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자료사진)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이 양승태대법원 시절 법원행정처의 사법행정권 남용을 확인하고도 관련자 처벌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자 현직 판사가 직접 고발 의사를 밝히는 등 법원 내부가 들끓고 있다. 애초 조사 과정 자체가 부실했기 때문에 이른바 '면죄부' 결론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차성안 사법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2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특조단이 형사 고발 의견을 못 내겠고 대법원장도 그리하신다면, 내가 국민과 함께 고발을 하겠다"라며 형사고발은 물론 국가를 상대로 배상청구를 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앞서 조사단이 전날 사법행정에 비판적인 법관들에 대한 성향이나 동향을 파악한 문서를 발견했지만, 인사 불이익을 줬다고 인정할 자료는 없으므로 '사법부 블랙리스트 문건은 없었다'고 결론 내린데 대한 반발이다.
차 연구위원은 "형사소송법상 공무원이 직무상 범죄를 발견하면 고발할 의무가 있다"며 "행정부에서 이런 식의 체계적이고 광범위한 조직적 사찰행위가 일어나, 직권남용, 공용서류무효, 직무유기, 증거인멸 등의 죄로 기소되었을 때 모두 무죄를 선고할 자신이 있으십니까?"라고 물었다.
실제로 형사소송법 제234조 제2항은 '공무원은 그 직무를 행함에 있어 범죄가 있다고 사료하는 때에는 고발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특조단은 전날 조사 결과를 보고하면서 "전문분야 연구회 중복가입 해소조치와 관련한 직권남용죄 해당 여부는 논란이 있고, 인터넷 익명게시판 게시글과 관련한 업무 방해죄는 성립하기 어려운 것으로 보이며, 그 밖의 사항은 뚜렷한 범죄혐의가 인정되지 않는 것으로 판단"된다며 관련자들에 대한 형사상 조치를 포기했다.
이는 법관들의 성향과 동향 등을 파악한 행위가 "헌법이 공정한 재판의 실현을 위해 선언한 재판의 독립, 법관의 독립이라는 가치를 훼손하려는 것으로서 크게 비난받을 행위"이고 "판결을 거래나 흥정의 수단으로 삼았다"는 조사단 자체의 결론과도 앞뒤가 안 맞는 것이다.
차 판사는 또 "법원을 상대로 국가배상 청구로 정식으로 대응해 드리겠다"며 국가를 상대로 배상을 청구할 계획을 밝히고 "이런 조직에 무슨 사법개혁을 기대할 것도 없다. 후대를 기약하며 역사에 기록이나 남기고 갑시다"라며 동료 판사들의 참여도 촉구했다. 벌써 류영재 춘천지법 판사 등 동료들이 함께 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나섬에 따라 조사단의 조사 결과에 대한 법원 내부의 반발은 곧 가시화될 것으로 보인다.
류 판사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법관들의) 인사 정보를 함부로 쓰는 데다가 도대체 연구회 대응 방안 문건을 인사실에 작성하는지도 모르겠다"고 썼다. 인사실에서 법관 동향 문건을 만들었음에도,'실제 인사상 불이익은 없었다'며 소극적으로 사태를 마무리하려는 조사단 방침을 꼬집은 것이다.
법원의 일선 직원들도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중앙지법에 근무하는 한 행정직 직원은 "불이익을 주기 전에 걸려서 실행하지 못한 것 뿐이지 실제 블랙리스트를 작성한 것은 맞고, 결국 판결을 통해 청와대와 딜을 하려던 것이 확인됐다"고 말했다.
의혹 대부분을 사실로 확인해 놓고도 내부 징계 차원으로 마무리하겠다는 조사단의 방침은, 조사 자체가 부실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가능하다. 특조단은 49명의 전현직 판사를 만나거나 서면으로 조사하면서, 정작 사법행정 사무를 총괄하는 양 전 대법원장은 여기에 포함하지 않았다. 그나마 드러난 관련자에 대해서도 조사단은 형사고발을 포기했다.
지방의 한 부장판사는 "김명수 대법원장 체제에서 진행되는 조사인 만큼 기대가 컸지만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면서 "재판의 독립성이라는 대전제를 흔들어도 뒤탈이 없다는 선례가 만들어진 것이므로, 같은 일이 다시 일어날 가능성이 그만큼 커졌다"고 말했다.
대한변호사협회도 이날 논평을 내고 "국민의 기본권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사건기록에 파묻혀 성실히 일하는 법관보다 특정집단의 이익을 대변하는 법관들이 요직에 진출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여 법관을 관료화시킬 우려"를 제기하면서 조사단 결과가 "국민의 시각에서 사법부에 대한 그간 의혹과 불안감을 해소했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