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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프란치스코 교황도, 문재인 대통령도, 우리도 '난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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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 프란치스코 교황도, 문재인 대통령도, 우리도 '난민'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왼쪽), 문재인 대통령 (사진=자료사진)

     

    예멘의 항구도시 모카에 오랜 항해로 병든 포르투갈 선원들을 태운 배가 도착했다. 사경을 헤매던 선원들에게 여관 주인은 신비한 물약을 먹였다. 선원들은 며칠이 지나자 신기하게도 기운을 차려 몸이 회복됐다. 얼마 후 포르투갈로 돌아온 그들은 모카에서 먹었던 검은 색에 신맛이 나는 신기한 약물에 대한 이야기를 퍼트렸다. 그때 마신 음료가 커피였다. 그 후 커피는 유럽 전역으로 퍼지게 됐고 예멘의 항구도시 모카는 15-17세기 세계 커피 무역의 중심지이자 커피의 성지로 자리 잡았다.

    예멘의 화려했던 과거는 한줄기 조각구름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지금은 1인당 국민소득이 고작 1,300달러도 되지 않는 빈국이다. 내전으로 남과 북이 갈라졌고 수니파와 시아파로 갈라져 서로가 총을 겨누고 산다. 주민들은 실낱같은 희망을 찾아 죽기를 각오하고 낡은 배 위에 몸을 싣고 있다. 그렇게 난민이 되어 바다를 떠돌다 도착한 땅이 제주도다.

    해방신학자 김근수 교수는 말한다. 1929년 이탈리아를 출발한 어느 배가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도착했다. 여기 내린 이탈리아 남자 호세 마리오 베르골리오는 이탈리아 출신 이민자 후손인 레지나 마리아 시보리와 결혼하여 다섯 자녀를 두었다. 1936년 12월 17일 태어난 큰아들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리오는 2013년 3월 13일 77세 나이에 교황이 되었다. 그의 이름이 프란치스코다.

    1950년 12월 어느 날 피난민 1만4,000명을 태우고 흥남부두를 떠난 선박 메러디스 빅토리가 거제도에 도착했다. 여기 내린 어느 피난민 부부에게서 3년 후인 1953년 1월 24일 태어난 아들이 2017년 5월 10일 64세 나이에 제19대 대한민국 대통령이 되었다. 그의 이름이 문재인이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에 오는 난민들을 무시하지 말라. 인류에게 희망을 주는 위대한 인물이 또 나올지 모른다"고 말한다.

    우리 모두는 안정된 땅 한반도에 거주하는 정착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느 날 난민 신세가 되어 예멘사람들처럼 바다 위를 떠돌지 알 수 없다. 심리적으로도 이미 난민과 다를 바 없다. 영혼은 여전히 '떠돌이'이고 '노마드(nomad)'이고 '이주노동자'이고 '난민'이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고 두려워 숨었을 때, 신이 인간에게 던진 최초의 질문이 '네가 어디 있느냐?'였다. 선악과를 먹음으로써 에덴동산은 이미 낯선 땅이 되었고 그들은 인류 최초의 난민이 된다. 신은 '네가 어디 있느냐'는 질문을 통해 난민으로 추락한 인간의 실존에 대하여 묻고 있다.

    신은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네가 어디 있느냐?'고 묻고 있다. 배를 타고 표류하는 예멘 사람만이 난민이 아니기 때문이다. 제주도와 서울에 살고 있는 우리들 역시 난민이다. 혼돈과 방황 그리고 치열한 생존경쟁과 불안, 두려움 속에 하루하루 전쟁을 치르며 살아가는 떠돌이 난민이다. 매 순간 '네가 어디 있느냐?'는 신의 질문을 듣고 산다.

    혈액 속에는 떠돌이 세포가 있다. 이 떠돌이 세포는 염증이 생긴 자리에 활발하게 모인다. 그리고는 염증을 박멸한다. '떠돌이'를 무시하면 안 된다. 본래 살던 곳을 떠나 다른 국가에 정착한 '이주 노동자' 역시 진취적이다. 40여 년 전 외화를 벌기 위해 독일로 떠났던 우리의 간호사나 광부도 이주노동자였다. 전쟁이나 이념 갈등으로 다른 나라로 떠나는 '난민'도 마찬가지다. 우리 조상들도 난민이었다. 죽지 않고 살기 위해 당나라로, 구한말에는 간도로, 가까이 제주 4‧3 때는 제주도를 탈출 해 일본으로 넘어갔다.

    인류 역사는 난민의 역사였다. 아담과 하와부터 아브라함과 요셉과 야곱, 모세… 모두 난민 신세였다. 아라비아 반도의 예멘을 떠나 제주도로 들어온 난민들 역시 그들과 다를 것이 없다. 예멘의 난민들에게 일자리를 빼앗길까 불신하고, 외래 종교의 침투를 경계하고, 사회불안을 야기 시킬까 두려워하는 것은 편협하고 근시안적인 태도다.

    우리는 난민문제로 홍역을 앓고 있는 유럽을 거울삼아 안정적이고도 효율적인 난민 정책을 세울 수 있고 신뢰를 쌓을 능력도 충분하다. 낭만적인 생각이라고 하겠지만 난민의 역사가 인류의 역사였음이 자명하고, 우리나라는 이미 난민들이 찾아올 만큼 부유하고 공정한 민주사회라는 사실만으로도 마땅히 감내해야할 의무를 짊어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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