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배너 닫기

노컷뉴스

"밥 제때 먹고 잠 좀 잡시다"… 방송스태프노조 출범

미디어

    "밥 제때 먹고 잠 좀 잡시다"… 방송스태프노조 출범

    방송스태프노조, 4일 출범… 같은 날 저녁 창립총회
    살인적 초과노동 중단, 8시간 수면권 보장 등 8가지 요구

    민주노총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는 4일 오전 11시 20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노조 출범을 알렸다. 같은 날 오후 7시 30분 국회 의원회관 제9간담회실에서 창립총회를 연다. (사진=추혜선 의원실 제공)

     

    "우리 스태프들이 늘 하는 얘기가 있습니다. 밥 좀 제때 먹자, 잠 좀 제대로 자 보자. 아주 사소한 건데도 저희는 그게 그렇게 꿈이 됐습니다. 여기에 근무하면서 언젠가 좋아지겠지 하는 생각으로 계속 버티고 버텨왔는데요. 지금 7월 접어들면서 (노동시간) 단축에 대해 많이 기대했습니다. 오늘 현재까지도 변한 게 없습니다, 제작현장은. 그대로 밀고 갑니다." _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 김두영 준비위원장

    4일 오전 11시 20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브지부 출범 기자회견이 열렸다. 방송계갑질 119에서부터 노조 출범을 준비해 온 김두영 준비위원장을 비롯해 정의당 추혜선 의원, 희망연대노조 김진규 공동위원장 등이 참석했다.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 김두영 준비위원장은 10년 넘게 드라마 촬영현장에서 조명 일을 하는 노동자다. 집에서 저녁을 먹어본 적도 없고, 아이들 크는 것도 제대로 보지 못했다는 그는 "조명 파트가 가장 힘들다고들 얘기한다. 끝나는 것도 맨 마지막에 끝나고, 밥 먹는 시간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잠잘 수 있는 시간이 많이 없다"고 토로했다.

    김 준비위원장은 "지금 소화하는 스케줄도 오전 07시 출발에 익일 04시 종료다. 사우나 잠깐 갔다가 다시 07시 출발 이런 식이다. 일반인들이 상상할 수 있는 스케줄이 아니다. 가끔 어떤 분들이 매일 연예인 본다며 부럽다고 하시지만, 저희는 그런 장시간 노동에도 추가수당이 일절 없다. 더군다나 잠을 못 자니 사고가 잦다. 큰 사고는 뉴스가 나가지만 그것도 잠깐이고, 뉴스에 오르지도 못하는 사고들이 많다. 안전 대책 없는 현장이 대부분"이라고 밝혔다.

    김 준비위원장은 "일부 단체나 개인이 항의해봤지만 무시되기 일쑤였다. 상대를 안 해줬다. 저희는 노조를 통해 정당하게 한 번 싸워볼 생각이다. 그래서 노조 출범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동안 뜻을 같이했던 여러 다른 직군들과 합해서 활동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방송스태프노조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방송계갑질 119 기획팀의 김유경 노무사는 "작년 11월 방송계갑질 119 채팅방을 열었는데 제보 내용이 충격의 연속이었다. 하루에 20시간 넘는 장시간 노동은 다반사고, '화유기' 추락사고가 있었고, 각종 루트를 통해 성추행, 성폭력 제보도 이어졌다"고 말문을 열었다.

    김 노무사는 "1970년대 전태일 열사가 분신할 때 기사 제목이 '골방에서 하루 18시간 노동한다'는 것이었는데, 21세기를 통과하는 이 지점에서 하루에 20시간 노동이라는 게 가능한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며 "현장 노동자 말을 들어 보니 이 모든 불합리한 부분에 대해 '방송바닥은 원래 이렇다'는 말로 관행처럼 인정돼 왔던 게 너무 강했다. 또, 사용자가 이분들의 노동자성을 지우기 위한 노력을 부단히 했다"고 설명했다.

    '방송업계는 원래 그래'라는 변치 않는 관행과 사용자 쪽의 노동자성 지우기라는 두 가지가 맞물려, 방송스태프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최소한의 권리도 20여 년 가까이 방치돼 왔다. 김 노무사는 "더 이상 노조를 미룰 수 없게 한 건 '절박함'이었다. 이렇게 살 순 없다는 절박함이 모여 노조 출범으로 이어진 것 같다"고 전했다.

    김 노무사는 "(방송스태프노조는) 여태껏 없었던 초산별 노조라는 특성 외에도 정말 다양한 스태프들이 모였기에, 여러 가지 투쟁이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단순히 비정규직만의 투쟁으로 방송 시스템의 불공정 관행을 바꿀 순 없다고 본다. 정규직과 끈끈한 연대를 통해 바꿔나가야 하는 시점이 도래했고, 그런 실험이 가능하리라고 본다"고 기대했다.

    드라마 촬영현장의 모습 (사진=자료사진)

     

    정의당 추혜선 의원은 "한국 드라마의 성공 뒤에는 쪽대본, 밤샘 촬영이라는 악습이 있다는 사실을 국민 여러분도 잘 아실 것이다. 드라마뿐 아니라 교양, 예능, 시사를 비롯한 방송의 모든 영역에는 밤샘 기획, 밤샘 촬영, 밤샘 편집이 있다. 카메라 뒤에서 펼쳐지는 모든 드라마는 비극이었다"고 말했다.

    추 의원은 "비정상적인 상황에서 제작 스태프들은 각종 비인격적 대우와 갑질의 희생양이었다. 이들은 외주제작사 정규직, 비정규직, 파견노동자,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 개인사업자, 프리랜서까지 다양하다. 작품에 따라 모였다 흩어지기를 반복해, 지극히 불안정한 고용 상태에 놓여 있다. 이런 이들이 노조를 구성한다는 것은 찍혀서 일을 더 할 수 없을지 모른다는 불안을 감수해야만 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추 의원은 "요구사항이 처절하다. 잠잘 수 있게 해 달라, 밥은 먹게 해 달라, 하루 12시간만 일하면 소원이 없겠다, 욕만 하지 마라, 때리지 마라… 주 52시간(근무)과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얘기하는 지금, 차별과 인권침해로 점철된 공간이 제가 지난 삶을 바쳐온 방송계라는 점이 저를 너무 가슴 아프게 한다"고 밝혔다.

    추 의원은 "한류와 방송콘텐츠의 경쟁력이 더 이상 누군가의 희생으로 지속되어서는 안 된다. 창의적이고 더 수준 높은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가 함께 이 문제에 관심을 가져, 더 이상 방송이 노동법의 사각지대가 되도록 방치해서는 안 된다"면서 "저도, 정의당도 최선을 다해 함께할 것을 약속한다"고 전했다.

    방송스태프노조는 '인간으로서 존중받을 최소한의 권리'라며 △살인적인 초과노동 중단 및 노동시간 단축 △정당한 임금과 초과노동 수당 지급 △점심·휴식시간 보장 및 안정적 식사 제공 △하루 8시간 수면권 보장 △야간촬영 종료 시 교통비·숙박비 지급 △불공정한 도급계약 관행 타파 및 노동인권 존중 △근로시간과 그에 따른 적정임금 명시된 근로계약서 작성 △모든 방송제작 스태프들에 대해 차별을 금지하고 인권 존중할 것 8가지를 요구했다.

    방송스태프노조(민주노총 더불어 사는 희망연대노동조합 방송스태프지부)는 오늘(4일) 오후 7시 30분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제9간담회실에서 창립총회를 연다.

    이 시각 주요뉴스


    실시간 랭킹 뉴스

    노컷영상

    노컷포토

    오늘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