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방송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FM 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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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정> 김현정의 뉴스쇼 금요일의 코너입니다. 뉴스 속으로 훅 파고드는 시간, 훅!뉴스. 오늘도 김정훈 기자 나와 있습니다. 오늘은 어떤 이야기 속으로 훅 들어가 볼까요?
◆ 김정훈>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의 부인 이명희 씨가 두번의 구속 위기를 모두 모면했죠. 갑질 폭행 혐의에 이어 필리핀 가사도우미 불법 고용 혐의에 대해서도, 청구된 영장이 모두 법원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은 겁니다.
◇ 김현정> 무죄라는 뜻은 아니지만 구속할 필요는 없다고 법원이 판단했어요.
◆ 김정훈> 그젯밤 유치장을 빠져나온 이명희씨는 한시름 놓은 모습이었는데, 기괴한 고성을 기억하시는 분들은 달라진 목소리에도 의아해 하셨을 겁니다. 비교해서 들어보실까요?
[녹취: 이명희 씨]
"왜 일할 때 개인전화 들고와? 왜 개인전화를... 크게 말해! 나가! 나가!"
(구속영장 두 번 기각됐는데 소감이 어떠십니까?)"고생들 많으셨습니다. 죄송합니다."
(억울한 것 없으세요?)"아닙니다. 죄송합니다."
◇ 김현정> 앞의 목소리는 운전기사한테 소리지르는 이명희씨. 뒤의 목소리는 유치장 나오면서 '죄송합니다' 기자들한테 말하는 목소리. 같은 사람이에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다른 목소리. 잠이 확 깹니다. 시작부터. 그런데 구속영장 기각이 이씨뿐만이 아니었죠?
◆ 김정훈> 네. 어머니 이씨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앞서 '물벼락 갑질' 의혹을 받았던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의 경우엔, 구속영장을 검찰이 받아들이지 않았죠.
21일 게릴라 시위에 나선 대한항공 '직원연대' 회원들
◇ 김현정> 구속영장 기각이 무죄란 뜻은 아닌데, 이것만으로도 혹시 아무런 처벌받지 않고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끝나버릴까 이런 걱정들을 직원들이 하는 거죠.
◆ 김정훈> 사실 직원들의 허탈함은 영장 기각 때문만은 아니죠. 국민의 지지를 받던 촛불집회가 지난달 말 4차 행사 이후 열리지 않고 있고요, 직원연대 단체 대화창을 만들면서 여론을 주도했던 익명의 관리자도 활동 중단을 선언한 상태거든요. 내부 입장차가 있는 것인데, 저희가 들어보니 동력이 떨어지는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다고 합니다. 오늘 훅!뉴스에서는 '불신지옥' 덫에 걸린 대한항공 직원들의 속사정을 짚어보려 합니다.
◇ 김현정> 우리는 지금 사주의 갑질 부분에 집중했는데, 이런 일이 벌어지는 뒤의 대한항공 내부의 이야기를 취재한 거군요. 불신지옥이라고 하셨는데, 서로가 서로를 못 믿는다는 얘기 아니에요?
◆ 김정훈> 어떤 상황인지 대한항공 직원들의 말을 들어보는 걸로 시작해보죠. 목소리는 변조했습니다.
[녹취: 대한항공 익명 직원들]
"액스맨이라는 게 존재했었잖아요, 과거에. 이것의 잔재가 아직 남아있는 거예요. 고자질하면 자기에게 이득이 될 거라 생각하는 거죠. 기준이 없기 때문에 이상한 보고도 많이 올라간다고 알고 있습니다. 지금 현재 누가 아군이고 누가 사측인지 구분을 못하고 있어요."
"엑스맨이라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다수이기 때문에, 직원들끼리도 서로를 못 믿는 부분이 있어요."
◇ 김현정> X맨? 동료들 사이에 있으면서 잘못을 고자질하고 분열을 일으키는 그런 존재가 있다는 건가요?
◆ 김정훈> 사측은 규정 위반을 서로 보고하도록 하는 제도가 있었지만, 현재는 그런 X맨이 있지도 않고 그런 보고서를 요구하지도 않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관행이 남아있다는 게 직원들의 이야기입니다.
◇ 김현정> 지금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X맨 역할을 하는 사람이 있다?
◆ 김정훈> 누군가 나의 단점을 위로 보고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나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어서 서로가 서로를 못 믿고, 일부는 보고서를 위로 올리는 것 아니냐 이렇게 생각을 한다는 거죠.
◇ 김현정> 그렇다면 회사는 손 안 대고 코 푸는 격, 직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알 수 있다는 얘기네요.
◆ 김정훈> 이렇게 되니까 동료들과 회삿일을 두고 왈가왈부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가 하면 신뢰하는 동료 사이라 하더라도 함부로 말을 하기 쉽지 않은 상황도 있다는데요.
◇ 김현정> 누가 엿듣기라도 한다는 건가요?
◆ 김정훈> 이 부분은 대한항공조종사노동조합 이규남 전 위원장의 말로 들어보시죠.
[녹취: 이규남 조종사노조 전 위원장]
"비행중에 모든 게 녹음되거든요. 비행 끝나고 나면 사적인 이야기도 할 거잖아요. 최소한 마지막 2시간은 정비사들이 바로 꺼내서 들을 수 있어요. 그런 것까지 모니터를 하고 있다, 소문을 내죠. 실제 그럴 가능성도 높고요."
◇ 김현정> 비행중에 기장 부기장들 사이 교신 기록은 당연히 저장이 되죠. 이 녹음물이 누군가에 의해 악용될 수 있다, 새 나갈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다는 거네요.
(사진=스마트이미지 제공/자료사진)
◆ 김정훈> 그러니 몇시간을 조종석에서 함께 보내야 하는 조종사들마저 침묵을 지키고 있다는 겁니다. 서로 같은 조종석 안에 있으면서도요. 최근엔 새로운 업무 방식이 적용되면서 PC나 스마트폰을 이용한 대화도 마음 놓고 할 수 없다, 이런 말도 하는데요.
◇ 김현정> PC나 스마트폰을 이용한 대화라면 SNS 카톡 이런 걸로 이야기 나누는 건데, 그걸 어떻게 들여다봐요?
◆ 김정훈> 지난 5월부터 외부에서 업무사이트에 접속하는 것은, PC나 스마트폰에 특정 프로그램을 설치한 뒤 VPN이라는 가상사설망을 통해서만 가능하도록 했습니다. 보안을 강화하려는 취지라는 게 회사의 설명이지만, 울며 겨자먹기로 회사가 지정한 프로그램을 깔아 둔 채로 PC나 스마트폰을 이용해야 하거든요.
◇ 김현정> 휴대폰을 갖고 있는데, 이걸로 회사 밖에서 업무를 하기 위해 사이트에 접속하려면 특정 프로그램이 깔려 있어야 한다?
◆ 김정훈> 더구나 항공사 특성상, 세계 각지에 있거나 비행중이기도 하고요. 반드시 프로그램을 깔 수밖에 없거든요. 그런데 그 프로그램이 깔린 채로 내가 PC나 스마트폰을 이용해야 하니까, 직원들은 개인 메신저 이용도 불안하다 말을 하는데요, 한 직원의 말을 들어보시죠.
[녹취: 대한항공 익명 직원]
"VPN 연결을 한 번 하는 순간 회사를 통해서 가는 거잖아요. 거기에 등록을 하고서 서버에 연결을 하려고 하면 메세지가 '이 앱을 사용하는 동안 전화기에 어떠한 정보들은 모니터링을 당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뜨기 때문에 사람들이 염려하는 거죠."
◇ 김현정> 실제로 그렇게 악용이 돼서 사찰이 된 사례도 있습니까?
◆ 김정훈> 회사는 근거 없는 우려라고 말하고 있고요, 의심스런 정황이 드러난 바는 아직 없습니다. 하지만 전문가에게 문의해보니 IP를 추적해 접속 기록을 확인할 수 있고, 조작하기에 따라서는 일부 정보를 빼가는 게 불가능하지 않다고 하더라고요.
◇ 김현정> 이런 앱을 쓸 수는 있죠. 조종사간의 녹음도 해야 하고요. 문제는 그 밑에 불신이 짙게 깔려 있습니다. 회사 전체가 불신에 빠져 있다 보니까 하나하나 다 믿을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는 거네요. 사실 갑질이 굉장히 오랫동안 지속돼 왔고, 사주 일가 전체에 의해 이뤄졌다는 게 계속 드러나고 있음에도 '대한항공 직원들이 왜 폭발하지 못하나' 이런 얘기들을 하면서 궁금해 했잖아요.
◆ 김정훈> 땅콩회항으로부터는 3년 반째 이어지고 있거든요.
◇ 김현정> 이런 분위기가 있다 보니까, 적과 나를 구분하지 못하는, 아무도 믿지 못하는 그런 분위기가 깔려 있다 보니까 그럴 수밖에 없었던 거 아닌가 생각되네요.
◆ 김정훈> 사측이 가만히 있어도요. 그런데 직원들이 이렇게 불신 속에 분열된 건 원인이 아니라 결과이겠죠. 돌이켜보면 대한항공 직원들의 반란은 지난 2000년쯤에도 있었거든요? 기존 노동조합 안에 남여 승무원들이 주축이 된 민주객실승무지부가 만들어지면서 노동 여건 개선에 적극 나선 건데, 회사가 당혹해 했습니다. 바로 그때 만들어진 게 앞서 말한 'X맨 제도'라는 겁니다. 당시 객실승무지부에서 활동했던 대한항공 직원의 말입니다.
[녹취: 2002년 당시 객실승무지부 직원]
"말은 서비스에 대해 평가를 하고 내부조직 문화를 평가를 한다 했지만 누가 회사에 로열티가 없는지 이런 것을 평가하기 위한 거라고 모두 생각했죠.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누가 나를 감시하고 누가 나를 보고 하는지 알 수가 없어요."
◇ 김현정> 이게 상사가 부하들을 인사고과 평가하는 그런 것과 다른 거예요?
◆ 김정훈> 공식적인 평가 제도가 아니고요, 직원 내부에서, 평가... 사실 평가가 아니라 고자질로 바뀌었죠. 그런 제도가 있었던 겁니다.
◇ 김현정> 동료들 사이가 이때 굉장히 많이 갈라졌겠어요.
◆ 김정훈> 사실상 회사가 동료들 사이를 이간질한 셈이거든요.
◇ 김현정> 회사 입장에서는 대놓고 노동자들을 탄압하는 게 아니라 서로 믿지 못하게 불신을 조장하는 것이, 직원들 통제에 더 악랄한 수단으로 이용될 수 있겠어요.
◆ 김정훈> 그 결과가 지금 대한항공의 현주소가 아닐까 하네요. 이제는 사측이 별달리 직원들을 회유하고 압박하지 않아도 직원들이 적극적인 행동에 나서기 주저하게 되는 상황이 됐거든요. 외부 수사가 대한항공에 변화를 줄 수 있지 않겠느냐 기대도 있었지만 번번히 구속마저 기각되는 현실이고요.
◇ 김현정> 어제 권영철의 Why뉴스에서도 짚어봤지만, 한진그룹 일가의 비도덕성이 계속 들어나도 사법처리는 별개의 문제, 신중할 수밖에 없다는 게 법조계의 의견이거든요.
◆ 김정훈> 설령 총수 일가가 처벌받는다 하더라도, 경영진에서 일부가 교체된다 해도 기업 문화 자체가 바뀔 수 있을까요? 결국 진짜 직장 민주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직원들 스스로가 더 용기를 내야 한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 김현정> 누군가는 이 불신의 틀을 깨고 나가야 한다. 누군가 나가면 서로서로 따라가면서 문화 자체가 바뀌지 않겠는가 기대를 하는 거네요.
◆ 김정훈> 노동법률단체인 '직장갑질119'의 박점규 활동가 말입니다.
[녹취: 박점규 활동가]
"본인이 못 깨는 걸 밖에서 깨주나요? 그럴 수는 없는 일이고요. 우리나라에서 어느 기업도 이렇게 주목받아본 적도 없고, 언론이 전폭적 지지를 보내고 정부도 수사에 나서고 있는데 이분들이 한 걸음만 더 나아가면 되거든요."
◇ 김현정> 대한항공 사주 일가 때문에 이런 고통 겪고 있지만 직원들이 무슨 죄입니까. 이 기회에 대한항공 내부의 분위기를 쇄신해서 좋은 전환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충고군요.
◆ 김정훈> 한발 더 나아가 대한항공 직원들의 상징이 된 마스크를 벗어던져야 한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 김현정> 직원들이 집회 나올 때 신원이 드러날까봐 쓰고 나왔던 그 마스크. 그렇게라도 해야 집회에 나올 수 있는 상황이니까 썼던 거 아닌가요?
◆ 김정훈> 그렇긴 하죠. 하지만 나의 신원이 감춰질 수는 있겠지만 옆의 동료를 알아보지도 못해서, 힘을 키울 수 없을 거라는 얘깁니다.
◇ 김현정> 단체 카톡방도 익명이고 오프라인에서 만날 때도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서로가 누가 누군지 모르는 상황. 이게 나를 보호할 수는 있지만 동시에 동력, 조직력은 약해지는 거다?
◆ 김정훈> 앞서 2002년 객실승무지부에서 노동조합 활동을 했던 선배가 이제 투쟁에 나선 후배들에게 이렇게 말을 전하더라고요.
[녹취: 2002년 당시 객실승무지부 직원]
"마스크를 쓰고 있다는 건 적에게 나를 알리지 않는 도구도 되지만, 아군이 누군지 알아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같이 나가더라도 '어제 집회에서 봤지', '내 편이었지' 이런 든든한 마음이 안 생겨요. 저 사람이 적일까 아닐까, 이런 고민을 하게 만들잖아요. 마스크 벗지 않으면 한발짝도 못 나갈 거다..."
◇ 김현정> 참 아이러니고 어려운 얘기인 게, '마스크를 벗읍시다, 알을 깹시다'라고 얘기하는 이분조차 아직은 실명으로 인터뷰하는 용기를 가지지 못하는 거잖아요. 결국 대한항공 안의 불신의 늪이라는 게 감이 잡히네요.
◆ 김정훈> 오늘 많은 분들이 취재에 응해주셨지만 대부분 익명으로 음성을 변조해서 말씀을 전해드린 것도 바로 그 때문이죠.
◇ 김현정> 우리가 사주 일가의 갑질 이야기만 보도를 해드렸는데, 갑질 문화보다 어쩌면 더 무서운 불신의 늪, 내부에선 어떤 일이 돌아가고 있는지 김정훈 기자가 훅 들어가서 취재를 해봤습니다. 끝으로 한마디.
◆ 김정훈> 결국 마지막 열쇠, 직원들에게 달려 있습니다. 용기를 내는 것, 그게 마지막 해법일 것 같습니다.
◇ 김현정> 대한항공 잘돼야 합니다. 우리나라의 중요한 회사, 큰 회사입니다. 거듭나기 위한 해법 하나를 던져주셨네요. 훅뉴스, 김정훈 기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