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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박환성-김광일 PD 1주기… "더 많이 죽어야 변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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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故 박환성-김광일 PD 1주기… "더 많이 죽어야 변할 듯"

    [노컷 인터뷰] 두 PD 유족 박경준 씨, 오영미 씨

    지난해 7월 14일(현지시각)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한 故 박환성-김광일 PD (사진=한국독립PD협회 제공)

     

    지난해 7월, 타국에서 비보가 도착했다. EBS '다큐프라임'에서 방송될 예정이었던 '야수의 방주' 촬영차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갔던 박환성-김광일 PD의 교통사고 사망 소식이었다. 두 사람의 죽음은 현지 운전기사를 고용할 수도 없을 만큼 열악했던 외주인력들의 현실을 보여줬다.

    여기저기서 애도의 목소리가 나왔다. 문화체육관광부와 방송통신위원회는 방송사-외주제작사 간 외주제작시장에 대한 실태조사를 벌였고, 한국독립PD협회는 '방송사 불공정 행위 청산과 제도 개혁을 위한 특별위원회'를 꾸려 공론화에 앞장섰다. 정권 교체 이후 부임한 KBS, MBC, EBS 등 공영방송사 사장들도 외주인력을 포함한 비정규직과의 '상생'을 선언했다. 이달 초에는 직군을 초월한 방송스태프노조가 새 출발을 알렸다.

    하지만 고인의 유족들은 사고 이후 무엇이 더 나아졌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여전히 외주인력은 어려운 상황에서 고되게 일한다. 1주기가 다가올 때까지 유족들은 EBS로부터 제대로 된 사과를 받지 못했다. 故 박환성 PD가 간접비 환수 관행을 폭로했음에도 EBS 측이 이를 부인해, 유족은 정부 제작지원금 환수를 요구한 EBS 직원 2명을 업무방해와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기도 했다.

    故 박환성-김광일 PD의 1주기 추모제를 사흘 앞둔 지난 12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블루라이노픽처스 사무실에서 고인의 유족 박경준, 오영미 씨를 만났다. 박경준 씨는 故 박환성 PD의 동생으로, 고인이 운영하던 제작사 블루라이노픽처스를 이어받았다. 오영미 씨는 故 김광일 PD의 아내다.

    ◇ 믿기지 않는 죽음, 성큼 다가온 1주기

    오영미 씨는 남편이 세상을 떠났다는 게 실감 나지 않는다고 한다. 고인 사진을 보면서 곧잘 울곤 한다는 그는 "어딘가에 살아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동안 한 살 더 먹은 딸과 아들도 "엄마, 아빠는 출장 갔다가 언제 온다고 그랬지?", "아빠는 왜 이사 갈 때 혼자 출장을 간 거야?"라고 한다고.

    하지만 두 아이를 키우며 생활해 나가야 하기에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았다. 웃고 있지만 속은 말이 아니었다. 아이들 심리 치료가 끝난 올해 초부터 본인 심리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불면증도 심해 수면제를 먹는다. 주변 사람들이 고인을 이제 놔 주라고 해도, 오 씨에겐 쉽지 않은 일이다.

    오 씨는 "이번 일요일에 추모제를 하는 것도 실감이 안 난다.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밝혔다. 올해 3월 한국PD대상에서 공로상을 받았을 때도 오 씨는 앞을 잘 바라보지 못했다. 혹시나 눈물이 날 것 같아서였다. 그는 "솔직히 상 받아서 좋은 것보다는 '살아 있을 때 좀 더 챙겨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그렇게 사고가 나서 죽어야 무언가를 알게 되는 게 현실"이라고 전했다.

    故 박환성-김광일 PD는 지난 3월 15일 열린 제30회 한국PD대상에서 공로상을 받았다. 故 김광일 PD의 아내 오영미 씨가 수상소감을 말하고 있다. (사진=오영미 씨 제공)

     

    故 박환성 PD가 세상을 떠난 후 박경준 씨는 블루라이노픽처스 대표를 승계했다. 고인의 유작 두 작품을 완성하는 것이 목표다. 독립PD협회의 도움을 받아 진행팀을 꾸렸고, '엘리펀트 보이'(코끼리 소년)를 먼저 작업했다. 그 역시 정신의학과 치료를 받은 지 6개월째다. 다행히 치료를 받기 전보다는 호전돼 약을 줄이며 경과를 보는 중이다.

    박 씨에게 찾아온 또 다른 큰 변화는 소송이다. 그는 EBS 직원 두 명을 업무방해와 명예훼손으로 고발했다. 이들이 고인이 타 온 정부 지원금 일부를 간접비 명목으로 요구했고, 이후 사실과 다른 공식입장을 내어 고인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다.

    박 씨는 "아직 경찰 조사가 진행 중이다. 제가 한 달 전 고소인 진술을 했고, 이틀 전(7/10) 피고인 조사를 했다고 연락을 받았다"면서 "EBS가 낸 공식입장 요지는 자신들의 잘못이 없다는 것이었다. 정확한 사실관계가 밝혀지지 않는 이상은 다음 단계로 나갈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형이 (죽기 전) 싸워왔던 부분이 있어서 이 앙금이 해결되지 않는 이상… 형이 힘들어했던 대상과의 관계가 모호한 상태로 1년 이상 오지 않았나. 그런 부분이 스스로도 답답하다. (소송이) 속 시원하게 마무리됐으면 하는 게 제 바람이다. 그래야 떠난 사람을 오롯이 애도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라고 전했다.

    ◇ 아직 사과받지 못한 유족들

    두 독립PD의 죽음이 알려진 직후, EBS는 "두 PD의 죽음에 삼가 조의를 표한다"며 남아공에서 고인을 모셔오기 위한 모든 비용을 한국독립PD협회와 공동 부담하겠다고 밝혔다. 당시 EBS 우종범 사장은 임직원들과 빈소를 찾았다.

    후임 장해랑 사장 역시 올해 1월 신년 기자간담회를 열어 10대 과제 중 8번째로 '협력·상생하는 EBS'를 내걸었다. 장 사장은 "독립제작자들은 저희 콘텐츠를 강화할 수 있는 대단히 중요한 동반자"라며 "함께 갈 수 있는 방법을 훨씬 더 강화하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위로금을 지급하고, EBS에서 방영된 블루라이노픽처스 작품의 권리는 공동 소유로 한다는 조처가 있었지만, 정작 유족들이 바랐던 공식 사과는 없었다. 사망 사고의 불씨가 된 방송사의 불공정 관행(적은 제작비 지급, 간접비 환수 요구 등)은 인정하지 않았다는 게 유족들과 독립PD협회의 주장이다.

    지난 12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블루라이노픽처스 사무실에서 故 박환성-김광일 PD 유족을 만났다. 故 김광일 PD의 아내 오영미 씨, 故 박환성 PD의 동생 박경준 씨 (사진=한국독립PD협회)

     

    박 씨는 "심지어 EBS는 블루라이노픽처스에게 정부 지원금을 요구한 적 없다고까지 얘기한다. 그러니 불공정 관행 개선을 얘기해봐야 믿음이 안 가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오 씨는 "사과에 관한 정식 절차가 없었다. (EBS가) 진심으로 사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EBS는 故 박환성 PD가 간접비를 요구했다고 폭로하며 문제를 제기했던 작년부터, 블루라이노픽처스의 소송이 불거진 올해까지 '간접비 환수'는 없었다고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올해 2월 방송통신위원회가 낸 '2017 방송 프로그램 외주제작 거래 실태조사'는 "정부 제작 지원의 경우에도 기획, 촬영, 편집 등 방송사업자 내부인력과 연동되는 경우에는 방송사업자가 독립제작사에 간접비를 청구하게 되며, 이때 간접비 비율 문제가 불공정 이슈로 확대될 여지가 있다"며 간접비 관행을 언급한 바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도 방송프로그램 제작 지원 사업수행지침을 개정하면서 방송사-제작사 간 이면 계약(제작사의 제작비를 부당하게 깎거나, 간접비를 적용해 타 용도로 쓰는 것, 저작권 포기 강요 등)을 금지하도록 했다. EBS는 고인에게 간접비를 요구하지 않았다면서도, 독립제작자들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방송제작 전반의 공정성 제고 노력의 일환으로 '정부제작지원 사업 간접비 적용 제외'를 제시했다.

    이날 인터뷰에 동석했던 한국독립PD협회 송호용 회장은 "전임 사장(우종범) 때는 사장과 간부들이 장례식에 와 조의를 표했고, 전향적으로 대처하겠다는 입장이었다. 현재 사장이 오면서 스탠스가 변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송 회장은 "독립PD협회는 유족을 대리해서 언론개혁시민연대-EBS와 합의체를 꾸려 이야기 중이었는데, 초반에 갑질에 대한 진상조사를 요구하다가 그건 양보하되, (간접비 요구한) 당사자들이 유족에게 직접 사과하기를 원한다고 했다. 그런데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송 회장은 "EBS는 잘못된 관행을 고쳐나가겠다고 하면서도 사과는 하지 않는다. 구조적으로 문제가 있다면서 왜 사과는 못 하는지 의문이 든다. 문제 해결을 위한 의지가 없는 게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 오는 15일 1주기 추모제 열려

    남아공 현지에 세운 고인의 추모비 (사진=유족 제공)

     

    변한 건 없지만, 시간은 흘러 1주기가 돌아왔다. 1주기에 맞춰 박경준 씨는 고인의 동료와 함께 남아공에 가서 추모비를 세웠다. 사고 현장 근처와 화장터 묘지 곁에.

    박 씨는 "작년에도 방문했는데, 바로 그다음 날 다시 온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1년이 지나간 게 믿어지지 않았다. 순간 정신이 약간 멍해졌다"고 고백했다.

    박 씨의 추도사는 '부디 그곳에서는 상처받지 말기를. 낮에는 바람처럼, 밤에는 별처럼, 자유로운 영혼, 사랑하는 형'이었다. 그는 "그곳에선 편하게 쉬길 바라는 마음이었다"고 덧붙였다.

    추모제도 예정돼 있다. 한국독립PD협회는 오는 15일 오후 7시, 서울 양천구 목동 방송회관에서 故 박환성-김광일 PD 추모제 '다시 두 사람을 기억합니다'를 연다. 각종 언론 유관단체와 내·외빈 다수가 참석할 예정이다.

    오영미 씨와 박경준 씨는 두 독립PD의 죽음 이후로도 노동 착취적인 환경과 불공정 관행은 별반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고 바라봤다. 그동안 개선된 점이 있다고 보는지 묻자 오 씨는 "없다. 약간 반응을 보이다가 다시 쏙 들어갔다. 비정규직 관련 처우는 개선된 게 거의 없다. 힘든 사람들만 계속 죽어난다"고 답했다. 박 씨도 "눈에 띌 만한 성과는 없다고 본다. 아직 못 느끼겠다"고 밝혔다.

    "주 52시간 근무를 하면서 택시회사들도 초과근무하면 징계하고 벌금을 내라고 한다고 해요. 그런데 방송 일하는 사람들은, 본사는 가능할지 몰라도 외주인력들은 (그게) 불가능하잖아요. 거기다 위험천만한 상황에서도 방송을 먼저 생각해야 하고. 하지만 그걸 누가 알아요. 생과 사를 오가는 상황인지. 그냥 '아, 저렇게 찍었네' 하는 게 끝이죠. 여태까지 그렇게 안 했는데, 방송계가 갑자기 바뀌는 건 가능하지 않다고 봐요. 좀 심하게 얘기하면, 사람이 더 많이 죽어야 변화할 것 같아요. 그게 전제조건이죠. 누가 죽었다고 하면 잠깐은 (관심을 받아) 반짝이니까. 자꾸 반짝거려야 법도 시행되지 않을까요. 방송계가 바뀌려면 처음부터 다시 다 갈아엎어야 할 것 같아요." _ 오영미 씨

    한국독립PD협회는 15일 오후 7시, 서울 양천구 목동 방송회관 코바코 홀에서 故 박환성-김광일 PD 1주기 추모제를 연다. (사진=한국독립PD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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