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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년 전 중공군 수만 명 파로호에 수장…현대판 살수대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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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일반

    "67년 전 중공군 수만 명 파로호에 수장…현대판 살수대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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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 반 고기 반'이던 푸른 빛 호수가 붉은 핏물로 물들어

    6·25전쟁 당시 중공군 수만 명을 수장한 파로호 전투를 전사(戰史)는 어떻게 기록하고 있을까.

    통상 승자의 역사는 부풀려지고 패자의 역사는 축소되기 마련이다.

    우리 측 전사와 전승 기념물에는 중공군 3만 명을 격파한 것으로 기록됐다.

    이 때문에 파로호 전투를 '현대판 살수대첩'이라고 표기한 기록물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중국 측은 파로호 전투 전사자를 우리측보다 10분의 1 규모인 3천 명이라고 축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26일 육군본부 군사연구소가 발간한 '지암리·파로호 전투'를 보면 중공군의 춘계공세 때인 1951년 5월 24∼30일 화천 파로호 인근에서 국군과 미군에 의해 사살된 중공군 숫자는 2만4천141명이라는 기록이 나온다. 또 포로는 7천905명이다.

    3만2천46명의 중공군이 전사하거나 포로가 됐다고 전사는 기록하고 있다.

    이 기록은 미 제9군단 지휘보고서를 토대로 육군 군사연구소가 작성한 것이다.

    6·25전쟁 중 중공군 인명 피해가 사망 11만6천여 명, 행방불명 및 포로 2만9천 명인 점을 고려하면 지암리·파로호 전투에서 중공군은 막대한 희생자를 낸 셈이다.

    이른바 '지암리·파로호 전투는 6·25전쟁 유엔군 제3차 반격 중 본격적인 공격이 시작된 1951년 5월 24∼30일 경기 가평, 강원 춘천과 화천 등 중동부 전선에서 미 제9군단이 지연작전 중인 중공군과 벌인 전투다.

    미 9군단은 5월 20일 화천 탈환을 목표로 미 24사단, 국군 2사단과 6사단, 미 제7사단으로 병진 공격을 개시했다.

    이 작전은 춘계공세로 진출한 중공군 퇴로를 차단하는 것이었다. 당시 화천으로 진격하던 미 제9군단은 5월 25일 춘천과 속사리 방면에서 후퇴하는 중공군이 화천 일대에 집결한다는 항공관측을 보고받았다.

    미 제9군단은 중공군이 통과할 최종 목표지인 화천 저수지(현 파로호) 서쪽 도로 교차점을 조기에 점령한 뒤 미군과 국군 3개 연대를 투입했다.

    미군과 국군은 춘천∼화천 간 도로와 가평∼춘천 지암리 간 도로, 지암리 남쪽의 국군 전선으로 형성된 삼각 지대에 중공군을 몰아넣고 파죽지세로 몰아붙였다.

    유엔군은 항공기 등으로 지원사격에 나섰다.

    결국, 포위망 탈출에 실패한 중공군은 화천 저수지로 퇴로가 차단되자 상당수 전사하거나 포로가 됐다는 게 전사 기록이다.

    당시 중공군 10·25·27군 등 3개 군을 격파한 이 전투로 북진 교두보를 확보했다.

    대전과를 보고받은 이승만 전 대통령은 직접 전장을 방문해 오랑캐를 격파한 호수라는 뜻의 '파로호'라는 휘호를 내렸다.

    파로호의 원래 이름은 '대붕호'였다. 일제 강점기인 1944년 댐 건설로 생겨난 인공 호수다. 댐 건설 당시 호수 모양이 하루에 구만리를 날아간다는 상상의 새 대붕(大鵬)을 닮았다고 해서 대붕호로 불렸다.

    전쟁은 평화롭던 산골 호수 이름까지 바꿔 놓은 셈이다. 1955년 10월 제6사단은 중공군을 수장시킨 절벽 위에 이 대통령 친필 휘호로 비석을 제작·설치했다.

    이후 비석은 1990년 12월 31일 파로호 전망대로 옮겨 설치했다가 지난 5월 31일 처음 설치된 장소로 이전됐다.

    참전용사 등의 증언도 전사와 유사한 참상을 전했다.
    6·25전쟁 당시 6사단 7연대 2대대 6중대장으로 참전한 김달육(90·화천)씨는 파로호 전투의 산증인이다.

    그는 과거 연합뉴스와 인터뷰 등을 통해 당시 참상을 생생하게 되짚었다.

    김씨는 "당시 북진 중이었는데 화천 저수지 일대가 중공군의 시신이 썩는 냄새로 진동해 코에 마늘을 넣고 행군하기도 했다"며 "저 푸른 파로호도 붉게 물들어 시체가 둥둥 떠다녔다"고 회고했다.

    말 그대로 맑고 푸르던 파로호는 시체가 떠다니는 핏빛 호수였다고 전했다.

    파로호에 수장된 중공군의 유해발굴·송환 사업을 처음 제안한 허장환(70) 한중국제우호연락평화촉진회 공동대표는 "중공군 유해발굴과 송환, 위령탑 건립은 진정한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해 필요한 사업"이라며 "수많은 세월 서로에게 쌓인 원한을 풀고 진정한 상생의 길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중공군 전사자 넋을 기리는 기념탑은 상징물 개념을 뛰어넘어 중국인 마음을 위로하고, 많은 중국인이 참배하는 성지로 부각될 수 있다"며 "이는 진정한 냉전 종식이자 한반도 평화 정착의 촉매제가 될 것으로 생각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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