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물수수와 다스 횡령 등 혐의로 구속기소 된 이명박 전 대통령이 23일 오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첫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사진공동취재단/자료사진)
"전직 대통령께서 법률적인 의무나 이런 부분을 다 알고 불출석을 결정한 것인지 의문스럽다."(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 정계선 부장판사)
"재판출석은 피고인의 권리이지 의무로 볼 수는 없다."(이명박 전 대통령 측 강훈 변호사)
지난 28일 재판에 불출석한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해 재판부가 피고인의 법률적 의무를 언급하며 질책하자 이 전 대통령 측 강훈 변호사는 재판출석은 피고인의 의무가 아니라 권리일 뿐이라는 논리를 펴며 "스스로 그 권리를 포기하겠다는 것 역시 자유의사 아니냐"고 주장했다.
강 변호사는 29일 재판출석을 피고인의 권리로만 보는 근거로 '피고인의 출석권'을 규정한 형사소송법 제276조 등을 들면서 이를 의무로 보려면 불이행하는 경우 제재하는 규정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규정은 없다고 설명했다.
형사소송법 제276조(피고인의 출석권)는 피고인이 공판기일에 출석하지 않으면 원칙적으로 재판을 열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예외가 인정되는 경우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 또는 과료에 해당하는 사건 ▲공소기각 또는 면소 판결을 할 것이 명백한 사건 ▲장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금고, 500만원을 초과하는 벌금 또는 구류에 해당하는 사건에서 피고인의 불출석허가신청이 있고 법원이 이를 허가한 사건 등이다.
아울러 구속된 피고인이 정당한 사유 없이 출석을 거부하고 교도관에 의한 인치가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하다고 인정된 때에는 피고인 출석 없이 공판절차를 진행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재판출석을 거부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재판 역시 이 조항에 따라 궐석재판으로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형사 절차에서 피고인의 재판출석은 권리인 동시에 의무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라고 지적한다.
재판에 출석해 자신을 방어하는 권리적 측면과 검찰 수사 결과 기소된 사람으로서 실체적 진실의 발견을 위해 재판을 받아야 하는 의무적 측면이 모두 담겨 있다는 것이다.
'공판기일에는 피고인, 대표자 또는 대리인을 소환해야 한다'고 규정한 형사소송법 제276조 2항, 재판에 출석한 피고인이 재판장의 허가 없이 퇴정하지 못하도록 한 제281조 1항 등이 피고인에게 출석 의무가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근거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판사 출신인 장승혁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피고인의 권리를 강조하는 입장에서는 이 전 대통령 측처럼 해석할 여지가 있지만, 피고인이 재판정에 출석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실체적 진실의 발견에 제약이 있기 때문에 권리이자 의무로 보는 게 일반적이라고 말했다.
궐석재판 제도를 이용해 정당한 사유 없이 피고인이 재판출석을 거부하는 사례가 관행화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검사 출신인 이창현 한국외국어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궐석재판 제도는 피고인의 출석 거부로 재판이 지연되거나 진행되지 못하는 것을 막기 위해 도입된 규정"이라며 "피고인은 정당한 사유가 있을 때만 재판에 불출석할 수 있으며, 그렇지 않은 경우 법원이 강제 구인을 시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과거 재판출석을 거부한 국가보안법 위반 사범 등을 강제 구인한 사례도 있다고 이 교수는 설명했다.
재판부는 이 전 대통령의 불출석에 대해 "다시 불출석 사유서를 낸다면 출정 거부로 판단하고 형사소송법 규칙에 따라 필요한 절차를 밟겠다"며 강제구인을 시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