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퇴임식. (사진=이한형 기자/자료사진)
양승태 대법원과 박근혜 청와대 간 '재판 거래' 의혹과 관련해 법원행정처가 5일 추가로 공개한 문건 가운데에는 과연 '독립된 사법부'가 작성한 게 맞는지 의문인 대목이 곳곳에 등장한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숙원사업이었던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대통령님 의중'을 언급하는가 하면 '창조경제,사법한류'라는 다소 뜬금 없는 주제를 등장시키기도 한다.
2015년 9월 작성된 'BH 민주적 정당성 부여 방안'이 대표적이다. 상고심 법관에 대한 청와대의 임명권을 어떻게 제도화해야 청와대의 입맛은 맞추면서 시민단체 등의 문제제기는 차단할 수 있는지가 주요 검토 내용이다.
앞서 그 전 달에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 'VIP 보고서'는 이미 이런 목표를 노골적으로 정리했다. "상고법원 판사 임명에 대통령님 의중을 최대한 반영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마련하겠다"는 낯뜨거운 표현까지 등장한다. 게다가 상고제도의 대안으로 제시된 대법원 증원 방안을 비판하면서 "진보 인사의 최고법원 진출이 가능하다"고 위험성을 경고하기도 했다.
양승태 당시 대법원장. (사진=윤창원 기자/자료사진)
또 '창조경제 구현을 위한 사법한류 추진'이라는 다소 황당한 내용도 눈에 띈다. 창조경제는 당시 박근혜 정부가 전정부 차원의 드라이브를 걸고 있던 사업이다. 문건은 사법한류 과정에서 청와대가 '컨트롤타워'로서 역할해야 한다고 치켜 세우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이와 함께 사법행정에 대한 법관들의 문제 제기 자체를 꺾으려는 시도가 보이는 문건들도 이번에 공개됐다. 주된 타깃은 국제인권법커뮤니티 내 인권과사법제도 소모임(인사모)이었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행정처 입장에선, '판사회의 실질화 방안'을 주제로 한 이들의 활동은 '사법행정에 간섭을 목표로 판사회의를 이용하려는 조직적 시도'였다.
법관 사찰에 가까운 내용들도 담겼다. 인사모와 관련해 2015년 9월 작성된 문건을 보면 소모임을 누가 맨 처음 제안했는지, 두 차례에 걸친 예비모임과 이후 정식모임에 누가 참석했고 어떤 주제의 논의가 오갔는지가 상세히 적혀있다.
심지어 뒷풀이가 언제 끝나고 어떤 법관이 뒤늦게 합류했는지까지 담겨있다. 다른 문건에는 법관마다 각주를 달아 '신영철 대법관 사태 때 주동적 입장','임관 성적에 비해 좋은 임지를 받지 못했다는 불만이 있는 것으로 알려짐' 등의 사찰성 설명들이 달렸다.
또 '세월호사건 관련 적정관할법원 및 재판부 배당방안' 문건은 사법부가 세월호 참사를 '대외적 홍보 효과'로 활용하기 위해, 담당할 법원과 재판부 임의 배당을 검토했다는 의혹을 사실로 드러냈다. 당시 사법부가 세월호 참사를 홍보 대상으로 삼았다는 면에서 정치적 거래만큼이나 부적절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