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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칼럼] 검투사와 월드컵

    23일(현지시간) 러시아 로스토프 아레나에서 열린 2018 러시아월드컵 조별리그 F조 대한민국과 멕시코의 경기에서 손흥민이 후반전 팀의 젓 번째 골을 성공시키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

     

    좁은 운동장에 혈기왕성한 젊은이들을 스물두명이나 몰아넣고 벌이는 살벌한 영토싸움.

    바로 축구다.

    그 가운데 국가대항으로 치러지는 월드컵은 축구경기 가운데서도 가장 치열하고 뜨거운 승부다.

    어떤 사람들을 축구경기를 로마의 검투경기에 비유하기도 한다.

    과하기는 하지만 월드컵과 검투경기는 비슷한 점이 분명 있다. 패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목숨을 잃는 검투경기와 비교할 수 없지만, 패하면 살해협박을 포함해 온갖 비난이 쏟아진다.

    월드컵이 한창이다.

    월드컵 예선에서 우리 대표팀은 두 경기를 모두 패했다. 실낱같은 희망이 남아있지만, 16강 진출 가능성은 높지 않다.

    23일(현지시간) 러시아 로스토프 아레나에서 열린 2018 러시아월드컵 조별리그 F조 대한민국과 멕시코의 경기에서 2대 1로 패배한 대한민국 선수들이 아쉬워하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

     

    그런데 패한 원인을 두고 특정선수에 대한 비난이 도를 넘고 있다.

    멕시코와의 경기에서 패널티킥을 내준 장현수선수에 대해 청와대 청원게시판에는 갖가지 비난글이 쇄도하고 있다. 국가대표 박탈, 군면제 취소에 심지어 사형을 시켜야 한다는 글도 있다.

    대표팀 골키퍼 조현우의 아내는 소셜네트워크에 딸 사진을 올렸다가, 딸의 외모까지 비난하는 악성댓글에 시달리다 결국 일기장 같던 소중한 SNS계정을 폐지했다.

    월드컵에 출전할 때마다 우리는 우리의 젊은이들에게 16강이라는 무거운 과제를 지운다.

    월드컵 16강은 지상과제이고 지친 일상의 무게를 덜어내 줄 최고의 선물이다.

    하지만 16강은 희망고문이다. 2천2년 4강 신화이후 단 한 차례 16강에 진출했을 뿐 우리는 늘 예선통과에 실패했다.

    F조에 속한 스웨덴은 FIFA랭킹이 24위고, 멕시코는 15위, 독일은 1위다. 한국은 57위다.

    공은 둥글지만, 숫자는 배신하지 않는다. 이변은 이변일 뿐 일상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변을 일상처럼 기대한다.

    24일 새벽 2018 러시아월드컵 F조 조별리그 2차전 한국과 멕시코의 경기에서 우리 대표팀이 1:2로 패하자 광화문 거리 응원단이 허탈해 하고 있다. 위 사진은 아래 기사와 관련 없음. (사진=윤창원 기자)

     

    이번 러시아 월드컵은 이전 월드컵에 비해 관심이 확연히 줄어들었다. 화려한 연예인 응원단도 없고 방송빈도도 훨씬 적다.

    그런데 관심은 줄은 반면 비난은 줄지 않았다.

    군중들은 패한 경기 뒤에 카메라 앞에서는 격려의 말을 아끼지 않지만, 익명의 게시판에는 음험한 비난글을 올린다.

    로마의 대표적인 우민화 정책이었던 검투경기와 달리, 월드컵은 그저 전 세계인들이 열광하는 축구축제일 뿐이다.

    월드컵 대표선수들은 패배하면 목숨을 잃어야하는 검투사가 아니다. 패배는 아쉽지만 아쉬움 이상의 것은 없다. 비난할 일은 더욱 아니다.

    이제 최강 독일과의 마지막 경기를 앞둔 우리 선수들에게 지금보다 더 큰 함성과 응원을 보내는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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