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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택 "들어보세요…이제 막 한글 뗀 팔순 어머님들의 詩"

사회 일반

    김용택 "들어보세요…이제 막 한글 뗀 팔순 어머님들의 詩"

    할머니들 시 담은 <엄마의 꽃시> 펴내
    오늘 섬진강 풍경은 연두에서 '초록'으로
    문맹 마지막 세대의 삶과 진심 담겨...
    삶에 밀착된 시가 주는 깨달음 느껴보세요

    ■ 방송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FM 98.1 (07:3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김용택 (시인)

     

    콩밭에서 공부하다

    이귀례 지음

    마른 땅에 콩을 심었습니다
    호맹이 같은 연필로 꾹꾹 눌러
    글자를 만들었습니다
    ㄱ과 ㅏ가 친구하면 “가” 소리 내고
    ㄱ이 ㄱ을 업고 걸어가면 “까”라고 읽습니다
    우리 선생님 생각이 나서
    콩밭을 매다 “꽁”하고 불러보니
    연초록빛 떡잎들이 까르르 까르르
    텃밭에서 웃고 있습니다

    막 글자 배운 시인의 기쁨, 즐거움 이런 게 좀 느껴지시나요? 최근 발간된 <엄마의 꽃시="">라는 시집 속에 실린 작품입니다. 이 시집에는요. 이런 시가 100여 편이 실려 있는데 모두 다 막 글을 깨우친 어머님들의 작품이라고 그럽니다. 누가 이런 책을 내셨나 했더니 섬진강 시인 김용택 씨가요. 이 시들을 다 모아서 엮은 책이라고 하네요. 오늘 화제의 인터뷰 김용택 시인 연결을 해 보죠. 김용택 선생님, 안녕하세요?

    ◆ 김용택> 안녕하세요.

    ◇ 김현정> 본론 들어가기 전에 제가 우리 김 선생님을 연결하면 늘 첫 번째로 드리는 질문 있잖아요. 오늘의 섬진강은 어떤 모습입니까?

    ◆ 김용택> 지금 연두색에서 초록으로 건너갔습니다.

    ◇ 김현정> 벌써 건너갔어요?

    ◆ 김용택> 초록으로 건너가 버리면 꽃들이 산에 피어요. 하얀 꽃들이 많이 핍니다. 층층나무꽃도 피고 이팝나무 꽃도 피고 강변에는 찔레꽃이 피고. 이제 모내기를 하죠.

    ◇ 김현정> 그냥 뭐 한복판에 서 있으면 시가 절로 나오겠는데요. (웃음) 저는 김용택 시인이 신간을 내셨나 하고 봤더니 그게 아니라 선생님이 어머님들의 시를 한 100여 편 골라서 묶어서 내신 책이라고요. 어떤 겁니까?

    ◆ 김용택> 전국의 문해 학교라는 곳이 있어요. 문자를 해독하는 학교. 그러니까 문자를 모르시는 분들, 나이 드신 분들이 글쓰기를 한 글들을 모아서 제가 출판사하고 편집을 해서 만든 겁니다.

    ◇ 김현정> 그러니까 이게 프로 시인도 아니고 심지어는 한글을 뗀 지 얼마 안 된 분들이 쓴 시인 거잖아요.

    ◆ 김용택> 그렇죠.

    ◇ 김현정> 저는 이거 다 읽어봤거든요. 정말 한 편 한 편 다 진심이 살아 있으니까 이게 와 닿아요. 와 닿아요.

    ◆ 김용택> 삶이 담겨 있죠, 삶. 인생이 다 담겨 있어요. 문맹 마지막 세대들이 글자를 해독해서 쓴 글들이기 때문에 일제 식민지 끝에서 태어나신 분들이잖아요, 거의. 얼마나 우여곡절과 질곡들이 많았겠어요.

    ◇ 김현정> 그러니까 이게 한글을 지금까지 못 배우셨다는 건 다른 것도 아니고 대학을 못 갔다 그런 차원이 아니라 한글을 못 배우셨다는 건보통 사연 있는 분들이 아닌 건데.

    ◆ 김용택> 그렇죠. 예를 들어 이런 거죠. 어렸을 때 ‘너는 계집아이니까’ 그러잖아요.

    ◇ 김현정> 너는 여자아이니까.

    ◆ 김용택> ‘너는 여자아이니까 너는 학교 안 가도 돼.’ 그러면서 학교를 안 보내고 다른 친구들이 책보를 들고 학교를 갈 때 이 어머니들은 호미를 들고 밭으로 갔던 거죠. 그걸 상상해 보면 정말 이거 눈물이 안 나올 수가 없어요.

     

    ◇ 김현정> 이거 읽으면서 어머니 생각난다, 자기의 어머니 생각난다 하시는 분들 많을 것 같은데 다 소개해 드릴 수는 없고 우리 김용택 시인이 꼽은 한 편 같이 좀 나눠볼까요.

    ◆ 김용택> 이 시가 슬픈 시인데도 읽어 보면 굉장히 즐겁고 재미있고 행복하고 눈물 속에 행복이 들어 있는 그런 시들이에요.

    ◇ 김현정> 울다가 웃다가 막 그래요. 어떤 시 소개해 주시겠어요?

    ◆ 김용택> ‘영감님께 보내고 싶은 편지’라는 이경례 할머님이 쓰신 시입니다.

    영감님께 보내고 싶은 편지

    이경례 지음

    서방님이라 부르기도 부끄럽던 새색시 시절
    세상을 떠난 당신께
    편지 한 장 고이 적어 보내고 싶었습니다

    혼자 남겨진 세상살이 어찌 살아왔는지
    적어 보내야지, 보내야지 하다가
    여든다섯이 되었습니다

    사진 속 당신은 늘 청년인데
    나는 어느새 당신을 영감이라고 부릅니다

    늦깎이 공부를 하니
    어깨 너머로 배운 글이 많이 서툽니다

    열심히 공부해서
    정갈한 편지 한 장 써보겠습니다

    ◇ 김현정> 그래요. 그 보내고 싶던 그 편지. 그 편지를 이제야 보낼 수 있게 된 거예요.

    ◆ 김용택> 그러니까요. 지금 여든이 넘으셨는데.

    ◇ 김현정> 여든이 넘은 할머님이. 그런 거 보면 재미있는 시들도 많다고요. ‘부녀회장이 되고 싶다’라는 시.

    ◆ 김용택> 진짜 그거 재미있어요. (웃음)

    ◇ 김현정> 이거 생각만 해도 웃기세요? (웃음)

    ◆ 김용택> 제가 그 마을로 이사 가서 호적 옮겨서 한 표 주고 싶어요.

    ◇ 김현정> 그거 한번 낭독해 주시겠어요?

    ◆ 김용택> 이거 아주 짧은 시고 정말 아주 재미가 있는 시입니다.

    부녀회장의 꿈

    서선옥 지음

    글을 몰라
    부녀회장을 못 나갔습니다
    아직도
    부녀회장의 꿈을 키워갑니다
    내년에
    더욱더 공부 열심히 해서
    부녀회장이 될 것입니다

    ◇ 김현정> 끝? (웃음) 얼마나 솔직하세요.

    ◆ 김용택> 그러니까요. (웃음)

    ◇ 김현정> 우리 서선옥 할머니. 부녀회장이 되고 싶었는데 글을 몰라서 못 했는데.

    ◆ 김용택> 글을 몰라서 못 된 거잖아요, 왜냐하면 면사무소도 가야 되고 문서도 봐야 되고. 그런데 글자를 모르면 안 되죠. 부녀회장이 못 되죠.

    ◇ 김현정> 이제 꿈 이루신 것. ‘이제는 열심히 해서 되겠습니다.’ (웃음)

    ◆ 김용택> 틀림없이 되실 것 같아요. (웃음)

    ◇ 김현정> 이런 시들입니다. 이런 진솔한 시들. 울다가 웃다가. 김용택 시인이야 전문적으로 글을 쓰시는 문학가시지만 이런 아무추어 어머님들의 글을 보면 또 나름 배우시는 게 있을 것 같아요.

     

    ◆ 김용택> 너무나 많죠, 배울 게. 왜냐하면 지식으로 쓴 시라는 게 얼마나 삶과 멀리 동떨어져 있는가. 시를 고집하느라고 삶을 잊어버린 것들이 많은가. 이런 뉘우침과 깨달음을 느꼈죠. 시 쓴다고 사람들이 으스대고 그러잖아요.

    ◇ 김현정> 김 선생님은 안 그러시잖아요.

    ◆ 김용택> 아이고, 저도 그럴 때가 많죠.

    ◇ 김현정> 우리를 이렇게 겸손하게 만들어주는 우리 어머니들의 이야기. 인세의 일부는 좋은 곳에 쓰신다면서요?

    ◆ 김용택> 좋은 곳에 쓸 겁니다.

    ◇ 김현정> 전국의 문맹자들, 문해 학습자들을 위한 교육에 쓴다고 하니까요. 이것도 많은 도움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섬진강의 초록빛 마음껏 느끼시고요. 가끔 그 기운도 서울로 보내주십시오.

    ◆ 김용택> 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김현정> 섬진강의 시인 김용택 시인이었습니다. (속기=한국스마트속기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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