을 열었다.
진상조사위는 블랙리스트의 데이터베이스(DB)를 분석한 결과 피해를 본 문화예술인이 8천931명, 단체는 342개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이는 중복된 것을 제외한 실제 피해 수치이다.
시국선언 명단을 포함한 블랙리스트 관리 명단 규모는 2만1362명에 달했고, 이 중에서 절반 가량인 9273명이 피해를 입었다는 것이 조사위의 설명이다.
장르별로는 영화가 2468명으로 피해자가 가장 많고, 문학 1707명, 공연 1593명, 시각예술 824명, 전통예술 762명, 음악 574명, 방송 313명 순으로 집계됐다.
그간 진상조사위가 수행한 블랙리스트 관련 조사는 총 144건에 달한다. 175건의 조사 신청을 받았으며 이 가운데 112건을 직접 조사하고, 32건은 직권조사를 실시했다. 광범위한 조사와 각종 제보를 바탕으로 실제 블랙리스트가 문체부와 산하기관에 배포돼 작동됐다는 점 등을 밝혀내기도 했다.
진상조사위는 이명박 정부 첫해이자 광우병 촛불집회 직후인 2008년 8월 작성된 '문화권력균형화전략'을 블랙리스트 사태의 출발점으로 분석했다.
이명박 정부 때는 예술단체나 유명 대중예술인을 사찰·검열하고 지원에서 배제하는 방식으로 블랙리스트가 작동했다면 박근혜 정부 때에는 청와대와 국정원, 문체가 긴밀한 협조 체계를 구축해 블랙리스트를 공고히 해나갔다.
진상조사위는 공연예술, 문학출판, 영화, 시각예술, 해외, 기타 등으로 나눠 블랙리스트의 구체적인 피해 사실을 정리했다.
◇ 공무원 징계나 형사처벌 발표는 미뤄져 왜?, '국가예술위' 설치 등 권고관심을 모았던 문체부 공무원 등 관련자들의 징계나 형사처벌 여부는 이날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진상조사위는 내부 논의를 거친 뒤에 관련자들의 징계와 수사의뢰안을 담은 권고안을 5월 중순쯤 발표하고 문체부에 제출할 계획이다.
기본적으로 블랙리스트 실행에 적극 관여한 공무원과 공공기관 임직원에 대해서는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징계와 수사 의뢰를 권고하기로 했지만, 징계 수위는 정하지 않기로 했다.
문체부는 진상조사위 권고를 받더라도 자체 감사를 실시해 징계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보여 실제 담당자들의 징계가 이러지기 까지는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이날 종합 기자회견으로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의 10개월 활동은 사실상 마무리됐다.
진상조사위와 함께 출범함 제도개선위원회도 블랙리스트 재발을 막기 위한 제도개선 최종안을 발표했다.
우선, 헌법 개정을 통해 표현의 자유 및 문화기본권을 확대하고 '문화기본법'을 개정해서 표현의 자유 침해 범죄에 대한 처벌 근거를 마련하는 등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권고했다.
정부와 찬반 입장이 갈려 논쟁을 예고한 '국가예술위원회'(가칭)도 설치해야한다는 의견을 고수했다.
이원재 대변인은 "국가인권위원회나 방송통신위원회 급의 독립기구로 국가예술위원회가 설치돼 예술행정을 분리하고 산하의 문화 관련 단체를 통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밖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영화진흥위원회, 한국예술인복지재단, 한국콘텐츠진흥원,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등 6개 주요 문화예술지원기관에 대한 제도개선 방안도 담겼다.
무엇보다 정부의 책임있는 사과와 함께 책임자 및 가해자 처벌과 재발방지를 위한 교육 이수, 피해자 명예회복과 피해보상이 우선돼야 하며 이를 위해 가칭 '문화예술인 표현의 자유 및 권리 보장 위원회' 같은 후속 기구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조사위는 권고했다.
두 차례 활동 기간을 연장해 총 10개월간 광범위한 조사를 벌인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원회는 7월 중으로 백서를 출간해 이를 기록으로 남기고 최종 권고안을 대통령에게 보고하며 활동을 마무리 지을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