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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가 김겸 "야전병원 실려온 미술품, 치료 거절할 수 있나요"

문화재/정책

    복원가 김겸 "야전병원 실려온 미술품, 치료 거절할 수 있나요"

    • 2018-07-15 10:03

    20여년간 브루델 조각부터 이한열 운동화까지 다양한 보존·복원
    "복원은 끊임없이 반복되는 과정…백남준 '다다익선' 철거 옳아"

    2015년 이한열 운동화를 복원 작업하던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공)

     

    "태어날 때부터 약하게 태어났다 할 수 있어요. 우리나라가 여러 가지로 어려울 때라 건강하지 못한 몸으로 태어나 지금까지 버틴 것이죠."

    김겸 김겸미술품보존연구소 대표가 태블릿 PC 속 소녀를 가리켰다. 손꼽히는 근대 조각가로 납북 후 행방불명된 윤승욱의 작품 '피리 부는 소녀'(1937)다. 조각을 바라보는 김 대표의 눈빛과 말투는 환자를 대하는 의사의 그것을 떠올리게 했다.

    허벅지에 균열이 갈 정도로 불안정했던 소녀 입상은 내시경 검사, 황동심·강화석고 등이 동원된 수술을 거쳐 온전히 설 수 있게 됐다. '피리 부는 소녀'뿐 아니라 앙투안 부르델 조각, 이한열 운동화, 이성자 회화, 청계천 한복판 '스프링' 등 수많은 근현대 미술품과 기록물이 김 대표 손을 거쳤다.

    김 대표는 복원가다. 찢기거나 부러지거나 마모된 미술품을 보살피고 필요한 조치를 해 본래 모습을 더 오래 간직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업이다. 일본과 영국에서 공부한 뒤 국립현대미술관 등을 거쳐 연구소를 차린 지 올해로 7년째다.

    복원가의 삶을 담은 에세이 '시간을 복원하는 남자'(문학동네)를 최근 출간한 김 대표를 지난 12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정발산동 연구소에서 만났다. 운송 중 파손된 대형 회화를 손본 뒤 막 떠나보낸 작업실은 정갈했다. 스프레이와 고정장치 등 각종 '수술' 도구가 치열했을 현장을 짐작하게 했다.

    "작품들이 대부분 전시를 앞두고 오기에 제 연구소는 병원으로 치면 야전병원이죠. 피를 흘리거나 크게 다친 병사들을 치료해 서둘러 다시 전쟁터로 내보냅니다."

    연구소를 전혀 홍보하지 않는데도, 찾는 이는 갈수록 늘어난다. 올해 상반기에도 프랑스의 한 유명 재단이 의뢰한 대규모 프로젝트를 끝내자마자, 쉴 틈도 없이 문익환 목사 일가의 유품 보수를 진행했다. 의뢰 비율은 국공립 기관이 70%, 개인 소장자가 30% 정도다.

    김 대표는 살짝 민망한 얼굴을 하며 "이런 말을 하기 부끄럽지만, 제 수술 기술이 조금 좋은 것 같다"고 웃었다. 그의 유난히 뭉툭한 손은 지금에 이르기까지 밤낮으로 보존·복원에 매달린 20여 년을 말해주는 듯했다. 부인 우경아 부대표는 과천에 연구소와 자택이 따로 있던 시절, 김 대표가 새벽 3시, 4시에도 빗소리가 들리면 당장 연구소로 달려가 습도를 확인하더란 이야기를 전했다.

    우리 사회는 미술품 보존·복원 역사도 짧고 그 작업을 존중하는 분위기도 아니다. 돈 되는 미술품 구입에는 아낌없이 지갑을 여는 사람들도, 작품 가치를 유지하는 보존·복원에는 인색한 경우가 많다. 김 대표는 비용을 떠나, 일단 환자를 치료해야 한다는 사실에만 집중한다. "어쨌든 아파서 온 환자들이니까요."

    '위작을 받을 때도 있느냐'고 묻자 김 대표는 고개를 끄덕였다. "거의 없긴 합니다만…. 위작도 일단 여기 오면 환자입니다. 야전병원에 실려 온 환자의 치료를 거절할 수 있나요." 물론 작가 사인이 지워졌다며 되살려 달라고 한다든지 하는, 의도나 배경이 의심스러운 경우에는 확실히 거절하는 것이 원칙이다.

    척박한 국내 환경이 그에게는 기회로 작용하기도 했다. 주전공인 조각과 입체물을 넘어 다양한 임상 경험을 쌓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프랑스나 영국에서 활동했다면 이처럼 다양한 증상의 수많은 환자를 접해보지 못했겠지요. 수술까지는 아니어도 진단만 한 것도 수천 점이 넘죠."

    작품마다 사연이 있다. 그는 오래전 한 컬렉터로부터 이브 클랭의 파손된 조각 복원을 의뢰받았던 일을 이야기했다. 손을 댔다 하면 특유의 안료가 묻어나오는 상황이라, 손을 대지 않은 채 보수해야만 했다.

    "고민 끝에 두 동강 난 조각을 천장에 매달았어요. 안료가 덜 묻어나오는 유산지로 조각을 싸서 실로 매달았죠. 둘 높이를 조금씩 맞춰가면서 접합한 뒤 최대한 비슷한 안료를 만들어 메웠습니다."

    이야기는 지난봄 가동이 중단된 백남준 '다다익선'으로도 옮겨갔다. 국립현대미술관 보존수복팀장 재직 시절 이 작품을 유심히 관찰했던 김 대표는 "과천관 메인홀에서 철거하고 다른 새로운 작품에 자리를 내어주는 게 옳다고 본다"고 말했다.

    "백 선생님 작품이 30년간 그 자리에 있었던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현대미술 의의는 그 작품의 존재로 촉발된 논의의 장이 있지 않을까요. 작품을 '물신'으로 모셔놓고 정작 평소에는 무관심한 것보다, '다다익선'이 던진 여러 물음에 문화예술계가 어떠한 의견을 나누고 답을 찾아가는지 그 과정을 간직하는 것이 더 소중하다고 봅니다."

    한국 사회는 미술품이든 문화재든 '감쪽같이', 그리고 '빨리빨리' 보존·복원할 것을 재촉한다. 김 대표는 "우리나라에서는 대통령이나 기관 수장의 임기 안에 끝내야 하기에 현장에 있는 분들이 일하기 어렵다"면서 "복원은 조금씩, 그리고 끊임없이 반복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과거의 것을 잘 보존하고자 하는 것은 낭만적으로 볼 일도, 우리가 예전에는 이랬어 하는 회상 차원의 일도 아니에요. 잃어버리고 싶지 않은 시간을 복원하는 것이고, 결국 새로운 시간과 기억을 맞이하려는 의지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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