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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란 "지금, 누가, 어디서 소외되고 있는지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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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일란 "지금, 누가, 어디서 소외되고 있는지를 본다"

    [여성 감독 연속강좌 ⑥] '마마상', '공동정범' 김일란 감독

    한국영화가 '남초화'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당장 지난해와 올해 개봉한 상업영화 포스터만 봐도, 여성이 전면에 드러나는 작품은 손에 꼽을 정도다. 감독도 마찬가지다. 한 해에 200편 안팎으로 제작되는 한국영화 개봉작 중 여성 감독의 작품은 10%도 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도, 여성 감독들은 자신만의 개성이 담긴 작품을 만들며 관객에게 '다른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트랜스:아시아영상문화연구소는 현재 한국영화 안에서 여성 감독의 위치를 묻고, 각 감독의 작가성을 탐구하는 '여성 영화감독 초청 연속강좌'를 3월부터 6월까지 진행한다. 이 중 기사화에 동의한 감독들의 강의를 옮긴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변영주 "계속 욕망하는 사람이 결국 영화를 만든다"
    ② 이경미 "제가 보고 싶고, 되고 싶고, 꿈꾸는 여성을 그린다"
    ③ 임순례 "여성이기에 영화 만들기 어려운 환경 벗어나길"
    ④ 신수원 "영화로 거짓말을 할 순 없지 않나"
    ⑤ 경순 "세상엔 완벽하게 옳은 것도, 그른 것도 없다"
    ⑥ 김일란 "지금, 누가, 어디서 소외되고 있는지를 본다"

    김일란 감독은 대표적인 여성 다큐멘터리 감독 중 한 명이다. 7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두 개의 문'으로 이름을 널리 알렸고, 올해 개봉한 '공동정범'도 관객의 기대와 예상을 벗어난 피해자를 조명함으로써 수작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김 감독은 다큐에 대한 태도가 처음부터 진지했던 건 아니었다고 털어놨다. 글쓰기를 통한 여성주의 문화 운동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샘솟았던 30대 초, 혼자 하는 것보단 같이 하는 게 좋겠다 싶어 '연분홍치마'를 만들면서 다큐와의 인연이 시작됐다.

    연분홍치마는 지난 2004년 '성적소수문화환경을 위한 모임'으로 발족한 인권단체이자 창작집단이다. '3xFTM', '레즈비언 정치 도전기', '종로의 기적' 등 커밍아웃 시리즈와 용산참사를 소재로 한 '두 개의 문', '공동정범', 노동자들의 삶을 담은 '안녕 히어로', '플레이 온' 등 필모그래피만으로도 연분홍치마의 시선이 어디를 향해 왔는지 가늠할 수 있다.

    지난 2005년 '마마상'이라는 다큐멘터리로 데뷔한 김일란 감독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15일 오후, 서울 성북구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222호에서 '여성 영화감독 초청 연속강좌-김일란 감독: 소수자의 다큐멘터리'가 열렸다. 김 감독은 다큐 안에 한 사람, 혹은 여러 사람이 담기는 것은 소중한 기록이지만 동시에 매우 무겁고 어려운 작업이라는 것을 점점 깨달아가고 있다고 밝혔다.

    우연히 접하게 된 '실태조사' 경험은 김 감독이 다큐와 연결되는 계기가 됐다. 기지촌 성매매 여성 자녀들의 인권문제를 알아보면서 '마마상'을, 성전환자 인권 실태조사를 하면서 '3xFTM'을 구상했다.

    다큐 제작 경험이 없어 자주 '멘붕'에 빠졌다는 김 감독은 '마마상'을 찍으면서 아쉬움이 무척 컸다고 고백했다. "'내가 다큐를 너무 만만히 봤구나' 하면서 진지하지 못했던 시작을 반성하기도 했고, 인물 다큐를 할 준비가 안 됐는데 인물에게 접근해서 미안했다"는 것이다.

    "다큐 감독은 의사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의사가 생물학적 생명을 좌지우지한다면 다큐 감독은 한 사람의 사회적 이미지를 만드니까요. 누군가의 사회적 생명을 만드니까 어떤 윤리가 필요한 위치일 수 있겠구나 싶었어요. 기술적인 부분도 잘 연마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내 생각이 아무리 좋다 해도 이것이 표현되지 않는다면, 완성도 있는 미학이 되지 않는다면, 자기 삶을 제게 내어 준 주인공들에게 예의가 아닐 테니까 반성하게 됐죠."

    지정 성별 여성에서 남성(Female To Male)으로 성전환한 세 사람의 이야기를 담은 '3xFTM'부터 다큐를 보다 신중하게 접근하게 됐다는 김 감독은,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 이 작품을 만들게 됐다고 설명했다.

    김 감독은 "주류적인 시선에서 계속 문제라고 이야기하는 것들을 당사자들이 재규정할 때 사회 변화는 시작되는 말처럼, FTM 스스로는 자기와 여성성의 관계를 어떻게 규정하고 있을지 궁금했다"며 "이슈를 넘어 삶으로 드러나길 바랐다"고 밝혔다.

    이어, "'마마상'을 할 때는 어떻게든 끝나기만 하면 잘한 것으로 생각했다면, ('3xFTM'은) 커밍아웃 다큐였다. 내가 당신과 이런 관계를 맺고 싶어서 내 정체성을 얘기한다는 이야기를 관객이 어떻게 들을까 고민을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관객과 어떻게 소통할지, 다큐 표현 전략을 본격적으로 고민했다"고 말했다.

    김일란 감독은 '3xFTM', '두 개의 문'(홍지유 감독과 공동 연출), '공동정범'(이혁상 감독과 공동 연출) 등의 작품을 만들었다. (사진=각 배급사 제공)

     

    여성주의적 시각을 바탕으로 탄생한 작품을 발표한 그에게 '페미니즘'은 어떤 의미일까. 김 감독은 "페미니스트에게는 마침표가 있는 게 아닌 것 같다. 계속 과정 중에 있는 것 같다"고 답했다. 그는 이론을 겸비한 선배 페미니스트로부터 '세례를 받는 듯' 영향을 받았고, 자연스레 그 말과 글이 자신에게 스며들었다고 부연했다.

    "영화이론을 할 때도 많은 여성학자들의 생각이 녹아있는 것을 보면서 생각하는 방식을 훈련했어요. 세계를 어떻게 볼 것인가. 가만히 들여다보면 어떤 공간에서 누군가 어떤 방식으로 배제되고 있어요. 그 소외에 예민해지고, (이를 일으키는) 그 힘은 무엇인가를 봐요. 배제의 메커니즘을 파악하는 방식이 인권활동가로나 감독으로나 페미니즘 안에서 훈련돼 왔던 것 같아요."

    김 감독은 집회 현장에서 자신을 막는 여경의 뺨을 때린 용산참사 유가족 여성의 이야기를 예로 들었다. 정부의 재개발 방침에 반발하고 망루에 올랐던 이들이 모두 남성이었기에 유가족으로 남겨진 사람은 여성이 더 많았다.

    부당하게 남편을 잃은 유가족의 분노가 이해되면서도, 당혹스러운 얼굴로 돌아서는 여경을 보며 짠했다는 그는 "유가족 여성과 여경의 다툼을 우리는 어떻게 봐야 할까. 말도 없이 망루 투쟁을 하러 간 남편도, (과잉진압으로 비판받았던) 경찰 지휘부도 다 사라지고 유가족 여성과 여경만이 남은 현장이 너무 답답하게 느껴졌다. 투쟁 현장을 좀 다른 시선으로 보고 싶었다"고 전했다.

    이 같은 기조는 다른 영화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용산참사 때 망루 투쟁에 참여했던 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공동정범'이 기존의 다큐와 다르게 피해자를 다룬 데에는 연분홍치마의, 또 김 감독의 평소의 노력 덕분이었다. 그는 '한남(한국남성) 5명이 나오는데도 불편하지 않은 영화'라는 감상평을 들었을 때 기분이 좋았다고 밝혔다. 페미니스트로서의 입장을 유보해야만 이 영화를 볼 수 있을까 봐 걱정했는데 그러지 않아도 돼서 다행이었다는 감상에 감사했다고.

    15일 오후, 서울 성북구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222호에서 '여성 영화감독 초청 연속강좌-김일란 감독: 소수자의 다큐멘터리'가 열렸다. (사진=김수정 기자)

     

    한편, 김 감독의 두 번째 작품인 '3xFTM'은 오는 31일부터 8일간 열리는 제20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상영된다. 개봉된 지 10년 만이다. 김 감독은 영화의 주인공 중 한 명이 '영화가 나를 딱 묶어놔서 이 상태로 있어야 하는 게 두렵다'고 한 말을 언급하며 "다큐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라 인상적이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그러면서 "다큐 만드는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자각하게 되는 말이다. 소중하기도 하지만, 어떻게든 남게 되는 거니까 되게 두려운 일일 수도 있는 것"이라며 "다큐 작업이 생각보다 많은 시험에 들게 하는 작업 같다. 굉장히 무겁고 어려운 작업이라는 것을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많이 느낀다"고 덧붙였다.

    또한 최근 페미니즘 일부 진영에서 트랜스젠더를 배제하고 혐오하는 흐름에 대해서는 "10년 전에는 '연대해야 하니까 알고 싶다'는 분위기가 있어서 (트랜스젠더) 존재를 부정하거나 혐오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지금은 연대보다 자신이 갖고 있는 불편함이 더 중요해진 것 같다"면서 "(이번에 상영하면) 굉장히 논쟁이 있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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