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년 간 공임 동결...2000원 인상 요구
- 한켤레 공임 6500~7000원, 30만원 판매
- 농성 참여자 대부분 5,60대 '구두 장인'
- "보이지 않던 아빠의 무게..이제 알아"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 방 송 : FM 98.1 (18:30~19:55)
■ 방송일: 2018년 5월 8일 (화) 오후
■ 진 행 : 정관용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 출 연 : 탠디 제화 노동자 딸(익명)
(사진=가족 측 제공)
◇ 정관용> 우리나라 수제화 업계 1위 구두 탠디 아시죠? 한 켤레 당 30만 원 넘는 고가 제품입니다. 그런데 이 구두를 만드는 경력 20년, 30년된 구두장인들은 한 켤레에 6500원에서 7000원 돈을 받아왔답니다. 이 마저도 지난 8년 동안 동결 상태였고요. 그래서 공임 인상을 요구하면서 지금 농성을 벌이고 있답니다. 어버이날에 자녀들도 만나지 못하고 농성을 이어가고 있는 상태죠. 이 농성에 참여 중인 탠디 제화 노동자의 따님 한 분을 좀 연결하겠습니다. 익명으로 연결합니다. 안녕하세요?
◆ 탠디 제화 노동자 딸> 안녕하세요?
◇ 정관용> 농성 현장 다녀오셨죠?
◆ 탠디 제화 노동자 딸> 네.
◇ 정관용> 아버님을 만나지도 못하셨다고요, 그런데?
◆ 탠디 제화 노동자 딸> 만나지 못했습니다.
◇ 정관용> 그 지금 기사를 보니까 ‘셀프 감금을 자처한 노동자들’ 이렇게 나오던데 농성장 상황이 어떻길래 이런 단어가 나오는 겁니까?
◆ 탠디 제화 노동자 딸> 아버지들께서 공임 2000원을 올려달라고 회사 측에 요구를 했는데 아무런 응답이 없었고 그래서 이제 파업을 하시다가 이제 농성을 하게 되셨고요. 그런데 회사 측에서는 용역 직원들을 고용해서 입구를 막고서 이제 아버지들의 출입을 막고 음식 이런 것도 반입이 정해진 시간에만 들어갈 수 있도록 하고 있어서 지금 셀프 감금이라는 단어가 나온 것 같습니다.
◇ 정관용> 건물을 봉쇄했으니까 농성하던 분이 일단 밖으로 한번 나오면 다시 못 들어간다는 거죠?
◆ 탠디 제화 노동자 딸> 네, 맞아요. 그럼 농성을 포기한 걸로 회사 측에서 본다고.
◇ 정관용> 지금 그래서 농성이 며칠째 계속되고 있는 겁니까?
◆ 탠디 제화 노동자 딸> 파업은 한 달이 넘었고 농성은 오늘로 12일차입니다.
◇ 정관용> 모두 몇 분이 그 안에 계세요?
◆ 탠디 제화 노동자 딸> 제가 알기로는 한 50분 정도?
◇ 정관용> 아버님께서는 구두 짓는 일을 몇 년간 해 오셨습니까?
◆ 탠디 제화 노동자 딸> 30년 이상 해 왔습니다.
◇ 정관용> 그런데 구두 한 켤레를 만드는 데 아버님께서 받는 돈이 6500원에서 7000원이라고요? 맞습니까?
◆ 탠디 제화 노동자 딸> 맞습니다. 그게 두 단계로 나눠지는데요. 아버지께서는 밑바닥을 작업하시는 일을 하시는데 그 작업은 7000원의 공임을 받고 있습니다.
◇ 정관용> 밑바닥과 위는 따로따로 있군요.
◆ 탠디 제화 노동자 딸> 아버지께서 하시는 건 7000원이고 저도 자세히는 모르겠으나 다른 밑바닥이 아닌 부위는 6500원을 받는다고 하더라고요.
◇ 정관용> 그러면 그러니까 이 탠디 회사에 직접 고용돼서 한 달씩 월급을 받는 그런 노동자가 아니신 거예요?
◆ 탠디 제화 노동자 딸> 월급은 아니고 도급이죠. 아버지께서 일하신 만큼만 이제 벌어가시는 겁니다.
◇ 정관용> 그럼 이게 하루에 몇 개나 만드실 수 있답니까?
◆ 탠디 제화 노동자 딸> 하루에 17~18켤레 정도 만드시는데 성수기 때는 22~25켤레 정도 만드는 걸로 알고 있는데 이렇게 성수기 때는 새벽 5시에 일어나셔서 늦게는 12시, 정말 늦을 때는 2시까지 일하고 집에 오십니다.
◇ 정관용> 그러면 쉬는 날도 없이 계속 일하시는 거예요, 아니면 며칠씩 근무하십니까?
◆ 탠디 제화 노동자 딸> 원래 토요일까지 일을 하셨는데 주5일제가 정착되면서 주5일제를 하시고 회사 바쁠 때는 토요일도 나가시고.
◇ 정관용> 그럼 한 달 월급으로 따지면 어느 정도나 되시는 거예요, 그러니까.
◆ 탠디 제화 노동자 딸> 성수기 때는 300만 원 후반대 정도. 이건 아버지께서 새벽에 나가서 정말 하루 종일 일하셔서 이 정도고 그리고 비수기 때는 정말 무급휴가예요. 정말 돈이 100만 원대에서 200만 원대 초 이렇게 받으십니다.
◇ 정관용> 그래요. 그나마 이게 8년 동안이나 이 액수가 그대로 고정돼 있었다면서요.
◆ 탠디 제화 노동자 딸> 오히려 더 내려가고 까다로운 작업에 붙는 특수공임비라는 게 있었는데 이건 아예 없애버렸다고 하더라고요.
◇ 정관용> 그런데 이렇게 밑바닥하고 위 합해봐야 1만 몇 천원 공임을 준 건데 시판되는 건 30만 원이 넘게 팔리더라고요.
◆ 탠디 제화 노동자 딸> 맞습니다.
◇ 정관용> 그거 이렇게 밑바닥하고 윗부분 작업하면 완성품이 나오는 거죠?
◆ 탠디 제화 노동자 딸> 그 외에 디자이너 월급도 있고. 신발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두 가지 부분이 아닐까.
◇ 정관용> 그래서 이 한 켤레랑 2000원을 올려달라, 이걸 요구하신 건데.
◆ 탠디 제화 노동자 딸> 맞습니다.
◇ 정관용> 회사 측에서는 뭐라고 한답니까?
◆ 탠디 제화 노동자 딸> 5번 정도 대화를 하자고 아버지들께서 공문을 보냈다고 하시는데 처음에는 묵묵부답으로 나오다가 저번 주에 1차 협상을 했는데 500원을 올려주겠다고 했대요.
◇ 정관용> 500원?
◆ 탠디 제화 노동자 딸> 그래서 받아들일 수 없어서 더 농성을 하고 계세요.
◇ 정관용> 그나마 정해진 시간에 식사 같은 거는 들여보내준다 이 겁니까?
◆ 탠디 제화 노동자 딸> 김밥이랑 컵라면 정도, 삶은 계란 이렇게 드시고 계세요.
◇ 정관용> 30년 이상 구두 짓는 일을 해 오셨으면 아버님 연세가 지금 어떻게 되세요?
◆ 탠디 제화 노동자 딸> 아버지가 지금 육십 가까이 되셨죠.
◇ 정관용> 거기 한 오십여 분 계시다고 했는데 대체로 경력이 오래되신 분들입니까?
◆ 탠디 제화 노동자 딸> 네. 이게 단기간에 배울 수 있는 게 아니고 아버지께서 굉장히 어렸을 때 배우셨다고 하시더라고요.
◇ 정관용> 그야말로 장인분들이신데. 아이고. 따님도 얼마나 마음이 아프시겠어요, 지금.
◆ 탠디 제화 노동자 딸> 너무 속상해요. 밥도 못 먹겠어요, 너무 죄송해서.
◇ 정관용> 오늘 어버이날인데 혹시 아버지랑 통화라도 해 보셨나요?
◆ 탠디 제화 노동자 딸> 연락은 계속하고 있습니다.
◇ 정관용> 뭐라고 하시던가요. 오늘 통화하니까.
◆ 탠디 제화 노동자 딸> 그냥 걱정하지 말고 할 일 하고 있으라고 말씀하시는데 걱정이 안 되지 않죠. 계속 생각나고 자꾸 찾아보게 되고.
◇ 정관용> 오늘 저희 방송을 빌어서 아버지께 전하고 싶은 말씀 있으면 한 말씀 하시겠어요?
◆ 탠디 제화 노동자 딸> 네... 아빠, 어렸을 때는 몰랐는데 대학을 가고 사회를 조금씩 알게 되면서 아빠의 어깨에 놓여진 그 보이지 않는 무거운 무게를 알았고 감사하다는 말로는 한없이 부족하지만 항상 감사하고 오빠와 나의 우산이 되어줘서 너무너무 고마웠고 너무도 처절했던 아빠의 보호 속에서 우리 남매 잘 자랐고 앞으로는 내가 아빠의 우산이 되어줄게. 건강하고 행복하게 오래오래 함께하자.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웃음) 부끄럽네요.
◇ 정관용> 그 말씀을 직접 손잡고 이렇게 따뜻한 음식 같이 하면서 나눌 수 있어야 되는데 참 안타까운 현실이에요.
◆ 탠디 제화 노동자 딸> 오늘은 꼭 돌아오셨으면 좋겠어요.
◇ 정관용> 함께 바라겠습니다. 오늘 고맙습니다.
◆ 탠디 제화 노동자 딸> 감사합니다.
◇ 정관용> 고맙습니다. 탠디 제화 노동자의 따님 한 분의 목소리 들어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