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싱가포르 창이공항에 도착한 북한 김정은 위원장(왼쪽)과 같은 날 파야레바 공군기지에 도착해 전용기에서 내리는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역사적인 첫 북미정상회담이 하루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북미 양측에서 모두 회담 결과에 대한 기대감이 표출되고 있다.
북한과 미국이 비핵화와 체제 안전보장을 교환하는 '세기의 빅딜'에서 어느 수준의 합의를 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불투명하지만, 겉으로 드러난 표현만 놓고 보면 성공적으로 진행될 가능성에 점차 무게가 실리는 분위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날 리셴룽(李顯龍) 싱가포르 총리와의 오찬 회담에서 북미회담 성공에 대한 기대감을 공개적으로 표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모두발언에서 "여러분도 알다시피 우리는 내일 아주 흥미로운 회담을 하게 된다. 아주 잘 될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부 장관도 성명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과 우리 팀은 내일 정상회담을 고대한다"며 "내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회담에 잘 준비돼 있다"고 전했다.
전날 트럼프 대통령은 싱가포르에 도착한 뒤 공항에서 정상회담 전망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베리 굿(very good·매우 좋다)"이라고 답했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낙관주의가 깃든 발언으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회담을 코앞에 둔 시점이라는 점에서 비핵화를 둘러싼 북미 간 막판 조율의 분위기가 나쁘지 않음을 시사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가능하다.
폼페이오 장관도 성명에서 "오늘 아침 북한과의 협상을 포함해 지금까지 실질적이고 세부적인 회의를 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의 입장은 여전히 명확하고, 변하지 않았다"고도 했다.
북한 매체들은 11일 북미정상회담을 위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싱가포르 방문 소식을 비교적 상세히 전했다. 조선중앙통신은 김 위원장이 10일 오전 평양에서 출발했으며 싱가포르에서 12일 오전 트럼프 대통령과 첫 정상회담을 한다고 밝혔다.
북한 매체가 김 위원장의 '미래 동선'을 예고성으로 보도한 것은 극히 이례적으로, 더구나 해외 체류 일정이라는 점에서 의외로 받아들여진다.
김 위원장의 최근 두 차례 중국 방문 시에는 평양으로 귀환한 뒤 보도가 이뤄졌다. 지난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 때는 회담 당일 오전에 예고성 보도가 이뤄지기는 했지만, 판문점을 해외로 보기 어렵고 당일치기였다는 점에서 이번과는 또 다르다.
이는 '평양을 며칠 비워도 문제가 없다'는 김 위원장이 권력 장악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낸 것이라는 평가와 함께 북미정상회담에서 성과를 낼 것이라는 기대에 따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싱가포르 입국 당일엔 숙소에만 머물렀던 김 위원장은 이날 현지의 경제 관련 시설 3∼4곳을 참관할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소식통은 "김 위원장이 오늘 싱가포르 시내에서 일부 시설을 참관할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이 싱가포르의 경제발전을 상징하는 시설을 둘러볼 가능성이 제기되는 가운데, 북측의 숙소 세인트리지스 호텔에서는 이날 오후 2시 20분께부터 경호원으로 추정되는 인물 등 수십 명이 이동을 준비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중앙통신은 "달라진 시대적 요구에 맞게 새로운 조미 관계를 수립하고 조선반도의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문제, 조선반도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한 문제" 등 정상회담 의제도 상세하게 공개했다.
특히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등이 김정은 위원장을 배웅하며 "조미 두 나라 사이의 첫 수뇌 상봉과 회담에서 훌륭한 성과를 거두시고 부디 안녕히 돌아오시기를 충심으로 축원했다"고 보도한 점도 눈길을 끈다.
북측도 '훌륭한 성과'에 대한 기대감이 적지 않음을 보여주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다만 일부에선 북한은 이번 북미정상회담에서 어떤 결론이 나오든 이를 '훌륭한 성과'로 포장할 것이라는 지적도 없지 않다.
그러나 이 같은 낙관론 속에서도 양측은 자신들이 고수해온 기존의 입장을 거듭 확인하며 미묘한 신경전도 벌였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날 오전 트위터에 미국 측 협상 대표인 성 김 주 필리핀 미국 대사와 함께 조찬을 하는 사진을 올리면서 "우리는 한반도의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에 전념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 대사와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이 정상회담 합의문 초안의 최종조율을 위한 실무 회담을 진행하는 가운데 장외에서 '압박 메시지'를 발신한 것이다.
이에 대해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이날 달라진 시대적 환경에 맞게 새로운 북미관계를 수립할 것이라고 밝히면서, 미국을 향해 북한의 자주권 인정을 촉구했다.
노동신문은 6면에 게재한 정세논설에서 "비록 지난날에는 우리와 적대 관계에 있었다 하더라도 우리의 자주권을 인정하고 우호적으로 나온다면 대화와 협상을 통하여 오해와 불신을 가시고 관계 개선과 정상화를 실현하자는 것이 우리의 자세이며 입장"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