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사진=자료사진)
6일부터 1박 2일 일정으로 북한을 방문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김정은 국무 위원장을 만나지 못한 채 평양을 떠났다.
지난 두 차례 방북때 김 위원장으로부터 극진한 환대를 받았던 것과 대비된다.
이유는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과 진행한 북미 고위급 협상에서 만족할 만한 결과가 도출되지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폼페이오 장관이 평양을 떠나 일본에 도착한 지 세 시간 여만에 이번 고위급 회담에 대해 유감을 나타내는 외무성 담화를 발표했다.
북한이 불만을 나타낸 부분은 동전의 양면이자 북미간 힘겨루기의 핵심인 비핵화 로드맵과 체제보장문제였다.
미국 폼페이오 장관은 평양을 출발하기 앞서 동행 취재중인 미국 기자들에게 북한 비핵화의 시간표(time line)에 진전이 있었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동창리 미사일 엔진 실험장 폐쇄를 위한 실무 회담을 곧 개최하고 오는 12일쯤 판문점에서 미군 유해송환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북한은 자신들은 평화체제구축을 위한 종전선언 발표, ICBM 생산 중단을 위한 시험장 폐기문제, 미군유해발굴을 위한 실무협상을 조속히 시작할 문제 등 "광범위한 행동조치를 동시적으로 취하는 문제를 토의할 것을 제기했지만 미국은 그렇지 못했다면서 "미국측의 태도와 립장(입장)은 실로 유감스럽기 그지없는 것이었다"고 불편한 심경을 그대로 내비쳤다.
특히 북한이 문제 삼은 부분은 미국의 비핵화 로드맵이었다. 외무성 담화는 이 부분에 대해 "미국측은 싱가포르 수뇌상봉과 회담의 정신에 배치되게 CVID요, 신고요, 검증이요 하면서 일방적이고 강도적인 비핵화만을 들고 나왔다"고 평가했다.
지난달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북미정상회담에서 두 정상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에 합의했는데, 여기에 CVID라는 용어는 들어있지 않다.
북한 외무성 담화로 미뤄볼 때 폼페이오 장관은 이번 회담에서 구체적이지는 않더라도 큰 틀에서 비핵화 로드맵을 만들자고 북한을 압박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북한 입장에서는 비핵화는 체제보장 문제와 동시적으로 이뤄져야 하기 때문에 임시 체제보장의 성격이 있는 종전선언이나 완전한 체제보장을 약속하는 한반도평화체제 문제와 같이 논의해야 할 사안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등 비핵화 입구에 들어서기 전단계에서는 먼저 성의를 표했지만 비핵화 여정에 들어서는 순간 북한의 체제보장 문제도 동시에 논의돼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북한은 일시적인 한미군사훈련 중단도 언제든 재개될 수 있기 때문에 불가역적인 체제보장 방안이 될 수 없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이후 근 한달만에 열린 고위급 회담에서 양측의 입장차가 확연하게 드러났지만 대화는 계속될 전망이다.
폼페이오 장관이 밝힌 바에 따르면 미군 유해 송환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회담이 판문점에서 이번주에 열리고 동창리 미사일 엔진시험장 폐쇄 방법 등을 논의하기 위한 실무급 회담도 조만간 열린다.
특히 폼페이오 장관을 수행한 헤더 나워트 국무부 대변인은 '북미가 비핵화 검증 등 핵심 사안을 논의할 워킹그룹을 구성하기로 했다'고 밝혀 성김 주 필리핀 대사 - 북한 최선희 외무상 라인이 계속 작동하면서 이견을 조율하는 작업을 벌일 가능성이 높다.
북한이 미국측의 태도에 유감을 표하면서도 과거와 같은 격한 언어를 동원해 비난하지 않은 점,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신뢰심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고 한 점 등도 북한이 여전히 대화와 협상으로 비핵화와 체제보장을 맞바꿀 수 있다고 판단하고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비핵화와 체제보장의 첫 단계에서 확인된 난관을 돌파하기 위해 주어진 시간이 그리 많지는 않다.
조만간 돌파구가 마련되지 못하면 북한의 비핵화 의지에 회의적 분위기가 강한 미국 조야와 언론으로부터 강한 압박을 받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이 더욱 코너에 몰릴 수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트럼프 대통령도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의심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매년 8월에 열리지만 한미가 유예하기로 한 한미합동 을지프리덤가디언 군사훈련이 재기되고 이에 북한이 강력 반발하면서 대화국면이 위협받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