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아동기금(유니세프·UNICEF) 한국 내 대표 기관인 유니세프한국위원회(이하 위원회)가 조직 내 성희롱 사건 등 그간의 잘못을 인정하고 새 출발을 약속했다.
위원회의 이기철 신임 사무총장은 9일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잘못된 것도 있었고 반성할 여지가 있는 부분도 적지 않았다"며 "다른 어느 기관보다 높은 수준의 도덕성을 가져야 하는 유니세프 일원으로서 모든 것에 대해 머리 숙여 사과한다"고 말했다.
위원회는 전임 사무총장의 성희롱 건과 관련해 올 3월 고용노동부가 내린 과태료 400만 원 부과 처분을 이의제기 없이 수용하기로 했다. 과태료는 후원금이 아닌 위원회 현직 고위 간부의 사비로 낼 방침이다.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서울서부지청은 "성희롱 사실이 있었던 것으로 판단되지만 가해자 징계나 이에 준하는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며 과태료를 매겼다.
이 사무총장은 "고용부 판단을 겸허히 수용해 위원회의 조직 문화를 혁신하고, 미래지향적인 관점에서 세계 아동구호라는 본연의 목적에 충실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성희롱 문제를 가장 먼저 제기했다가 전임 사무총장 때 해고됐던 직원도 내달 1일 자로 원직 복직한다. 이 직원은 성희롱 피해 직원의 소속 팀장으로, 부하 직원이 피해를 보자 내부에서 문제를 제기했던 사람이다.
위원회 전임 사무총장은 2016년 8월 여직원에게 성희롱에 해당하는 발언을 했다. 팀장의 문제 제기로 위원회는 자체 조사위원회를 꾸려 지난해 1∼9월 조사를 했으나 '사실무근'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12월 해당 팀장을 해고한 바 있다.
하지만 고용부는 조사에서 성희롱이 있었다는 결론을 내리고 과태료를 부과했다.
이 사무총장은 "제도적 장치를 통해 직원 인권보호를 강화했다"며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앞으로 더욱더 주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위원회는 전임 사무총장 시절 문제가 됐던 '7시간 이상 거리 해외출장 시 임원은 비즈니스석 사용' 부분도 관련 규정을 손질해 이코노미석을 이용하도록 할 방침이다.
이 사무총장은 여러 추문과 함께 일각에서 제기됐던 '위원회는 유니세프 국제 본부와 무관한 일종의 계약관계에 불과하다'는 의혹에는 유니세프본부의 게리 스탈 민간모금국장이 보낸 공문을 제시하며 선을 그었다.
스탈 국장은 공문에서 "위원회는 유니세프의 이념을 증진하고 한국에서 유니세프를 대표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됐다"며 "위원회는 유니세프의 공식 승인서와 협력 협정에 근거해 활동한다"고 밝혔다.
스탈 국장은 또 "위원회는 법적으로는 한국의 단체이나 본부의 지도와 위임 하에서 활동한다"며 "위원회는 한국에서 유니세프 이름과 로고를 사용하는 유일한 기관"이라고 강조했다.
이 사무총장은 "유니세프는 가장 투명하고 효율적인 유엔기관"이라며 "위원회에 100원을 기부하면 85원이 본부로 송금되고 13원은 어린이 권리 옹호 등 국내 사업비와 운영비, 2원은 직원 인건비로 사용된다"고 설명했다.
유니세프의 국가위원회는 유니세프본부가 34개 선진국에 설치해 모금 업무를 하도록 한 기구다.
이 사무총장은 "취임 후 2개월간 최근 일련의 사건들로 잃은 후원인분들의 신뢰를 되찾는 데 초점을 맞췄다"며 앞으로는 북한·개발도상국 어린이와 외국인 부모를 둔 어린이 지원에 역점을 두겠다고 밝혔다.
그는 "위원회는 2013년 이후 매년 약 300만 달러를 북한 어린이 지원에 쓰고 있다"며 "개도국 어린이 교육, 부모가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차별받는 어린이 지원도 확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사무총장은 서울대 법대를 나와 1985년 제19회 외무고시에 합격했다. 직업외교관으로 일하며 주네덜란드 대사, 주로스앤젤레스 총영사 등을 지냈고 현재 국립외교원 겸임교수로 있다.
올 4월 공개채용시험을 거쳐 5월 1일자로 새 사무총장직에 임명됐다.
그 자신 '유니세프 키드'이기도 하다. 그는 "빵은 구경도 못 하던 50년 전 국민학교 시절, 학교에선 빵을 급식으로 줘서 하루라도 빨리 학교에 가고 싶었다"며 "당시 선생님이 '이 빵은 유니세프에서 왔다'고 하신 것이 기억에 남아 있다"고 떠올렸다.
이 사무총장은 "위원회는 지난날 잘못을 헛되이 하지 않고 도약의 발판으로 만들겠다"며 "겸허한 자세로 후원인들의 고귀한 뜻을 실천하는 사무총장 역할을 투명하게 수행하겠다는 초심을 끝까지 간직할 것"이라고 각오를 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