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인상 속도를 놓고 정부내 엇박자가 증폭되면서,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위상과 운신 폭이 급격히 좁아지고 있다.
김 부총리의 '속도조절론'이 소득주도성장 노선 수정으로 비쳐진 데 따른 후폭풍으로, 여권 일각에선 김 부총리 교체설까지 거론되기 시작했다.
당장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 이목희 부위원장이 김 부총리를 작심 비판하고 나섰다. 이 부위원장은 30일 기자들과 만나 "최저임금 인상 속도조절론을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지금은 그 말을 할 때가 아니다"라며 "경제부총리가 신의 영역에 있느냐"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 부위원장은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실증적 분석 결과가 나온 다음에 속도조절을 판단해야 한다"면서 "책임 있는 정책당국자가 할 말이 아니다"라고 쓴소리를 이어갔다.
"영세자영업나 소상공인들 일자리가 몇 개 줄어들었는지, 줄어든 이유가 손님이 없어서인지 최저임금 때문인지 아직 제대로 된 통계도 없다"는 것이다.
이 부위원장은 특히 "대통령 공약을 지키기 위해 정부가 온갖 노력을 다해야 할 상황"이라고 거듭 환기했다. 소득주도성장을 이끌기 위한 핵심 수단이 최저임금 인상인 데다, "2020년까지 1만원으로 인상하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에서 방점은 '1만원'이 아닌 '2020년'이란 얘기다.
◆"경험이나 직관으로 봐선…" 金부총리 발언에 "신의 영역에 있나" 쓴소리김 부총리의 속도조절론에 대한 여권 내부의 '불편한 기류'는 하루 전날 청와대에서 열린 가계소득동향점검회의에서도 감지됐다.
문 대통령은 "일자리 창출과 소득주도 성장이라는 정부의 정책 기조가 제대로 가고 있는지 점검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올 1분기 상하위층 소득 격차가 악화됐다는 통계 지표에 따른 대책 마련 차원에서 열린 회의였지만, 사실상 소득주도성장 기조에 변함이 없다는 걸 재확인한 자리가 됐다.
"일자리 정책과 소득주도 성장 정책의 성과가 국민 실생활에서 구현되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란 문 대통령의 언급이 이를 반증한다.
특히 이날 회의 직후 청와대 김의겸 대변인이 "앞으로 장하성 정책실장이 주도해 관련 부처 장관들과 함께 경제 전반에 대해 회의를 계속 개최해 나가기로 했다"고 브리핑한 건 의미심장하다.
논란이 일자 '장 실장 주도'란 표현을 일부 수정하긴 했지만, 경제 정책의 컨트롤타워를 김 부총리가 아닌 장 실장에게 맡겼음을 시사하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에 악영향을 미쳤다는 근거가 전혀 없다"는 장 실장과 "경험이나 직관으로 봐서는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과 임금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던 김 부총리의 기 싸움 국면에서 장 실장의 손을 들어준 셈이다.
◆속도감 필요한 핵심 정책마다 '신중론'으로 발목 비판도그동안 청와대는 김 부총리의 '속도조절론'에 대해 구체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아왔다. 이를 두고 김 부총리를 '범퍼'로 삼아 '정책 선회' 가능성이나 여론을 타진해보는 것 아니냐는 관측까지 나왔지만, 결론은 김 부총리의 '개인 소신'인 것으로 드러난 형국이다.
최저임금 인상 속도조절론을 둘러싼 이번 엇박자는 지난해 7월 '핀셋 증세'나 같은해 9월 '보유세 개편' 이슈 당시 불거진 혼선의 데자뷰이기도 하다. 당시에도 단초는 김 부총리가 제공했다.
김 부총리가 "법인세와 소득세 문제는 굉장히 민감한 문제"라며 증세에 미온적 입장을 견지하자, 당시 행정자치부 김부겸 장관은 "형편이 되는 쪽에서 소득세를 부담할 수 밖에 없다는 얘기를 정직하게 해야 한다"고 대립각을 세웠다.
여기에 추미애 대표 등 여당 핵심부도 가세하면서 결국 초고소득층과 슈퍼 대기업에 대한 '핀셋 증세'가 관철됐고, 급기야 '김동연 패싱' 논란으로까지 이어졌다.
지난해 9월에도 추 대표가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통해 "초과다 부동산 보유자에 대한 보유세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고 깃발을 꺼내들면서, "보유세는 취득세와 양도세 등 거래세와는 성격이 다르다"며 신중론을 펴던 김 부총리와 대립각을 세우기도 했다.
매번 정책 혼선이 끊이지 않으면서 여권 내부에선 김 부총리 교체 필요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여권 한 관계자는 "그동안 불거진 엇박자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김동연 패싱'이 아니라 김 부총리의 'J노믹스 패싱'이 더 정확하다"며 "현 정부 핵심가치와 철학을 전혀 공유하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닌가 의구심이 든다"고 지적했다.
◆'나홀로' 혁신성장 드라이브…격차만 키우는 '낙수이론' 판박이
김 부총리가 기존의 '낙수(落水) 이론'과 크게 결이 다르지 않은 '혁신성장'을 부쩍 강조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비판이 나온다.
박근혜정부의 '창조경제'처럼 정체성이 모호할 뿐더러, "파이를 먼저 키워야 한다"는 이러한 논리는 평균 가계소득이 크게 높아졌음에도 상하위 격차는 커진 1분기 소득동향 통계로 '완파' 됐기 때문이다.
특히 취임 이후 문 대통령도 신중한 입장을 견지했던 보유세나 증세 이슈와 달리, 최저임금 인상은 소득주도성장 구현의 핵심 수단이다. '속도조절론'이 발붙일 여지가 크지 않음에도 김 부총리가 끊임없이 자충수를 두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까닭이다.
내년도 최저임금 심의에 착수한 최저임금위원회가 30일 "최근 최저임금위의 독립성을 침해할 오해가 있는 발언에 대해 우려를 갖고 있다"며 정색하고 나선 것도 김 부총리의 행보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앞으로 책임 있는 외부 인사들이 최임위의 독립성을 존중해 이런 발언을 자제해줄 것을 요청한다"는 행간에 김 부총리의 속도조절론에 대한 불쾌감이 녹아있음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