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낙태죄 존치' 입장인 법무부가 낙태하려는 여성을 '무책임하게 성교하고 책임지지 않는다'고 표현해 논란을 빚은 헌법소원 변론서를 결국 철회했다.
이미 헌법재판소에 제출한 변론서를 추후에 철회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로, 관련 논란이 커지자 슬그머니 문제적 표현과 논리를 거둬들인 것으로 보인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29일 정부법무공단으로부터 보충서면 철회서를 수신했다. 낙태죄 존치를 주장하는 법무부의 대리인 자격으로 변론서를 제출한 정부법무공단이 논란 이후 해당 변론서 자체를 철회하겠다는 의견을 헌재에 전달한 것이다.
앞서 CBS노컷뉴스는 지난 23일 법무부가 변론서에 낙태죄와 관련해, 낙태를 원하는 여성을 무책임한 여성으로 폄훼한 문구를 여러 차례 썼다는 내용을 보도했고, 이는 사회적 공분으로 이어졌다.
(5월 23일자 노컷뉴스 [단독] 법무부 "낙태죄 폐지? 성교하되 책임 안지겠다는 것") 해당 변론서에서 법무부는 "통상 임신은 남녀 성교에 따라 이뤄지는 것으로 강간 등의 사유를 제외한 자의에 의한 성교는 응당 임신에 대한 미필적 인식을 가지고 있다고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임산과 출산에 대해선 "여성에게 충분한 자유가 보장된 성행위에 의해 나타난 생물학적 결과"라며 낙태 위헌 요구를 마약 합법화에 빗대 설명하기도 했다.
임신과 출산, 양육에 이르기까지 여성이 처한 사회적 맥락을 완전히 무시한 법무부 의견에 대해 각계에서 비판이 잇따르자 법무부는 처음에는 '오해'라고만 해명했다.
"임신 자체를 '원하지 않는 부당한 임신'으로만 이해하는 데에 대한 우려를 표시한 것 뿐"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공개변론 당일이었던 24일 법무부 측은 '태아의 생명권'에 집중한 변론을 펼치는 등 문제의 변론서가 담고 있던 논리는 애써 피해갔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을 경질해달라는 청와대 청원까지 등장했다. (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박상기 법무장관에 대한 경질 요구까지 청와대 청원란에 오르고 각계의 비판이 쏟아지자 법무부는 결국 "일부 부적절한 표현과 비유가 사용됐다"며 신중하지 못했다고 인정했다.
법무부가 이어 29일 변론서까지 철회한 것은 해당 논리가 여성 폄훼 논란에 휩싸인 것은 물론 헌법소원 변론에서도 유리하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이후 법무부는 현행 낙태죄 합헌 주장을 유지하면서 여성 인권 무시 논란을 피해갈 만한 논리를 다듬어 변론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법무부 관계자는 "낙태죄 합헌 의견은 지난 달 3일 제출했던 변론요지서에 담고, 일부 부적절한 표현이 있는 보충의견서를 삭제한다는 차원"이라면서 "따로 수정한 의견서를 낼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낙태죄 위헌사건 청구인 측 대리인단 박수진 변호사는 "호주제 위헌 소송의 경우도 당초 법무부는 합헌이라는 의견을 냈다가 나중에 폐지하는 민법 개정안을 냈다"며 "법무부가 시대적 요구와 여성 인권 옹호 차원에서 낙태죄 폐지 입장을 내고 법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호주제 폐지 전례에서 보듯, 법무부 차원에서 전향적인 시도가 가능하다. 법무부는 2001년 헌재에 호주제 합헌 의견을 내는 등 호주제 존치 입장이었지만 2003년 9월 호주제 폐지를 포함한 민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그해 12월 국회 법사위에서 관련 민법 개정안이 통과돼 남성 가장에게만 가족 통솔권 등을 인정했던 호주제가 폐지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