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가 반항할 수 없을 정도로 억압된 상태에서 이뤄진 강제추행이 아니라도 범죄가 성립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박상옥 대법관)는 강제추행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배모(40)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부산지법 형사항소부로 돌려보냈다고 27일 밝혔다.
재판부는 "배씨가 전 여자친구를 끌어안고 들어 올렸다가 내려놓은 행위나 엘리베이터 앞에서 끌어안고 얼굴에 키스한 행위는 객관적으로 일반인에게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고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는 행위"라며 "피해자의 성적 자유를 침해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원심은 배씨의 폭행이나 협박, 갑작스러운 행위로 피해자가 반항하기 곤란한 상태에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며 "이런 원심 판단은 강제추행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고 지적했다.
배씨는 2016년 8월 새벽 헤어진 지 2주된 여자친구 A씨 집 앞에서 그를 들어올려 5초간 껴안고 귀가하려는 A씨 얼굴에 키스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배씨는 수년간 알고 지내던 A씨와 같은 해 7월 교제를 시작했지만, 한 달 만에 이별을 통보받았다.
이별 이유를 모르던 배씨는 친구들 주선으로 A씨와 술을 마신 뒤 집에 데려다주면서 이야기하자고 했지만, A씨가 뿌리치자 두 팔로 안아 들어 올리고, 집으로 들어가려는 A씨 얼굴에 키스한 것으로 조사됐다.
조사 과정에서 배씨에게 이별을 통보한 A씨는 당시 호감을 느끼며 B씨를 만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고, 배씨는 새 연인이 생긴 줄 모른 상태였다.
1심은 배씨가 안으려고 다가오는 모습을 보고서도 A씨가 특별한 저항 없이 배씨 어깨에 손을 올리고 달래는 듯한 행동을 한 점, 배씨가 더 강하게 끌어안고 얼굴을 밀착하는데도 배씨의 등과 어깨에 손을 올리고 얼굴을 돌리지도 않은 채 있었던 점 등을 고려해 무죄로 판단했다.
또 배씨가 A씨와 헤어진 직후 B씨와 벌어진 폭행 사건에도 주목했다.
배씨는 A씨를 찾아 나선 B씨와 시비 끝에 폭행을 당해 코뼈가 부러지는 상처를 입었다.
사건 직후 이를 알게 된 A씨는 배씨에게 B씨와 합의할 것을 설득하면서 배씨의 감정을 달래려고 했지만, 추행에 대한 항의는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합의는 이뤄지지 않았고 4일 뒤 A씨는 배씨를 강제추행 혐의로 고소했다.
1심은 "배씨와 A씨와의 관계, 배씨의 강제추행 행위, A씨의 반응과 고소에 이르게 된 경위 등을 고려하면 배씨의 행위가 A씨에게 일반적인 불쾌감을 넘어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게 한 추행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2심도 1심과 같은 결론을 내리며 무죄를 선고했지만, 대법원은 "강제추행에 관한 법리를 오해했다"며 다시 심리하라고 판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