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전 대통령. (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이명박 전 대통령이 대운하 사업의 중단을 선언하고도 선박이 다닐 수 있는 최소 수심인 6m 깊이를 갖추도록 4대강의 보를 설치할 것을 지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토부와 환경부는 대통령의 지시사항이라는 이유로 내부 검토 의견을 사업계획에 반영하지 않은 채 덮어놓고 시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감사원은 4일 '4대강 살리기 사업 추진실태 점검 및 성과분석' 결과를 발표하며 "사업 결정과 사업추진 절차 등 집행 단계에서 주요 사안의 보고 누락, 법령이나 규정 위반 등 일부 비위행위가 발견됐다"고 밝혔다.
감사원의 4대강 감사는 이번이 4번째로 이에 앞서서는 이명박 정부 때 중기와 말기에 각 한차례씩, 박근혜 정부 출범 초기에 한차례 있었다.
◇ 버리지 않은 대운하의 꿈 … "수심 5~6m로 굴착하라"감사원의 이번 감사 결과에 따르면, 이명박 전 대통령은 대운하 사업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한 뒤에도 4대강 사업에 필요 이상의 수심과 수자원 확보를 밀어붙였다. 대운하의 꿈을 버리지 않은 것이다.
지난 2008년 6월 이 전 대통령은 한반도 대운하사업 중단을 실시했는데, 약 2개월 뒤인 8월 말쯤 당시 정종환 국토부 장관에게 하천정비 사업 추진을 지시해 4대강 사업에 착수하게 됐다.
같은해 11월~12월에 국토부가 홍수 방지를 주 목적으로 하는 제방보강과 준설 위주의 4대강 사업 방안을 보고하자, 이 전 대통령은 '보를 설치해 수자원을 확보하고, 가장 깊은 곳의 수심은 5~6m로 굴착하라'는 취지로 지시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당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한반도대운하TF 팀장을 맡았던 한반도대운하연구회 장석효 대표의 용역자료 성과물을 마스터플랜에 반영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도 확인됐다.
주무부처의 검토 결과는 누락되거나 대통령에게 보고할 때마다 준설(수심) 규모가 커졌다.
국토부는 2009년 2월에 대통령 지시사항만으로는 수자원 확보의 근본 대안이 될 수 없다고 의견을 냈으나 당시 정종환 장관이 '그런 내용을 어떻게 보고하느냐'고 해 대통령에 보고되지 않았다.
수자원이 확보되는 4대강 본류와 물 부족 지역인 지류 및 산간·해안 지역이 불일치해 물 공급을 위한 별도 시설이 필요하다는 내용도 보고되지 않았다.
당시 대운하 설계팀은 낙동강의 최소 수심을 6m 수준으로 해야 홍수방어와 물 부족 대처가 가능하다는 주장을 내놓았는데, 국토부는 '대운하 추진으로 생각될 수 있고, 과잉투자 논란이 우려된다'며 2.5~3m 수준의 보로 충분하다는 결과를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 점점 깊어진 보 수심 …국토부 2.5~3m-> MB 6m
(사진=자료사진)
하지만, 보고를 받은 이 전 대통령은 오히려 최소수심을 3~4m로 할 것을 지시했고, 다음날은 4~5m로 늘리도록 지시했다.
4월 초에도 이 전 대통령은 낙동강 상류의 최소수심을 4m로 하는 방안과 낙동강 하구에서 상주까지 유람선을 운행하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를 내렸고, 4월 15일에는 낙동강 최소 수심을 6m 수준으로 확보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으로 드러났다.
국토부는 대운하설계팀 등과 대통령의 6m지시를 어떻게 적용할지 고민하다가 낙동강 하류의 최소 수심만 6m로, 상류는 4m로 하고, 그 외의 강은 2.5~3m의 수심을 갖도록 하는 계획을 보고해 승인 받았다.
이 과정에서 대통령 지시의 적정성이나 타당성을 따지는 기술적 분석은 없었다.
감사원 관계자는 "이번 감사를 통해 대통령이 왜 그러한 지시를 내렸는지 직접 듣고자 했으나 방문이나 질문서 수령 등에 협조를 하지 않아 확인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 환경부, '조류 표현 왜 넣냐' 청와대 한마디에 삭제 또는 순화
환경부 (사진=자료사진)
수질 개선 대책에도 청와대가 부당하게 개입한 사실도 확인됐다.
환경부는 지난 2008년 초부터 대운하나 4대강 사업으로 보가 설치되면 하천의 호소화(湖沼化, 호수와 늪)로 조류가 발생하는 등 수질 오염이 나타날 수 있으며 문제 발생 시 치유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우려를 보고했다.
그러나 대통령실(현 대통령비서실)은 지난 2009년 3~4월에 조류와 관련된 표현을 삼가달라는 지시를 내렸고, 이에 환경부는 이를 삭제하거나 순화했다.
이후 환경부는 국립환경과학원으로부터 조류 농도 증가로 인한 문제점을 보고받았음에도 특별한 조치 없이 대통령 등에게 "4대강 모든 수역에서 수질이 개선될 것"이라고만 보고했다.
같은해 12월에는 이 전 대통령이 4대강 사업의 환경영향평가 필요성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기간을 단축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로 말하자 15개월이 걸리는 평가 절차를 3개월 내에 완료하기로 협의했다.
또 검토기관들로부터 사전에 결과를 입수해 부정적인 의견을 삭제하고, 협의기간을 지키기 위해 일부 항목을 검토조차 하지 않고 평가를 끝낸 사실도 드러났다.
◇ 이수(利水) 효과도 미미 …보에 가둔 물 8.6%만 사용 가능이외에 연세대학교 산학협력단의 치수·이수 효과 분석 결과도 발표됐다.
4대강 본류가 100~200년 빈도의 호우에 대응할 수 있는지(법정 치수안전도)를 분석한 결과 전체 127.7km 구간 중 74km 구간의 안전도가 확보됐다.
다만 53.7km 구간은 추가로 대책이 필요한 상태며, 사업 전에 치수안전이 확보됐던 103개 구간까지 일률적으로 공사를 진행해 법정기준을 100년 이상 초과한 구간도 발생했다.
수자원 확보, 활용 성과를 뜻하는 이수효과는 4대강 전체에 확보된 수자원중 43.3%를 활용가능하며, 보에 확보된 수자원은 8.6%만 사용 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4대강 사업은 전국 물 부족량 중 4.0% 정도 해소에 기여하는데 그친 것으로 확인됐다.
연구진은 "물 확보지역과 부족지역의 불일치로 인해 4대강 사업으로 확보한 물은 본류 주변에서만 사용할 수 있다"며 그 이유를 설명했다.
◇ 4번째 감사…의사결정권자 모두 퇴직해 책임 묻기 어려워"4대강 사업에 대한 감사는 이번이 4번째로 이미 3번의 감사가 진행된 바 있다.
감사원은 △사업 종료 뒤 5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4대강 사업을 둘러싼 논란이 여전하고, △지난해 5월 대통령비서실 차원에서 4대강 사업에 대한 감사 필요성을 제기한 점, △40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한국환경회의가 정책 결정·집행, 수질 악화 등에 대한 공익감사를 청구한 점등을 고려해 4대강 사업 추진의 전 과정을 감사하고 사업성과 분석을 실시했다고 밝혔다.
이번 감사를 통해 공무원들의 법령과 규정 위반 항목이 발견됐지만, 징계시효가 지났고, 의사결정을 진행했던 장·차관 등 고위직은 모두 퇴직해 책임을 묻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감사원 관계자는 "지시에 따라 업무를 처리한 직원들에게 인사상 불이익을 주는 것도 형평에 맞지 않다고 본다"며 징계나 수사요구가 없는 이유를 설명했다.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책임을 묻기도 어려울 전망이다. 감사원은 감사원법 상 대통령의 직무행위는 감찰 대상이 아니며 위법적인 사항도 발견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감사원 관계자는 "이 전 대통령에 협조를 요청했지만 협조를 거부했고, 대통령의 위법사항이 발견되지는 않았는데 단순히 협조하지 않았다고 고발하는 것은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